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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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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 3번’인데…

출범 1년10개월 ‘계류’ 상태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등록 2019-01-05 15:03 수정 2020-05-03 04:29
지난해 12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지난해 12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정부 주도하에 부랑인 정책이 수립되고, 공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들의 인신이 단속, ‘수거’, ‘수집’, 격리되고 수용소가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고통은 개인적 고통이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든 사회적 고통이며, 이들의 역사는 사회적 기억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여기’ 상존하는 부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해결을 요하는 문제기도 하다.”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의 논문 ‘부랑인 정책과 사회적 고통: 피해생존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사물처럼 ‘수거’ ‘수집’돼 격리당한 부랑인들의 피해가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고통이며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간 ‘부랑인 수용시설’ 문제는 국가의 직접적인 책임과 경악할 인권침해 수준인데도 피해자들의 개인사적인 아픔 정도로 치부됐다. 규명되고 처벌·사과·배상·치유돼야 할 우리의 과거사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간 과거사로 인정받지 못해

2005년 12월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진화위법) 제정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설립으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본격화됐다. 진화위는 설립 1년간 1만860건을 접수하고 2006년 4월25일 첫 조사를 시작해 4년2개월 만에 총 1만1171건을 조사했다. 진화위의 역사적 의미가 작지 않지만, 사건 신청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상당 규모의 국가폭력 인권침해 사건들이 진실 규명 대상에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되는 이유다. 특히 선감학원 등 군사정부 통치 시기 내내 존재했던 부랑인 강제수용시설 문제는 진화위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진상 규명이 결정된 1961년 전남 완도 국토건설사업, 1962년 충남 서산 대한청소년개척단, 삼청교육대 등 유사 사건도 개별 사건으로 접수된 것을 병합해 조사한 것이 전부다.

2012년 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가 국회 앞 1인시위를 시작하면서 부랑인 시설 국가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활동 연장 거부로 2010년 12월31일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뒤 문제가 제기된 탓에,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제자리걸음 상태다. 지난해 11월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장 부실 수사에 사과하고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피해자 명예회복과 적법한 배·보상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다.

최근 한종선씨 등 피해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뿐만 아니라 진화위법 개정안 통과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는 물론 권위주의 정부의 민간인 감금 등까지 포괄해 피해 신고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형제복지원 사건도 진상 조사 범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근거법이 생기는 셈인데, 정부도 국회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행자부가 기재부처럼 ‘예산’ 타령만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7년 1월1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 시절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과 진화위법 개정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이 사회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부랑인 일소’에 앞장섰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박근혜 정부의 태생적 한계였다.

법안소위에 출석한 김성렬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차관의 발언이다. “사실 이 형제복지원 사건은 과거 진실화해법에 따라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선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답답한 듯 김 차관의 말을 받아쳤다. “그 사람들이 실제로 이게 국가의 책임일 거다라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고, 부랑아라는 덫이 씌워져 있기 때문에 (중략) 정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본인들이 직접 청구할 수 있는 정신적·심리적 상태가 아니었다라는 전문가의 공청회 의견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김 차관은 특별법 제정이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를 둘러대기도 했다. “저희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서 그 기준을 적용해서 보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에게 지급할) 사망보상금과 의료·생활지원금 정도만 하더라도 대략 한 2천억(원) 가까이, 1980억(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중략) 지금 현재 과거사 관련 법이 법률이 20개이고 대통령령이 1개로서 현재 20여 개의 위원회가 있습니다. 현재 있는 위원회나 재단 운영비를 보더라도 2017년도 예산에 430억(원)이 계상이 돼 있습니다.” 듣다못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자부 차관님이신지 기재부 차관님이신지 헷갈린다”고 뼈 있는 쓴소리를 했다.

이날 소위원회는 권은희(국민의당) 당시 소위원장이 ‘최소한의 합의’로 진화위법 개정안 처리 방침을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이 법(형제복지원 특별법)뿐만 아니라 21개의 특별법안 그걸 건건이 논의를 하기 이전에 진화위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서 (중략) 우리 소위 차원에서 먼저 그 법안을 처리하겠다라는 그런 최소한의 합의를 가지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상설 위원회를 만들어 과거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특별법 발의 요청 등 적극적인 대처를 해나가는 방안이었다.

대책위 “조사부터 하는 인재근 의원안 합의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국정 과제 3번’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와 19대 국회 때는 진화위법 개정안 등 13개 법안이 발의됐다가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폐기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1년10개월, 심지어 여대야소인 20대 국회에서도 3년째 진화위법이 ‘계류’ 상태를 못 면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피해생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12월11일 ‘형제복지원 노숙농성 400일 긴급 토론회’에서 국회와 정부를 향해 세 가지를 촉구했다. 국회와 정부는 진화위법을 개정해 과거사의 진상 규명, 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후속 조처를 하는 한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즉각 마련할 것,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유해 발굴과 더불어 추모, 위령 사업을 실시할 것, 중·장기적 위령 추모 사업 등 명예회복과 학술연구문화사업, 과거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진실화해재단을 설립할 것 등이다.

여준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1월3일 과 한 통화에서 “새해 국회 홈페이지에 갔더니 행안위에 저희 건 올라가 있지도 않더라”며 답답한 현실을 전했다. 여 사무국장은 “국회의원 6명이 과거사 관련 법을 발의했는데 내용과 핵심 쟁점이 다 다르다. 국회에서는 이를 논의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변명한다. 일단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재개와 조사부터 시작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으로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진 듯했으나, 12월26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자유한국당 반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인재근 의원은 지난해 12월12일 진실 규명 신청 기간을 법 시행일부터 2년으로 변경하고, 법 시행에 따라 구성되는 위원회가 향후 4년간 진실 규명 활동을 하도록 하는 진화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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