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나온 김용균씨가 하고 싶었던 일은 뚜렷했다. 한국전력 정규직 직원. 그러나 실제 그가 했던 일에는 한참의 설명이 필요하다. 한전의 자회사에서 발전설비 점검 일감을 받은 하청업체(한국발전기술)의 비정규직 노동자. 신분 격차는 생사를 갈랐다. 전기기술자를 꿈꾸던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11일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세상을 떠났다.
그와 또래인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는 112만 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661만 명)의 17%다. 통계청이 2018년 8월 조사한 결과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보다 38만 명 많은 150만 명에 이른다고 계산한다. 20대 임금노동자(348만 명)의 10명 중 4명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10명 중 2~3명꼴로 비정규직인 30~40대에 견줘 비정규직 비중이 높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50만+α’ 불안정 노동에 내몰린 20대 </font></font>20대 비정규직 규모에서 38만 명 차이가 생기는 것은 두 기관이 비정규직을 규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계약직·일용직·파견·용역직·특수고용 등만 비정규직으로 보는 통계청과 달리, 연구소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오랫동안 임시로 일하는 장기 임시·일용직도 비정규직에 추가로 포함시킨다.
‘150만 명’도 보수적으로 계산한 결과라고 연구소는 설명한다. 정확한 통계를 어렵게 하는 사각지대 때문이다. 사내하청 정규직 노동자 규모가 대표적이다. 김유선 연구소 이사장은 “통계청은 무기계약직과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보지만 노동계는 비정규직으로 본다”면서도 “통계청 조사 때 ‘사내 하청업체에 다니냐’는 질문 자체를 안 하기 때문에 이들의 규모는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민간 부문에서 자주 활용되는 ‘자회사 전환’ 방식의 정규직화로 만들어진 일자리 역시 통계의 시각지대에 있다. 통계청과 원청은 이를 정규직으로 보는 반면, 일부 학계와 노동계는 여전히 원청이 노동자를 간접고용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든 자회사든 간에 원청(모회사)과 ‘낮은 단가’로 계약된 관계라, 수익을 내야 하는 회사가 노동자의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확 끌어올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김성희 교수는 “외주 하청업체를 원청의 자회사로 전환한 경우 노동자의 고용은 다소 안정화될지 모르나 임금 등 처우는 이전과 그대로”라며 “이 방식이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절반 정도 해결한 건지 절반도 해결 못한 건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150만 명+알파(α)’는 김용균씨와 닮았다. 이 이야기를 나눈 20대 초·중반의 비정규직 노동자 8명 중 7명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나머지 1명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원청인 전자제품 회사 생산직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5년을 일했으나 “어린 애들을 쓰고 버리는” 분위기가 싫어 퇴사 뒤 비정규직으로 이직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내 아버지가 아버지인지, 내 사용자가 사용자인지 특정하기 어렵게”(김성희 교수) 하는 간접고용의 구조 탓이다.
완성차업체 재하청 노동자인 김철민(25·가명)씨는 2018년 3월 입사 뒤 인터넷 검색을 자주 했다. 월급명세서에 현재 다니는 A업체 이름이 찍히는데, 자신이 B업체 공장에서 C업체의 이름으로 팔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게 아리송해서다. 검색 결과에 따라 자신을 ‘A업체 정규직’이 아니라 ‘B업체 비정규직’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청년 비정규직들은 공무원·공기업·회사 정규직처럼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으나 오래 구직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구직 1~2개월 만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신의 직장’ 입사에 매달리는 것은 무리라는 체념이 컸다. 청년들의 체감 실업 수준(통계청 고용보조지표3·15~29살)은 2018년 11월 기준 21.6%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이후 최고를 찍을 정도로 구직 시장이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차디찬 현실 속에서,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버는 엄마에게 늘 미안했던 김용균씨도 본격적인 구직활동 7개월 만인 2018년 9월 공기업 정규직 대신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을 선택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구직 기간 긴 정규직은 사치다 </font></font>박영진(25·가명)씨는 ‘1994년생 김용균’을 1년 앞서 살았다. 1993년생인 그는 “주변에서 취업이 잘된다”고 말하는 전문대 전기학과에 들어가 관련 자격증 4개, 한국사 1급을 땄다. 한국전기안전공사나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대기업 전기 관련 직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10여 군데에서 ‘탁탁탁’ 떨어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경제적 압박감은 점점 커졌다. 장학금을 받아 학자금은 해결했지만 생활비 대출금 720만원의 이자를 내야 했다. 은행 청경과 식당 일을 하는 부모님이 보태줘도 타지에서의 자취 생활은 늘 빠듯해 할 수 없이 얻은 빚이었다.
졸업 4개월 만인 2016년 4월, 벼랑 끝에서 “(눈을) 낮추다 낮추다” 찾은 곳이 한국발전기술이었다. 고향인 경상도와 멀리 떨어진 한전 자회사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다. 그것도 이름만 그럴싸한 1년6개월짜리 ‘프로젝트 계약직’.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오른 “가지 마라” “발전소인데 별거 없다”는 전 직원들의 충고와 욕은 애써 무시했다.
이들이 가까스로 들어간 첫 일터는 ‘막장’과도 같았다. 회사는 고졸이나 전문대 출신의 어린 노동자들을 싼값에 위험하고 힘든 일을 시킬 수 있는 소모품으로 다뤘다. 김영민 청년유니온의 사무처장은 “20대 중·후반의 고용 지표는 다소 개선되고 있는데 고졸이나 전문대졸처럼 저학력의 취약한 청년의 상황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며 “그들이 주로 선택하는 제조업(생산직)이나 서비스직, 단순노무직의 고용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투하던 20대들은 ‘2인1조’ 작업 같은 최소한의 안전 매뉴얼마저 지켜지지 않는 일터에서 숨져갔다. 김용균씨 외에도, 2018년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감전사한 아르바이트생 김아무개씨, 한화종합화학 공장에서 추락사한 비정규직 구아무개씨, 이마트 에스컬레이터에 몸이 끼여 숨진 하청노동자 이아무개씨 등이 일하다 20여 년간의 짧은 생을 마쳤다.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또 다른 발전소에 다니는 27살 고경만(가명)씨는 김용균씨와 같은 일을 했다. 2017년 입사 첫날 “(다른 노동자들이) 컨베이어벨트 등 설비 이곳저곳에 굳어서 눌어붙은 낙탄을 (긴 꼬챙이 등으로) 치우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곧 그가 맡은 일은 위험투성이였다. “빠르게 돌아가는 설비의 밑을 치울 때면 몸이 빨려 들어가지는 않을까” “헬멧의 턱 끈이라도 기계에 딸려 들어가면 어쩌지” 하고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김용균씨가 사고당할 때 기계를 멈출 안전줄(비상정지 장치)을 당겨줄 동료 한 명이 없었던 것처럼, 그도 늘 혼자 설비를 점검했다. 정규직인데도 “어느 설비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회사는 “그러게 말이야”라고만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하청업체 정규직은 반쪽짜리 정규직 </font></font>발전소 하청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SK브로드밴드 자회사인 홈앤서비스에서 설치·사후관리(AS) 멀티 기사로 일하는 김준상(23)씨는 2017년 주택가 전신주에 오르다 발을 헛디뎠다. 금세 다시 중심을 잡아 밑으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발목에 무리하게 힘이 가해지는 과정에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사고 직전, SK브로드밴드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던 하청업체 직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편입시킨 뒤라 김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전신주 아래로 떨어졌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아내 김민지(23)씨가 ‘2인1조’ 근무를 회사에 요구하는 이유다.
5년 넘게 방송 조명 조수 일을 하는 27살 황진철(가명)씨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자주 크고 작게 다친다. “카메라 앵글에 맞춰 미리 조명을 준비해야 하는데, (연출자가) 슛을 쏘면서 재촉하는 탓에 서둘러 이동하다가 부딪치거나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한번은 차량에서 떨어진 장비에 머리를 맞아 피가 났는데 인력이 없어 붕대 감고 그냥 일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처음으로 제작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기까지, 일당 15만원가량을 받으며 18~35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견뎌야 하는 상황도 건강을 위협했다.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받은 수고의 대가는 적었다. 연구소는 2018년 8월 기준 20대 비정규직이 한 달 평균 받는 임금 총액은 144만원으로, 또래 정규직 임금(230만원)의 62.6%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워킹푸어’(일해도 빈곤한 사람)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년들은 비정규직 경험을 사다리 삼아 더 나은 자리로 오르려 애쓴다. 한국발전기술 소속 박영진·고경만씨는 휴일에 토익과 자격증 시험 공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김용균씨도 숨지기 열흘 전 아버지에게 토익과 자격증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단순 업무는 이직을 위한 스펙에 한 줄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20대 중반 서영은(가명)씨는 2017년 12월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KA에 입사할 때만 해도 정규직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아시아나 지상직은 2년간의 대학 생활과 8개월간의 승무원학원 생활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목표였다. 그러나 설렘은 한 달 만에 산산조각 났다. 본사 직원과 똑같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시아나 서영은입니다”라고 말해도,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비행기 탑승 전 게이트 앞에서 승객을 돕는 일이 전부였다. “아시아나나 외항사 지상직에 경력으로 입사하려면 (공항 발권) 카운터 경험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거기에는 KA 소속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기본급과 식비를 합쳐 112만원만 받으며 미래도 없는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에 지친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이제 입사 동기 30명 중 10명만 남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규직 꿈, 가혹한 희망고문</font></font>죽음에 이를 때까지 컨베이어벨트를 떠나지 못했던 김용균씨처럼, 청년들은 당장 비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지는 못한다고 했다. “월급을 떼먹는 예전의 아르바이트보다는 나아서”(이루리·27·가명),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어서”(서영은), “당장 탈출구가 없어서”(박영진), “한 달만 일을 안 해도 당장 생활이 안 돼서”(황진철)라고 했다. 희망을 품고 직장에 남겠다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만약 김용균씨가 살아 있었다면 이들처럼 절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끝내 한전 정규직의 꿈을 이루었을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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