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4일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고 김용균의 24번째 생일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용균의 생일을 축하했다. 용균은 “언제 시간 나냐”고 물었다. 용균의 친구 김아무개씨는 ‘균이가 친구들이 보고 싶은가보다’라고 생각했다(김씨는 용균을 ‘균이’라고 불렀다). 친구들은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보자고 했다. 하지만 용균은 “25일에 일을 할 것 같다. 이날 만나기 힘들겠다”고 했다. 결국 “언제 한번 볼 수 있으면 보자”며 친구들과 대화가 끊어졌다.
12월8일 용균은 아버지가 택배로 보낸 토익, 엔시에스(NCS·국가직무능력표준) 책들을 받았다. 12월2일 용균이 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한 책들이었다. 용균은 비정규직 동료들과 전기공사 산업기사 자격증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한전)에 경력직으로 가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다. 쉬는 시간이나 밥 먹을 때도 동료들에게 일에 대해 종종 물었다. 용균은 이날 아버지에게 “책 무사 안착”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12월10일 오후 6시30분에 출근한 용균은 이튿날인 11일 아침 7시30분에 퇴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용균은 11일 새벽 3시23분께 태안화력발전소의 트랜스타워 5층 내 컨베이어 점검 작업을 하던 중 연료 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12월1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쓴 채 사진을 찍었던 용균은 홀로 죽음을 맞았다. 입과 코에 탄가루가 잔뜩 덮인 용균의 얼굴은 까맸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김용균의 기본급은 법정 최저 시급보다 8만원 많은 165만여원이었다. 여기에 휴일, 야간 등 제 수당을 합쳐 226만여원을 받았다. 세금과 4대 보험을 뺀 실수령액은 211만여원이었다. 1994년생 김용균은 24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팻말에 적힌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김용균 개인의 경험은 현재를 사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편적인 삶과 닮아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등학생 용균, 사회복지에서 전자로 진로를 바꾸다 </font></font>대학 진학, 졸업 후 취업을 고민하던 용균의 학창 시절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들이었다. 다만 가정환경, 면학 분위기, 지역 등 미세한 차이 속에서 성장해갔다. 2010년 용균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경북 구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용균은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40분을 돌아 학교에 다녔다. 아침 6시40분에 일어났다. 학교에서 야자(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가 넘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용균은 코피를 쏟았다. 용균의 아버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데로 이사하자고 했다.
용균의 아버지는 전자제품을 만들던 하청업체 공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계속됐다. 정규직 일자리는 귀했다. 몸이 아파 직장을 몇 차례 옮기던 아버지는 용균이 고등학교 들어간 해에 쓰러졌다. 용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해진 친구 김씨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나도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주 5일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용균의 학교도 토요일 수업이 없어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고3이 무슨 주 5일’이라며 자율학습을 하라고 토요일에도 학생들을 불러내자 친구들은 불평했다. 반면 용균은 토요일에도 꾸준히 학교에 나와 자습을 했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칠판에 쓴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손 들어 풀 때 쾌감을 느꼈다. 용균은 어머니에게 “그 맛에 공부한다”고 했다.
이때쯤부터 용균은 친구들에게 전자 쪽으로 진학하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용균은 한때 졸업 후 사회복지 쪽이나 인문 계열로 진로를 정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4년제 대학교를 나온다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나’ ‘인문계 일자리가 실업계보다 적지 않겠나’ 싶었다. 4년제 대학교 졸업생 취업률이 하락세를 타던 때였다. 그사이 용균은 스스로 전자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학교 방학 기간에도 용균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택배회사에서 포장일을 해 번 돈으로 교통카드를 충전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현장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 열심히 공부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용균을 보냈다. 용균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한 공장에서 보름 가까이 아르바이트하며 부품 포장 등을 했다. 처음 해보는 야간노동이었다. 용균은 피곤해했다. 하지만 ‘정직한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이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평범한 명제를 배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학생 용균, 한전 정규직을 목표로 삼다 </font></font>용균은 대구의 2년제 전문대학교 전자정보통신계열에 입학했다. 용균은 구미에서 대구까지 열차를 타고 다녔다. 대구에서 자취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요리, 기숙사 등의 이유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통학했다. 용균은 여러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녔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거듭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직장을 잡아야겠다.”
용균은 체계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통신병으로 군대에 들어갔다. 용균은 입대 전 헬스장에 다니며 체력을 길렀다. 몸이 약하면 군 복무 초반에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용균은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회사에 가고 싶어 했다. 군 복무 때 지원받아 전자, 정보통신 쪽 자격증을 준비했다. 군대에서 원서 접수비를 지원해주고 자격증을 따면 포상제도도 있던 때다.
1학년 2학기로 복학한 뒤 용균은 전기, 정보통신 쪽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큰 회사에 들어가려면 필요하다’던 토익 공부도 했다. 이때부터 한전에 들어가겠다는 말도 꺼냈다. 고등학교 친구 김씨가 밥을 먹다가 “균아, 어디 가고 싶나”라고 묻자 용균은 “전기 쪽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럼 한전이네?”라는 친구의 말에 용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는 대학 2학년 때 피시(PC)방에서 한국장학재단 누리집에 들어가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던 용균을 봤다. ‘균이가 부모님 근심,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용균은 친구들을 만나 놀기 전에도 “도서관에 들렀다가 가겠다”고 했다. 용균은 구미역에 있던 서점에서 전자·전기공학 책과 관련 자격증 책들을 자주 샀다. 명절 때 받은 용돈으로도 책을 샀다. 친구들이 모자 사고 옷 살 때 용균은 책을 샀다.
용균은 2017년 2월 졸업했다. 구미 근처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알아봤지만 쉽게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취업 준비를 하던 용균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메모를 남겼다. “쫄지 말고 침착하고 신중히/ 너는 하면 된다. 뭐든 확실하게/ 넌 자기 전, 아침의 폰팅·컴게임·티브이 때문에 망할 수 있다. 명심하지 않는다면 그리될 날이 수도 없을 것이다./ 너의 주적은 해이함과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를 물리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직장 구하면 출근 준비 관련으로 어머니 하시는 거 참고하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정규직 용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다 </font></font>졸업 후 1년 하고도 7∼8개월이 흘렀다. 그사이 용균은 10여 차례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태안사무소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첫 출근일은 9월17일이었다. 용균은 태안사업소가 아닌 구미에서 가까운 김천사업소에 갈 뻔했다. 용균은 김천사업소에 원서를 내고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신규 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회사 쪽 얘기에 태안사업소로 가게 됐다. 용균은 원청이 주는 일감이 줄면 일자리를 잃거나 다른 지역을 전전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과 벌써 닮아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용균은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용균은 정당한 보상과 응원을 받지 못했다. 취업 후 용균은 일하느라 바빠 친구들과 카카오톡 단체 대화창에서 7시간 늦게 대답한 날도 있었다. 용균은 동료 11명과 4조2교대로 일했다. 하루 12시간씩 주간-야간-휴무-휴무로 돌아갔다. 주간일 때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30분까지, 야간일 때는 저녁 6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30분에 퇴근했다. 근무시간에는 휴식이 없었다. 용균은 비정규직 삶의 흔적을 수첩과 종이 등 곳곳에 남겼다. 기숙사 벽에 붙은 A4 크기의 종이에는 “새벽 근무를 위해 오후 7시30분에 잠들자/ 알람은 두 개 이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용균은 작업장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면서도 장비 이름, 이동 경로 등을 수첩에 부지런히 메모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동료에게 물어봤다.
작업장은 탄가루 때문에 시야가 좁았다. 용균은 기본 장비인 헤드랜턴도 없이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일했다. 용균은 자주 안경을 닦았다. 탄가루는 렌즈에도 달라붙었다. 용균은 언젠가 눈 수술을 받고 싶었다. 검소한 용균은 사용한 지 3∼4년 된 고장난 중고 휴대전화를 20만원대로 사서 버텼다. 전에 쓰던 휴대전화도 액정이 깨졌지만 화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썼다. 컴퓨터도 사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기숙사에서 용균은 청소할 시간도 없이 잠만 자고 나왔다. 용균이 펴둔 이부자리에는 탄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입사 뒤 용균은 석 달 동안 딱 한 차례 집을 찾았다. 이마저 예비군 훈련 덕이었다. 집으로 가던 길에 용균은 어머니에게 “뭐 사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집 앞에서 파는 칡즙을 사오라고 했다. 용균은 비타민, 보습크림, 홍삼까지 사들고 왔다. 용균이 첫 월급으로 산 선물이었다. 엄마가 평소에 먹던, 즐겨 쓰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용균의 몸은 야위어 있었다. 평소 밥 한 그릇을 비우던 용균은 이날 반 공기도 먹지 못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도 한 끼밖에 못 먹었다던 용균은 “위가 줄었나보다”라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숨진 용균, 엄마가 남았다 </font></font>어머니는 살이 빠져 수척해진 아들에게 “왜 그런데도 그런 회사에 다녀야 하느냐”고 물었다. 용균은 “엄마, 요즘 젊은 애들이 일자리가 없어 갈 데가 없어. 면접 떨어지는 거 보면 몰라? 위험한 것 다 따지면 일할 자리가 없대”라고 했다. 어머니는 예비군 훈련 내내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치킨이며 각종 음식을 챙겨 먹일 뿐이었다.
11월1일 예비군 훈련 마지막 날 용균은 친한 친구 3명을 만났다. 용균은 친구들에게 치킨을 사줬다. 입사 기념으로 용균이 한턱을 낸 것이다. 치킨은 용균이 가장 좋아한 음식이었다. 치킨을 먹던 용균은 친구들에게 “나 이제 여기에서 일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어느 시점엔 한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다”라고 했다.
태안=<font color="#008ABD">글 </font>조윤영 기자 jyy@hani.co.kr,이재호 기자 ph@hani.co.kr<font color="#00847C"><font size="2">*이 기사는 이 2018년 12월24∼25일 이틀간 충남 태안군보건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인터뷰하고, 12월24∼27일 나흘간 고등학교 동창, 군대 선임, 한국발전기술 동료 등과 여러 차례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기사에 나오는 인용문과 상황은 기자가 직접 보고 들었거나 당사자들이 고 김용균씨가 말했다고 확인해준 내용입니다. 기사에 나오는 인물의 감정은 당사자들이 직접 설명한 것을 옮겼습니다.</font></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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