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언니의 투쟁은 끝이 없어라

제1194호 표지 모델 ‘한사성’ 김여진 사무국장 인터뷰

“웹하드 카르텔 실체 드러난 게 큰 성과… 여성주의 상담 프로그램 계획 중”
등록 2018-12-22 14:20 수정 2020-05-03 04:29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이 만난 사람들

에는 음계는 다르지만 조는 같은 어떤 목소리가 있다. 이미 과대 대표된 정·재계 인사, 기득권층, 주류의 목소리보다는 아픈 사람들과 소수자의 그것을 전하는 것이 2018년에도 일관된 보도 태도였다.

제1194호, 2018년 두 번째 표지. 검은 옷을 입은 여성 다섯이 카메라 앞에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사이버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싸우는 ‘한국사이버 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활동가 승진, 리아, 효린, 서랑, 여파다. 은 올 초 ‘싸우는 여자들이 이긴다’는 제목 아래 배용제 시인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고발한 경기도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인 ‘고발자5’,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하려는 남자를 찍은 ‘십대여성인권센터’와 , 그리고 한사성을 다뤘다. 이 세 싸움은 현실에서 여성들이 실제 마주하는 문제의 일부지만, 누군가에겐 절실한 전부이기도 하다.

성산업 맥락 속 구조를 들여다보다[%%IMAGE2%%]

“당시 표지 사진을 찍을 때 우리 표정이 근엄하긴 했다. 사진기자가 무서운 표정을 지어달라고 해서.”(웃음) 김여진 한사성 사무국장(활동명 여파)이 웃으며 말했다.

2018년은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만하다. 서지현 검사, 김지은씨뿐만 아니라 문화계, 학교, 직장 등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의 #미투(나도 당했다) 말하기가 일어났다.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지우는 방식에서 성별 권력, 구조 문제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위드유(당신과 함께한다) 운동도 번졌다. 특히 올해는 불법 촬영이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5차까지 이어진(2012년 12월20일 기준) 혜화역 시위에는 여성 약 25만 명(누적)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여성이 주최한 단일 집회로는 최대 인원이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한사성이 있다. 한사성은 2017년 2월 사이버 성폭력 근절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사성이 싸우는 대상은 단순히 불법 촬영물을 찍고 유포하고 소비하는 이들에 그치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은 불법 촬영물이 유포돼 성산업으로까지 고착된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그 구조를 들여다봤다. 단적인 활동이 웹하드 업체-필터링 업체-디지털 장의사가 유착된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한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웹하드 카르텔이 드러난 게 올해 성과의 핵심인 것 같다. 드러난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가 더 이상 개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성산업화라는 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성산업화를 어떻게 하면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접근을 시작한 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의 중요한 운동 골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웹하드 카르텔을 추적해온 한사성은 지난 2월 경기남부경찰청에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혹은 일상의 모든 장소에서 불법 촬영의 공포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먼저 반응했다. 김 사무국장은 “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시민들이 만든 웹하드 카르텔 관련 카드뉴스 등을 발견했을 때, 대중이 이 싸움에 함께하고 있다는 반가움이 컸다”고 했다.

이 밖에도 2019년 조직화 이후 3년차가 되는 한사성이 올해 이룬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한사성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대만, 일본에 있는 시민단체 5곳과 사이버 성폭력에 함께 맞서는 국제 연대체를 구성했다. 국내 포르노 사이트의 해외 서버가 가장 많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CCRI(Cyber Civil Rights Initiative)와는 피해 촬영물 유통시 처벌하는 조항을 담은 ‘이너프 액트’(Enough Act) 연방법 통과를 위해 협업한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 경찰이 미국과 수사 공조가 안 되는 이유가 연방법상 ‘리벤지 포르노’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올해 하반기 미국 의회에서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었는데 미뤄졌다.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내에서 입법 서명 운동을 진행했고, 내년에도 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후원해달라, 거침없이 운동하겠다

한사성은 또 외국에 서버를 둔 음란 사이트 130여 개를 고발하고,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 사이버 성폭력 전담팀이 만들어지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한사성의 피해자 지원 프로세스를 본떠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도 마련됐다. 또 스스로 찍은 영상물일지라도 동의 없이 유포되면 처벌하는 근거를 담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가 시행됐다. 그동안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했을 때만 처벌 대상이 되는 한계가 있었다. 한사성은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 개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문자 총공’(문자 보내기 총공세)도 했다. 김 사무국장은 “처음 법사위원들의 반응은 스스로 찍은 촬영물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게 왜 성폭력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들이 보낸 사진, 연인에게 보낸 사진과 영상이 이후에 유포됐을 때 겪는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설득해왔다”고 했다.

이런 활동들을 했음에도 한사성은 12월4일 페이스북에 올린 정기후원 모집 영상에서 ‘이것밖에 못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는 항상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체의 재정이 안정화되면 우리가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한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무급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말부터는 적지만 급여를 받는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에게 투자해주시면 타협 없이 더 거침없는 운동을 해내겠다”고 했다. 한사성이 싸우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다. 내년엔 ‘웹하드 카르텔’의 공동 주범들을 파헤칠 예정이다. 또 피해자를 위해 불법 영상물 삭제, 심리치료 연계, 법률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피해자의 여성주의 상담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피해자들을 상담해본 결과, 피해자들이 여성주의자냐, 여성주의에 이해가 있느냐, 혹은 페미니스트의 씨앗을 가지고 있느냐가 회복에 많은 영향을 줬다. 사이버 성폭력이 사회구조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생기는 폭력이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회복을 돕기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려 한다.” “기대되는 2019년을 위해” 한사성은 내년에 활동가들을 추가로 채용하고, 2월에 조직을 재정비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으려 한다.

“이젠 예전으론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여성들은 성폭력 구조를 알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거리에 나왔던 수만 명의 여성이 없었다면, 국민의 문제의식과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우리 활동의 성공은 요원했다. 변화를 만든 건 시민들이라서 그들의 힘을 믿고 있다.” 싸우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싸우는 여성들은 이길 것이다, 아니 싸우는 여성들이 이긴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제1226호 표지이야기 ‘안희정 사건’ 항소심 시작


“안희정에게 질문하라”


지난 3월5일 JTBC 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행당했다는 피해자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인터뷰 직후인 3월6일 새벽 안 전 지사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며 “저로 인해 고통받았을 피해자에게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가해자가 시인하고 사과한 사건이 피해자에 대한 의심으로 일그러진 것은 1심 재판 과정에서였다. 부부가 자는 침실에 침입했다, 성폭행 피해 다음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를 찾으러 다녔다는 등 안 전 도지사 쪽 증인들의 일방적 주장은 법정을 매개로 대중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다.
1심 법정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양산한, 성폭력 연장선에 있는 공간이었다. 은 제1226호에서 1심 재판부가 거의 배제한 피해자 검찰 진술 조서를 확보해 단독 보도했다. 안희정 1심 재판의 결과는 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선정한 ‘2018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되는 오명을 얻었다.
12월21일 ‘안희정 사건’의 항소심이 시작됐다. 법원은 2019년 1월4일과 1월9일 두 차례 공판을 더 열고 2월1일 선고한다는 일정을 밝힌 상태다. 1월9일 안 전 지사가 법정에서는 처음으로 판사의 심문을 받는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를 심문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만 안 전 지사가 출석한 상태에서 10시간 이상 증언했다.
피해자를 가까이서 돕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 사건을 “전형적이면서도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정리했다. “여성 노동자가 폭행·협박이 아니라 지위를 악용한 상사로부터 직장 내에서 겪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진보 정치인’이 가해자로 지목된 예외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153개 단체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조직해 피해자를 지원한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는 ‘진짜’, 안희정 사건 피해자의 #미투에는 ‘가짜’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형적인 태도다. 김 부소장은 “지난 세월 한국의 법·제도는 성폭력 피해를 협소하게 해석했고, 누구를 피해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매달렸다.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구분하는 법·제도의 한계 탓에 피해자들이 대중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대중 역시 법·제도의 선별 기준 그대로 진짜와 가짜를 나눈다”고 말했다.
안희정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각 ‘위력 성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줬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와 평판은 만신창이가 됐다. 김 부소장은 “정치인이 갖고 있는 게 돈만이 아니다. 대중적 인기가 있고, 사회 지도층과 네트워크가 있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가해자의 모든 자원은 피해자를 공격하는 데 쓰였다. 우리가 기존에 알던 2차 피해와는 양상이 또 달랐다. 가해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피해자의 2차 피해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피해자에 대해 “제 발로 가서 당했다” “안희정을 좋아했다” 등 사건을 왜곡하는 악성 댓글을 단 안 전 지사의 최측근 2명과 일반인 21명을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보냈다.
김 부소장은 1월9일로 예정된 안 전 지사의 법정 심문 기일에 여성단체들이 모여 ‘안희정에게 질문하라’는 시위를 할 계획이라 했다. 그가 꼽은 1호 질문은 이것이었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부하 직원의 동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했는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