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서점에 모인 ‘느슨한 심리독서모임’ 회원들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 어>를 읽은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고 위축되지 말라는 말은 때론 독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의 속내를 파고드는 상처다. (…) 모자라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오늘 잘하지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경험이다. 괜찮다.”( 중에서)
11월13일 저녁 8시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동네책방 대륙서점. ‘느슨한 심리독서모임’ 회원들이 이주의 선정 도서로 정한 (백세희 지음, 흔 펴냄)를 펼쳤다. 은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와 불안장애를 겪어온 지은이와 정신과 전문의가 나눈 대화를 엮은 에세이다. 전국 동네책방에서 시작된 입소문으로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다. 출간 5개월 만에 14쇄를 찍고 28만 부가 팔렸다.
모임 회원들은 을 읽은 느낌이나 생각을 이야기했다. 박수정(39)씨는 “작가가 ‘힘내’라는 말이 때론 독이 된다고 한 것에 공감한다. 그 말을 들으면 기운 없는데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도움이 안 됐다. 대신 ‘지금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장은진(33)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 사회에서 살다보니 계속 성과를 내기 위해 ‘힘내’라는 말만 한다.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설국열차를 탄 느낌이다. 그곳에서 내리면 낙오자가 되니까. 그래서 나 역시 ‘이 길이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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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31)씨는 앞만 보며 달리다보니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단다. 힘들고 아픈 줄도 모르고 보낸 시간이 많았던 건 아닌지 뒤돌아봤다. “이 책에 나오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영화의 의미를 꼭 찾아야 하나. 이성적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자신의 감정에 중심을 두라’고. 그 말을 듣고 나도 내 감정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30대 독서모임 회원들이 이야기한 책 은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위로 에세이’로 유명하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 담당 김현정씨는 “ 구매층 70%가 20~30대”라며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써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했다. ‘사실 나도 힘들었어요’라고 꺼내는 작가의 고백에 독자들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공감형 위로를 받는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등 ‘…괜찮아’류의 위로 에세이도 사랑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등 출세와 성공 지향적인 자기계발서의 키워드와는 다르다. 그때처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저성장·고실업 구조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이제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위로 에세이들도 서로의 힘듦에 공감하며 이제는 ‘나를 사랑하자, 나다워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완 작가는 저서 에서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 성공 매뉴얼에 따라 대입 4수를 하고 회사원과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까지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상의 기쁨을 놓치고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갔다. 그런 시간을 거친 하 작가는 “꿈같은 소리 하지 마라”며 자신만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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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출판평론가는 “ 등의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것은 삶이 팍팍하고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라는 걸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회에 혐오, 질시, 미움, 폭력,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이 들끓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상처를 주거나 받으니 점점 타인을 만나기 싫고 혼자 고립된다.” 누구보다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 2030세대에게 위로 에세이는 “잠시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라고 했다.
그들이 읽는 위로 에세이의 화법은 2010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와는 다른 방식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저성장 시대에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라” “위대한 꿈을 품어라”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다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위로가 아닌 기성세대의 꼰대식 충고일 뿐이다. 이제는 소확행을 위한 작은 위로를 권한다. 더하기보다 빼기의 삶,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나만의 속도 찾기 등을 이야기한다.
책 외에도 위로를 전하는 콘텐츠는 다양하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역시 ‘괜찮아’라는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노래 에서 “멈춰 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이라고 건넨다. 방탄소년단은 꿈을 갖지 못한 것이 불편하거나 불안한 이들에게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꿈이 없어도 행복하면 된다’고 토닥인다. 그 위로에는 ‘러브 유어셀프’(자신을 사랑하기)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청춘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까마중, 네이버 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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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는 까마중 작가의 도 2030세대의 ‘힐링툰’으로 꼽힌다. 월세를 걱정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대학생 ‘찬란’이 연극 동아리를 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대인 까마중 작가는 “대부분의 20대들이 남과 비교당하며 불안감과 열등감을 품고 살았다. 찬란하게 빛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며 “그런 우리에게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고 우리 모두 존중받을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인 이주희(27)씨는 를 보며 위로를 받는단다. “사회에서도, 자기계발서에서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넌 찬란한 인생의 주인공이 돼야 해’, 일이나 사회생활 속 경쟁에서 ‘꼭 성공해야 해’ ‘강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성공하지 않아도 넌 너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과 다르면 어때? 조금 머뭇거릴 수도 있는 거지’라며 조용히 다독거려줬다.”
위로의 콘텐츠에 담긴 ‘괜찮아’라는 말의 힘은 무엇일까. 를 펴낸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는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실수나 실패, 미숙함에 유난히 혹독하다. 개인을 평가할 때는 성과와 점수를 비교우위에 두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비난당하고 있다는 심정, 뭔가 의무를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긴장하고 위축돼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이 난 것처럼 불안하고 자꾸 자신을 닦달한다.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는데 자꾸 그러면 더 우울해지고 자신에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박 칼럼니스트는 “‘괜찮아’는 항상 평가받고 비판을 받으며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감성의 언어”라며 “힘들고 괴로울 때 ‘많이 힘들구나. 많이 힘들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구나.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렇게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그 말에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좀 쉬어도 괜찮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이 말들은 뭔가 이루는 걸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인생이라 이야기한다. 그렇게 ‘괜찮아’는 무한경쟁 속에서 숨이 차도록 빠르게 달리며 지치고 아픈 ‘번아웃(탈진) 시대’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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