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기업이 손해가 나면 국민 세금으로 막아주고, 이익은 오롯이 사유화하는 부조리가 학계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5일 과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기술을 가로챈 의혹을 받는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국립대 교수로서 다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외면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거짓 직무발명 신고서를 제출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속해야 할 특허를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민간기업 ‘툴젠’으로 넘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 의원, 감사원 감사 청구 검토</font></font>“서울대 교수가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에서 생긴 이익을 사유화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 교수는 연구윤리를 외면했다. 국립대라는 이유로 많은 특혜를 누려왔던 서울대도 문제가 크다. 사회와 학교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혜택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수천억원에 달할 수도 있는 손실을 초래했다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박 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서 해당 문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감사원의 감사 청구와 관련자 징계 요구까지 검토 중이다.
서울대가 직무발명 신고를 하지 않은 김 교수에게 아무런 징계도 하지 않고, 되레 수천억원의 가치가 있는 특허를 툴젠에 2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 헐값에 이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잠재적 이익을 제 발로 걷어차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편집 기술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미국에서는 바이오기업들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같은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한 대학과 연구기관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낸다.
유전자 과학기술 관련 뉴스를 다루는 온라인 매체 (Genomeweb)이 지난 6월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바이오제약업체인 에디타스(EDITAS)는 브로드연구소의 게놈편집 기술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위해 1억2500만달러(약 1404억원)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식 가치의 총합이 1조9천억원에 이르는 에디타스는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구글이 공동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브로드연구소는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공동으로 설립·운영하는 연구기관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술 활용해 수익 내는 하버드대</font></font>에디타스의 2017년 말 결산보고서를 보면 브로드연구소가 출원한 특허기술을 쓰기 위해 해마다 수백억원을 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하버드대는 자체적으로도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한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브로드연구소는 이처럼 사기업의 이익을 위한 특허 사용에는 철저하게 비용을 요구하지만 비영리 연구나 학술을 위한 특허기술 사용에는 별다른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브로드연구소 누리집을 보면 “비영리기관과 정부기관은 연구 수행을 위해서 라이선스(허락)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밝혀놓았다. 미국에서 학술기관이 사회적 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대는 해당 특허를 툴젠에 팔아넘기면서 해당 기술이 공익이나 학술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차단해버렸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특허 날치기를 김 교수의 개인적 일탈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박 의원은 “김 교수의 도덕성도 문제지만 서울대의 엉성한 특허 관리 실태도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서울대 지식재산권 규정’에 따르면 직무발명 내용을 산학협력단장에게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하지만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허위 보고 또는 보고 누락을 할 수 있는 구조다. 대학 내부 구성원들인 다른 교수들이 김 교수를 위해 눈감아준 건 아닌지도 확인해야 한다. 현재 연구비를 대학 산학협력단이 관리·감독하는 것은 내부자가 내부자를 관리하는 모양새라 문제가 있다. 정부나 정부출연기관의 지원을 받으면 대학 외부에서 기구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조사해 연구자의 잘못이 드러나면 부당이익을 환수해야 한다. 파면이나 영구 제명해 사후에도 학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규정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김 교수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기술 빼돌리기를 ‘개인의 부도덕성’과 ‘엉성한 시스템’ 두 요인이 맞물려 일어난 참사로 규정하며, 비슷한 사건이 더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표면적으로는 교수가 대학과 산학협력단을 기만한 것이지만 그 피해는 훨씬 광범위하다. 서울대가 기술을 보유했다면 대학의 구성원들이 이익을 나눠 갖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이익을 사유화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큰 손실을 입혔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묻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와 공공재단에서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연구의 이익은 사유화하는 빼돌리기가 여러 곳에서 횡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진수 교수와 서울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국회가 할 일이다.” 박 의원은 먼저 서울대가 특허출원해 기업에서 받는 특허 사용료를 모두 파악하고, 나아가 전체 대학의 특허출원과 소유권 부당 이전 문제도 전수조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외된 연구원과 대학원생들</font></font>특허기술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소외된 연구원들과 대학원생들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개발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한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간 인센티브는 한 사람당 20만~3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말을 이었다. “국민은 이 부분에 크게 분노할 것이다. 우리 학계는 아직 도급제 형식으로, 대학원생들이 ‘을’의 위치에 놓여 있다. 교수가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이들은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의 이익과 권리도 관심 갖고 보완하도록 하겠다.”
이재호·변지민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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