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서 학살된 수가 1만1131명. 여순사건, “남녀아동이라도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라”는 계엄포고령에 담긴 이승만의 말 한마디에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 </font>
어린 시절 회자하던 얘기가 있었다. 장교는 전투 중 도망치는 부하 군인을 즉결 총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그런 내용의 훈령이 있었다(1950년 7월25일 육군본부 작전훈령 제12호). 전시 상황과 군대 조직, 그리고 군인이라는 특수 신분은 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전시에는 법이 정지된다”는 말이 그 연장선에 있다. 계엄에 대한 더 큰 인식의 오류는 계엄이 선포되면 군이 문민권력을 대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계엄을 “군정의 일반 국민에의 확대를, 군사령관의 의사에 의한 민선정부의 의사의 대치”로 이해하는 인식이다.
그러나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격언이 헌법에 부합한다. 인간의 존엄을 중심으로 한 인권은 전시든 군대든 군인이든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다. 헌법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할 때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한다.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수단과 방법, 그 정도에서는 기본적 인권을 제한해 달성하려는 목적에 비례해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재판청구권의 본질 침해하는 요소 </font></font>한국의 법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아래 잠긴 국가조직의 거대 부분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헬조선’을 벗어나기 어렵다. 성문헌법만을 고치는 일은 소 잃고 외양간 도색만 다시 하는 꼴이다. 대한민국헌법이 ‘계엄헌법’인 까닭은 헌법의 핵심 내용을 관철할 군사법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시에 군이 어떻게 작동할지, 그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인권이 어떤 처지에 놓일지 알 수 없다. 심지어 헌법조문 자체가 군사 쿠데타의 흔적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의 군사주의적 오염은 군사 쿠데타 직후 개헌으로 이뤄졌다. 첫째, 헌법은 일반 국민에게 일정한 범죄를 행한 경우 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군사법원은 법관 자격이 없는 현역군인이 재판부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재판청구권의 본질을 침해한다.
둘째, 헌법은 군인 등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일정 방위산업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게 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의 직접 제약은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기본권 제한이다.
셋째, 헌법은 비상계엄시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해석상 그 권한의 주체는 대통령이겠지만, 실제로는 계엄사령관이 그 권한을 가질 것이다. 더욱이 ‘특별한 조치’의 의미가 불명확하므로 그 오·남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넷째, 국회가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사전에 관여할 수 없다. 국회가 대통령에게 계엄 해제를 사후에 요구하는 경우, 헌법은 국회에 ‘재적의원 과반수’라는 가중된 의결정족수를 요구한다. 국회의 통제 권한이 약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949년 제정된 계엄법 ‘일제 계엄령 복제판’</font></font>마지막으로 헌법은 군사재판을 관할하는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근거조항을 두면서 ‘재판관의 자격을 법률에 위임’하며, 재판받을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합위지경’(비상계엄)에서 공소와 상고를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 계엄령의 잔재인 동시에 한국전쟁 때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인권침해의 대표적 도구였던 단심제를 헌법이 명시적으로 승인한 점에서 문제가 많다.
계엄은 전시 군사상 필요에 응하기 위해, 또는 국가비상사태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병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외의 ‘적’(敵)에 대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내적으로 국민을 향해 군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계엄은 경찰력만으로는 질서유지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허용되므로 매우 엄격한 헌법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첫 계엄은 1948년 10월22일 제5여단 사령부 김백일이 여순사건에서 선포한 계엄인데, 굳이 법적 근거를 찾자면 일제 계엄령의 ‘임시계엄’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계엄법은 1949년 11월24일 제정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제 계엄령의 복제판이었다. 예를 들면, 제정 계엄법은 교통·통신이 두절돼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는 당해 지방을 관할하는 군사령관이 임시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에 대한 침해이고, 문민통제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통수권자’라고 해도 계엄법은 문민을 배제한 ‘군의 통치’를 구현하고 있었다.
1981년 전면 개정한 현행 계엄법도 여전히 위헌 요소를 안고 있다. 하나는 계엄사령관이 비상계엄의 경우 계엄 지역 내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고, 당해 지역 내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했다. 헌법상 문민통제 원칙 위반이고, 사법기관에 대하여는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 원칙 위반이다.
다른 하나는 비상계엄 지역 내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에 의해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단체행동에 관해 특별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헌법에서 일부 근거를 찾는다고는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 제한 법리에 위배된다.
계엄은 경찰력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우 예외적으로 군대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예외다. 국민 기본권의 예외적 제한이나 군의 행정·사법 권력 통제를 인정할 까닭이 없다. 평시 군사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할 이유도 없다.
미국의 전 연방대법원장 윌리엄 헙스 렌퀴스트는 “법은 전시에 침묵하지 않으며, 다만 다소 다른 목소리를 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2001)는 전국 계엄시 계엄지휘체계에 대해 대통령 아래 계엄사령관이 있고, 계엄사령관 산하에 중앙부처 장관과 지방행정기관,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 그리고 지구·지역 계엄사령관이 지휘를 받는 구조를 제시했다. 이는 헌법의 계엄조항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 체제의 일탈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7년 민주화’ 이후 군의 쿠데타 가능성</font></font>핵심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 이하의 법제, 특히 법 아닌 행정 영역의 각종 훈령이나 규정, 지침 등이다. 헌법이 안고 있는 군사독재의 잔재는 법률 개정으로 대부분 해소할 수 있다. 헌법과 달리 규정하는 법률이 모두 위헌인 것은 아니다. 맹목적인 형식논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법률의 역진을 막아 세울 뿐 전진을 방해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가 그 길을 인도할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계엄령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헌법의 규범을 소외시키고 배척하는 위헌 상태를 낳았다. 독일기본법의 경우 군대는 비상사태시에 민간인과 그 재산 보호 그리고 교통정리 임무를 수행하고, 경찰 업무를 지원할 때는 행정관청과 ‘협력’할 뿐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보호가 우선이며, 행정관청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지원·협력하는 보충적 역할에 그친다. 계엄은 헌법 질서가 정지되거나 중단되는 상태가 아니고, 법치주의·적법절차·비례원칙 등 헌법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엄 상황에서도 군이 어떻게 헌법 규범을 지키게 할지 국회는 계엄법을 촘촘하게 직조해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 헌법체제가 국가보안 헌법체제와 병영 헌법체제의 탈헌법적 특성을 안고 있음을 주장해왔다. 다만 입버릇처럼 ‘군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누가 봐도 ‘87년 민주화’ 이후 군의 쿠데타 가능성을 말한다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드러났다.
개헌은 권력의 문제이고, 군·경찰·검찰·정보기관 등의 국가권력기구를 민주적·법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통제장치 없는 권력기구는 언제든 폭력적 조직으로 돌변할 수 있고, 성문의 헌법 규범을 언제든 휴지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독재의 역사적 경험이 길고,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제도적으로 헌법 규범에 걸맞게 법제를 개혁하지 못했다.
군대의 경우 군의 평시 동원, 해외 파병, 인권침해 등 다양한 문제가 거듭해서 일어났음에도, 군은 형식적 개선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굳건히 현상 유지를 외칠 뿐 개혁을 거부했다. 각종 법제와 관행에서 아직도 군은 ‘치외법권’ 영역으로 남아 있다.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라는 말부터 문제다. ‘통수권’이란 용어는 프로이센에서는 의회 통제, 군국주의 일본에서는 내각의 통제 없는 군 지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이야말로 군 관련 헌법과 법률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큰 지휘관일수록 더 엄격한 군기가 필요함에도 ‘계급권력’이 작동해 군에 대한 훈육을 가로막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군인을 민주시민으로 되돌리는 것 </font></font>계엄헌법은 일반 국민조차 군인으로 대한다. 계엄헌법을 극복하는 군 개혁 방안 중 하나는 군인을 민주시민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1950년대 독일이 과거 히틀러의 불법 명령을 따랐던 군대를 개혁하면서 군인의 인권 보장과 군에 대한 문민통제와 법치, 그리고 불법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군인상을 강조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헌정 문란’ 사건을 돌이켜보면, 박근혜·원세훈·양승태·김기춘 등의 헌법을 위반한 범죄 외에, 그들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와 명령에 따랐던 사람들과 조직의 ‘헌법 범죄’가 더 큰 문제였다. 민주공화국의 군인은 민주시민권을 회복함으로써 전사이기 전에 먼저 평화와 인권의 수호자로서 거듭나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계엄·전시법제와 군 사법제도 혁신, 그리고 국방감독옴부즈맨 도입 등 군 전반에 걸친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군이 시민사회와 함께 개혁의 길로 나서야 대한민국헌법은 계엄헌법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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