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이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에어비앤비로 바뀌고, 마을의 채소 가게와 철물점·미용실이 카페와 갤러리로 넘어간다. 이때 임대료가 치솟아 주민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가게를 잃는다.
사회학자들은 세계의 관광도시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긴 신조어를 만들었다. ‘관광지가 된다’는 뜻의 단어(Touristify·투어리스티피)와 이미 익숙해진 ‘젠트리피케이션’(내쫓김)이란 단어를 합성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다. 관광지가 되면서 주민이 쫓겨나거나 이주해야 하는 등 주거를 위협받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 독일의 베를린에서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기승을 부리고, 서울 북촌과 제주 일부 지역에서도 그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도시들
관광 혐오가 퍼지는 유럽 도시들에서는 에어비앤비가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조장하는 제1의 공적으로 지목된다. 임영신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는 10~20채 집을 한꺼번에 빌려 에어비앤비 사업을 하는 이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 월세가 올라 서민들이 임대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빌릴 집이 하나 나오면 100명 이상 줄을 서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티투어리즘(관광산업 반대) 운동이 2012년 처음 벌어진 곳도 베를린이었다. 극심한 투어리스티피케이션에 시달린 베를린 시민들이 관광객에게 “베를린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방정부에서 불법적인 에어비앤비 운영을 단속하는 움직임도 퍼지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 멕시코 칸쿤의 지속가능한 관광 콘퍼런스에 참석한 바르셀로나 관광정책 담당자는 “바르셀로나에는 1만6천 개의 에어비앤비가 운영되고 있고, 그중 절반이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법 에어비앤비가 도시 주거지를 관광지로 바꾸면서, 오버투어리즘의 가장 극단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고,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막고 시민의 정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 에어비앤비에 60만유로(약 7억8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했다. 바르셀로나시는 에어비앤비가 1년에 90일 이상 영업하면 불법으로 규정한다. 바르셀로나시는 “도시는 살기 위한 것이지 팔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북촌에서 가장 뚜렷한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관광객의 소음 피해 등을 견디다 못한 북촌로11길 주민들 다수가 집을 비워둔 채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마을에서 가게를 꾸리던 이웃들은 임대료를 감당 못해 떠나고, 그 자리에 한복대여점이 들어섰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지난해 11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제주지역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제주도민의 다수가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부정적 영향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무제한적인 관광객 증가를 용인하기보다는 제주도가 수용 가능한 관광객 수를 책정해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광에도 ‘정원’이 있다
임영신 공동책임자는 “20명 정원의 음식점에 2천 명이 들이닥치고, 300명 정원의 영화관에 5천 명이 들어왔다고 상상해보라”고 묻는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가만히 참고만 있지 않겠죠. 그런데 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공간을 향해서는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는 건가요.”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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