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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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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평화, ‘동맹’의 운명은?

‘평창 평화체제’ 처음 거론한 구갑우 교수 “비핵화와 평화체제,

한-미 동맹 지속은 동시 달성 불가능한 정책 목표”
등록 2018-05-01 15:48 수정 2020-05-03 04:28

“냉전이 막을 내린 뒤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핵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핵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더욱 커졌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것, 그게 2017년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다.”

전쟁 위기의 끝에서 꿈처럼 평화를 만났다. ‘올림픽 휴전’과 북한의 올림픽 참가, 한-미 연합훈련 연기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 선언까지….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기적 같은 한반도 정세를 일컫는 ‘평창 평화체제’란 표현의 ‘저작권자’인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사진)는 “한반도 문제를 ‘안보 딜레마’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북은 언제까지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안보 딜레마를 탈출하는 방법

남북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4월25일 서울 삼청동 연구실에서 과 만난 구 교수는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안보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먼저 북한의 핵억지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안은 우리도 핵개발에 나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거다. 냉전 시절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에 기반한 공포의 균형이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북한의 체제 붕괴를 유도하는 극단적인 방식도 있다. 미국 쪽에서 제법 유력하게 거론되던 이른바 ‘코피 작전’이 그것이다.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우회하는 방법도 있다. 핵과 교류·협력을 분리해서, 교류·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른바 안보와 경제를 맞바꾸는, 그간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외교적 해법으로 사용해온 방식이다. 솔직히, 실패했다.

남은 방식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이른바 ‘안보 대 안보 교환’ 방식이다.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시켜, 비핵화를 이루자는 거다. ‘평창체제’의 핵심은 비핵화로 평화를 추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추동해 그 결과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구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전에는 더욱 강력한 군사적 대응과 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이는 후속 조처가 이뤄졌을 텐데, 그렇게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한-미 연합훈련 연기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꺼내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창올림픽 참가로 화답했다. 이후에도 남·북·미 3각 구도 속에 모든 게 선제적으로 이뤄지면서 정세가 앞으로 나아갔다. ‘게임이론’에서 수익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직면한 삼중 모순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구 교수는 “이제는 ‘쌍중단’(핵·미사일 시험과 군사훈련 동시 중단)에서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맞교환)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평창체제’를 통해 잠정적으로 만들어진 한반도 정세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협상이 본격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그 과정에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를 구 교수는 우리가 직면한 ‘트릴레마’(삼중 모순)라고 표현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 동맹 지속은 한국 정부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정책 목표다. 셋 중 두 가지만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그러니 불가능한 삼위일체, 곧 트릴레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한-미 동맹 지속을 택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취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역으로 북한이 한-미 동맹의 지속을 인정한다면, 그 동맹의 목적은 무엇인가? 또 한-미 동맹이 북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뤄졌을 때 한-미 동맹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구 교수의 지적이다.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부터, 한-미 동맹의 성격은 바뀔 수밖에 없다. 서로 적이 아니라면, 주한미군은 ‘대북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대립 구도 아래서 주한미군이 남는다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뒤 유지해온 한-미 동맹의 본질도 달라진다. 중국 견제용이란 점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삼각 모순’에서 빠져나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려면 한-미 동맹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방법은 무엇일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성과인 9·19 공동성명(2005년)과 그 초기적인 이행 방안을 담은 2·13 합의(2007년)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구 교수의 지적이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6자회담 참가국(남북한과 미·중·러·일)은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등 5개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구 교수가 주목하는 건 러시아가 의장국을 맡기로 한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자안보 협력이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양자동맹으로 묶인 게 동북아의 문제다. 동북아 차원에서 안보와 관련된 공동의 이익을 찾는다면, 북한의 안보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 이 경우, 주한미군은 동북아 차원의 평화유지군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다지구도로 흘러갈 비핵화 협상

남북 정상회담은 막을 내렸다.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5월 말 또는 6월 초로 예정돼 있다. 그사이 북-중·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 4개국의 연쇄 양자 정상회담 일정에서 빠진 건 한-중 정상회담뿐이다. 구 교수는 “북-미가 비핵화 협상을 일괄 타결한다면, 대북 제재 해제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방안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질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협상이 분리된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핵화 협상은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해 다자구도로 흘러갈 수 있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이다.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인 중국은 평화체제 협상에서도 역할이 필요하다. 한-중 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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