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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최순실의 비선 라인 해경 해체도 주물렀나

해경 작성 ‘BH부속실, 해경 수사권 VIP보고’ 정보보고서 입수… 제2부속실 해경 해체 후속 작업 관여 정황

“이영선 행정관이 부처 개편 관련 대통령 보고서 민간인에게 작성 부탁”… 정보보고서 내용 실제 법안에 반영
등록 2018-04-10 13:38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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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농단’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제2부속실이 해양경찰청 해체 후속 작업에 개입한 정황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했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 수립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번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조직 재편 거론될 때 작성된 문서
이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제2부속실이 해양경찰청 해체 후속 작업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이 작성될 무렵, 세월호 참사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 산하 본부로 축소 재편하는 정부 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제2부속실이 해양경찰청 해체 후속 작업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이 작성될 무렵, 세월호 참사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 산하 본부로 축소 재편하는 정부 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은 최근 해양경찰청이 2014년 9~10월께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BH(청와대)부속실, 해경의 수사권 관련 VIP보고 예정’(정보보고서) 문서를 입수했다. 이 자료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현장에서 초동대응에 실패해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조직 개편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에 해경이 작성했다. 해경은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5월 조직 해체 방침을 밝힌 뒤 조직 기능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문서에서 해경은 “최근 BH부속실 이영선 행정관이 (민간인인) ㄱ씨에게 해경의 어업 단속과 관련하여 수사권이 존치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11월 초 VIP께 보고할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부탁했다. 이 행정관과 ㄱ씨는 지속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행정관이 자신이 직접 나서서 관련 자료 확보(요구) 등 해당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면서 (보고서 작성을) ㄱ씨에게 부탁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경 정보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개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자신의 고유 업무와 무관한 정부 부처 조직 개편과 관련된 ‘대통령 보고서’를 민간인인 지인에게 부탁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이영선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근무했다. 2016년 말 시작된 최순실씨 국정 농단을 둘러싼 국회 국정조사 및 검찰수사 과정에서 최씨의 수족 노릇을 한 인물로 확인된 바 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2014년 4월16일 최씨를 업무용 승합차에 태워 청와대 관저로 데리고 온 이 역시 이 전 행정관이었다. 보고서에는 이 전 행정관이 주도해 만드는 보고서의 분량이 ‘50페이지’이며 (2014년) ‘10월 말까지 작성 완료해 11월 초 VIP께 보고할 예정’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도 담겨 있다.

최순실씨가 세월호 참사와 이후 정부의 사고 수습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국정 농단 수사를 지켜보던 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확인된 사실은 검찰이 3월28일 내놓은 수사 결과가 전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지용)는 이날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등’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세월호 참사 당일 최씨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을 밝혔다. 최씨는 사고 당일 오후 2시15분께 청와대에 도착해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라 알려진 정호성·이재만·안봉근 등과 회의한 뒤 박 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했다.

주목할 것은 이 전 행정관이 몸담았던 청와대 제2부속실의 존재다. 역대 정부의 청와대 제1부속실은 대통령의 일정과 동선,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일정과 동선을 챙기는 구실을 해왔다. 그 때문에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배우자가 없는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선 제2부속실이 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소외된 이들을 살피는 민원 창구로 제2부속실을 활용할 것”이라며 이 조직을 유지했다.

제2부속실이 정부 조직 개편 창구?

이후 청와대 제2부속실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순실씨와 친분이 있는 헬스트레이너 윤전추씨가 제2부속실 3급 행정관으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 조직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지만,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부터 청와대 개각으로 제2부속실이 사라지는 2015년 1월까지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안봉근씨가 이 조직을 맡았다. 결국, 이 전 행전관 등 청와대 제2부속실 직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의상을 챙기고, 성형외과 의사 등 비선 의료진의 청와대 출입을 담당하는 등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수족처럼 움직였음이 드러났다.

분명한 점은, 해경 해체와 기능 조정 등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일은 제2부속실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장이었던 이은희씨는 4월5일 과 한 통화에서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의전 등을 담당한다. 영부인의 대외 활동이나 대통령 부부 동반 외교 일정을 챙기는 일 등이 주요 업무다. 예외적으로 영부인이 관심을 기울였던 환경, 교육, 문화 등의 영역에 대한 보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조직 개편은 제2부속실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2부속실은 물론 제1부속실도 정부 부처 업무에 대해 자체 보고서를 만든 일은 없다. 해경 관련 보고서를 제2부속실에서 주도해 생산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해경을 담당하는 청와대 조직은 정무수석 비서관실이다. 해경은 참사 이후 세월호 구조와 수색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매일 작성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보고해왔다. 하지만 이 확보한 해경 정보보고서를 보면, 이런 공식 라인 외에 제2부속실이라는 비선 라인이 움직인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배경에 최순실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해경 해체 후속 조처 같은 국가의 중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 보고서를 제2부속실이 민간인에게 작성하게 했다면, 국정을 총괄하는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등 국가의 공적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우린 이를 ‘국정 농단’이라 이른다.

제2부속실이 각종 정부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 단서는 이전에도 공개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7년 8월, 청와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제2부속실에서 쓰던 공유 폴더에서 2013년부터 2015년 1월까지의 문서파일 9308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 안에는 국무회의 문서 292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문서 221건,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문서 등 202건이 포함돼 있었다. 청와대는 당시 ‘제2부속실’ 문건에 대해 “일부 문서파일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 농단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당사자 부인에도 증폭되는 의혹

해경 정보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실제 법안 처리 과정에도 반영됐다. 정보보고서에는 “이번 (대통령) 보고서는 최근 해군에서 해경 해체시 어업 단속권을 자신들이 맡겠다고 BH(청와대)에 보고한 일과 무관치 않다고 하며, 어업 단속 관련 수사권이 빠지는 경우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라고 쓰여 있다. 해경의 어업 단속 수사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다.

2014년 10월22일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과 안전행정부는 당정협의회를 열어 해경을 해체해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안전본부로 기능을 이관하는 정부 원안을 합의했다. 하지만 해경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정부 원안은 수정됐다. 이런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11월7일 국회 본의회를 통과했다. 정보보고서에 나온 대로 해경 ‘수사권 존치’가 이뤄진 것이다.

해경 정보보고서에서 대통령 보고서 작성을 부탁받은 것으로 나오는 ㄱ씨는 과 만나, 정보보고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ㄱ씨는 “이영선 전 행정관과 친한 것은 맞다. 또 국회에서 해경 담당 업무를 한 경험이 있고, 해양법 박사 학위를 받아 해경 수사권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맞다”면서도 “해경 수사권과 관련해 해경을 접촉한 적이 없고 이 전 행정관에게 관련 의견을 전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제시한 정보보고서 내용을 직접 확인한 뒤 “당시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해경 정책에 영향을 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이런 내용의 정보보고서가 왜 작성됐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해경 역시 이 정보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경 관계자는 에 “현재까지 해경 수사권과 관련해 청와대 쪽에 입장을 전달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인이 대통령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내용도 전혀 아는 바 없다. 또 대통령 보고를 위해 민간인에게 자료 협조 등을 해준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보고서 내용이 거짓이라면 ㄱ씨와 이 전 행정관의 친분을 아는 해경 공무원이 ‘청와대’까지 언급해가며 거짓 정보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위험은 크고 실익이 전혀 없는 일이다. 또 당시는 ‘국정 농단’ 사건이 알려지기 전이라 해경이 제2부속실 일개 행정관인 이씨에게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검은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드러난 것은 전체 그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최순실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박 전 대통령,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참사 당일 대응을 주도했다. 이 회의는 한 번으로 끝났을까. 끊임없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고립시키고, 시민들의 애도를 모욕했던 ‘검은손’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이제 밝혀야 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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