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아요.”
이 짧은 한마디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멤 피로르스(35)가 지난 5년간 겪어야 했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2012년 10월25일 새벽 1시50분께 경북 포항의 한 주조공장에서 섭씨 1500도의 전기용광로 안 쇳물 10여ℓ가 용해 과정 중 불순물에서 발생한 가스 때문에 튀어올랐다. 쇳물은 용광로 주변에 있던 피로르스의 얼굴과 왼팔을 덮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화상 입고 마음 다친 5년차 이주노동자 </font></font>사고 뒤 병원 중환자실에 머무는 동안, 피로르스는 화상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하루에 10여 차례 신경안정제 주사를 맞아야 했다. 너무 자주 맞으면 심장마비의 우려가 있어 낮 시간에 의료진은 그에게 주사를 주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몰려오는 고통을 견디기보단 죽고 싶었다.” 피로르스는 그때의 아픔을 회상했다. 화상 입은 눈 주변을 붕대로 감싼 탓에 그에게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만 펼쳐졌다. 피로르스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화상으로 얼굴이 문드러진 피로르스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4월4일이었다. 포항이주노동자센터에서 얼굴을 마주한 피로르스의 한국어는 서툴렀다. 김성진 센터장이 피로르스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말했다. “일하는 데 기능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화상 입을 때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몸을 다쳐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쳐 일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그로부터 3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난 10월28일, 김 센터장은 “피로르스가 여전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리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쇳물이 얼굴에 튀면서 눈꺼풀이 타들어갔어요. 이 친구가 가끔 속상한 마음에 소주 서너 병을 들이켜기도 하는데, 그러면 눈 주변이 더 시뻘게져요. 울기까지 하면 눈알도 시뻘게지는데, 마음이 아파서 그거 못 봐요. 상황이 이런데도 나라에서 정신적 치료를 한 번도 안 해줬어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피해 노동자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다. 상담 요건이 까다롭고 한국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관석 근로복지공단 재활국 재활계획부 차장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외국인 산재 피해자의 경우 언어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
피로르스가 산재를 입은 것은 5년 전이지만, 그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고향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외모로 차별할 것이다.” 피로르스는 이런 걱정에 얼굴 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의 꿈은 “친구들 결혼식에서 마음 편히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다.
피로르스는 사고 뒤 지금까지 수십 차례 얼굴 복원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용만 1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산재요양비로 인정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30%에 이른다. 2016년 3월15일부터 4월1일까지의 수술비용을 살펴보자. 피로르스는 왼쪽 귀와 왼쪽 위 눈꺼풀 교정 수술을 받으며 수술비와 입원비로 모두 765만1784원을 청구받았다. 이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은 전체의 70% 정도인 532만1438원, 비급여 항목으로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233만346원(30.45%)이었다. 피로르스는 달마다 받는 휴업급여 100여만원을 대부분 치료비로 쓰고 있다. 집세가 없어 한겨울 공장 휴게실에서 전기장판만 하나 깔고 무수히 많은 밤을 견뎌내야 했다.
경남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의 작은 조선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캄보디아인 팔리 폰록(35)의 사정도 비슷하다. 폰록이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은 2013년 11월11일이었다. 조선소에서 그라인더로 선체 용접 부위를 마감하는 일을 하는 폰록은, 작업 중 얼굴에 불꽃이 튀는 걸 막기 위해 특수작업복을 입었다. 전신을 밀폐한 우주복 모양의 작업복에 작업반장이 호흡용 호스를 연결했다.
“주위펑, 주위펑!”(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아침 8시30분. 옆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소만이 살려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소만은 작업복 안에서 불타고 있었다. 폰록은 소만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동시에 그의 작업복에도 불길이 옮겨붙었다.
사고 원인은 작업반장의 실수였다. 작업반장은 작업복에 호흡용 공기호스가 아닌 용접용 산소호스를 연결했다. 작업복 안에 가득 찬 산소에 용접 마감 중에 발생한 불똥이 옮겨붙은 것이다. 폰록은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선체 갑판에서 3m 아래 배다리로 뛰어내려 물이 2cm가량 고인 바닥에 몸을 굴렸다. 시커멓게 탄 몸을 이끌고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500여m를 걸어 119 구급차에 탔다.
사고가 발생하고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화상으로 망가진 몸을 고치기 위해 복원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 그의 상태를 보면, 왼쪽 뺨을 제외하고 얼굴과 머리 전체에 3도, 목 부위에 3도, 오른쪽 팔·어깨·등·가슴에 3도, 두 다리 3도, 왼팔 2도의 전신 화상을 입었다. 오른쪽 귀는 다 타고 녹아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다.
폰록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4월1일이었다. 그는 지난 7월21일 기자를 다시 만나 말했다. “코이짯(속상해요). 하지만 남자는 울지 않아야 해요.” 그를 돌보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경남 통영까지 온 어머니 숨헤앙(54)이 만신창이가 된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만하니 다행이야.” “못생겨졌지만 속상해하지 마.” “울면 내가 속상해.” 폰록은 어머니가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랄까봐 전화로 미리 자신의 몸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지만 2016년 10월27일 한국에 와서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본 어머니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머니는 몇 달을 계속 울었고, 그 탓인지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젠 안경을 써도 아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문제는, 다시 치료비용이다. 폰록 역시 화상 산재 뒤 30여 차례 수술받아 비급여로 6천만여원을 청구받았다. 이 중 4천여만원은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가 냈지만 폰록도 2천만여원을 분담하면서 그간 한국서 모은 돈을 모두 써버렸다. 앞으로 10여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작업반장이 소속해 있던 하도급업체는 조선업계 불황으로 더는 치료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탈출구는 어디에 </font></font>멤 피로르스와 폰록은 ‘지옥’이 돼버린 한국을 떠나지 못한 채 마음 치료를 위해 수년째 얼굴 복원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 여전히 고통당하고 있는 제2의 피로르스들과 폰록들을 위해 한국 사회는 어떻게 탈출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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