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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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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보유 인정 뒤 대화하라”

성공적 비핵화 모델인 몽골의 엔자이칸 잘갈사이칸 전 유엔 대표…

“북핵 인정해주되 핵폐기 위한 대화 적극 나서야”
등록 2017-11-08 02:15 수정 2020-05-03 04:28

한동안 악화일로를 걷던 한-중 관계는 본격 해빙기를 맞을까.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촉발된 한-중 갈등이 급격히 봉합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10월31일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이하 협의 결과)를 발표하고, 11월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첫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992년 단독으로 비핵국가 선포</font></font>

한-중 정부가 공개한 협의 결과를 보면, 양국 정부는 그동안의 외교 소통으로 “한반도 비핵화 실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차 확인”하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밝혔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핵심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북한은 한국과 미국 모두와 대화하고 있지 않다.

북핵이라는 어려운 문제의 돌파구를 뚫으려면, 때때로 당사자의 골몰보다 나그네의 지혜가 더 필요할 수 있다. 엔자이칸 잘갈사이칸(사진) 전 몽골 유엔 대표는 한반도 문제에 관료적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숙성시켜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몽골은 작은 나라지만 국제 외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중국과 옛소련 사이에 낀 몽골 정부는, 1992년 단독으로 ‘비핵국가’를 선포했다. 이후 다자적 외교 노력 끝에 2012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P5)으로부터 불가침 원칙의 비핵무기지대(NWFZ) 인정을 끌어냈다. 몽골의 비핵무기지대 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은, 몽골을 “강대국들의 지역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도구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받았다는 의미다.

엔자이칸 대사는 몽골 국가안보위원회 비서실장, 몽골 유엔 대표, 몽골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표 등을 하며 비핵무기지대 선언과 인정에 핵심 구실을 했다. 현재는 국제 평화 비정부기구(NGO)인 ‘블루배너’ 의장을 맡고 있다. 블루배너는 동북아시아 민간 6자회담 격인 ‘울란바토르 프로세스’를 주관하는 단체다. 울란바토르 프로세스에는 북한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뿐 아니라 한국의 참여연대, 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NARPI) 등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엔자이칸 대사를 10월26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엔자이칸 대사는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핵의 실질적 인정이라는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주되, 궁극적으로 핵폐기를 국제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은 잇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9월엔 6차 핵실험도 했다. 이제는 표면적으로 남북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상황이 나쁘고 유감스러울 정도로 복잡하다. (웃음) 이럴 때일수록 단순해야 한다. 중요한 건 결국 양자다. 한국과 북한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모든 것은 남북 양쪽에 달려 있다. 남북 합의는 (한반도를 둘러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드 때문에 북핵 초점 안 맞춰져” </font></font>

강력한 합의를 끌어낼 카드가 한국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동맹 문제를 봐야 한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든 최종 권한이 한국에 있고 한국의 참여와 승인으로만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어떤 문제이든 한국의 결정, 한국의 논의 참여가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미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 한국과 북한이 모두 대화를 해야 한다면 그 선택의 주체는 한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3일부터 아시아 국가를 순방한다. 한-미 정상회담은 7일로 예정돼 있다. 한국 정부가 트럼트 대통령에게서 무엇을 얻어내야 할까.

최고위급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궁금하다. (웃음) 북한은 미국과 직접적 대화를 바란다. 미국이 대화에 나설지 결정할 때는 한국의 상황이 중요하다.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이슈가 중요하고,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전해야 한다.

제3자 처지에서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사드 배치가 여러 상황을 더 어렵게 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미국과 협의하기 앞서 다른 강대국들과의 관계도 생각했어야 한다. 미국이 중국·러시아와 긴장 관계를 높이는 데 한국이 도움을 줘서는 안 됐다. 동북아시아 안에서 강대국 사이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북핵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다. 동북아 국가들의 관계가 나빠지면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옳은 얘기지만, 한국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미국 의존성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는지와 관계없이 해결되지 않는 상수로 존재한다.

몽골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나라다. 그러나 몽골의 예가 도움이 될 것이다. 몽골은 자국에 소련 군사 기지가 있을 정도로 소련 의존도가 높은 나라였다. 소련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던 냉전 시대, 소련은 중국의 핵시설을 먼저 공격할 계획을 세워 이를 몽골 정부에 통보하며 놀라지 말라고 했다. 미국에 중국을 선제공격하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냐고 비공식적으로 묻기도 했다. 이때 몽골 정부는 자국 이익만 도모하는 강대국과 동맹관계에 집착하다 외교적 독립성을 잃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체적으로는 강대국 간 분쟁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비핵무기지대의 아이디어가 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 북-미 직접 대화 교량 구실해야”</font></font>소련 의존도가 절대적이던 몽골이 어떻게 그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나.

몽골은 미국과 소련, 그리고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이중의 냉전을 겪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외교적 독립성을 잃어왔다. 강대국들은 위험이 있다고 느끼면 자국의 안전만 생각할 뿐 동맹국의 안전은 걱정해주지 않는다. 동맹국의 국익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생각할 뿐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몽골의 비핵무기지대 선언만 봐도 그렇다. 만약 몽골 정부가 이 문제를 사전에 소련·중국과 상의했다면 해낼 수 있었을까. 두 강대국과 협의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지 않았을까. 몽골은 비핵무기지대가 소련과 중국의 이익에 어떻게 복무하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유엔 총회에서 대통령이 발표했다. 내부적 선언이 아니라 전세계가 알 수 있는 선언을 해야 다른 나라의 공감을 얻어, 비로소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몽골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나.

몽골은 강대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라서 그런지, 정부와 비정부기구가 동의하는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외교다. 같은 비전을 갖고 협력해야 국제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강력한 외교정책을 펼치려면 대중에게 원칙을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함께할 수 있다.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북핵 위협이 커져, 보수 쪽에선 진지하게 전술핵 배치도 주장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불에 계속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동북아 국가에도 나쁜 선례가 될 뿐이다. (이런 주장은) 무엇보다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인 대화를 차단한다.

당신은 양자 협상과 다자 협상 모두에서 풍부한 경험이 있다. 남북 관계 개선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직접 대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본다. 거기서부터다. 한국은 그 얘길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웃음) 하지만 한국이 걱정할 건 없다. 북한과 미국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한국이 지원해야 한다. 새로 임명된 유엔 사무총장도 그 과정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 나설까. 한국에서도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한국이 대화를 여는 ‘교량’ 구실을 해줘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건너는(패싱) 대상이 아니라 다리다. 미국이 다리를 건너도록 설득해야 한다. 동맹국으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시간은 동북아 평화에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국제 외교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얘기한다. 그 시간은 철저히 북한의 편이었다. 핵실험만 해도 그렇다. 북한이 뭘 시작하든 마무리할 시간을 한국 정부가 벌어준 꼴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화는 핵 포기 위해 하는 것”</font></font>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한다는 것은, 미국이 암묵적으로 북핵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외교적 변화다.

물론 간단치 않다. 하지만 협상과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지 전제가 아니다. 북한이 정치적·실질적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지 않나. 우리가 인정할 것이 북한의 ‘계속적인’ 핵보유는 아니다. 일단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해 이를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대화는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건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다. (북핵의) 실질적 인정이라는 북한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주되, 궁극적으로 핵폐기를 국제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핵무기 6기를 갖고 있을 때, 핵폐기 과정을 국제 협상으로 이루었다. 한국이 먼저, 한반도 비핵화라는 좁은 상자에서 탈출해 공간을 열어야 한다.

북핵을 인정하면, 일본의 핵무장 혹은 군비 증강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요구하는 일본 시민사회의 힘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반핵운동은 일본 사회에서 가장 큰 운동이다. 북핵은 한반도라는 공간 안에서 좁게 해석하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큰 국가이건 작은 국가이건, 북핵의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몽골 속담 중에 “호수가 평온해야 오리가 평온하다”는 말이 있다. 호수가 평온하지 않으면 어떤 오리도 평온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font color="#008ABD">글</font>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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