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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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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부는 촛불민심을 밝혔나

세월호 수색 작업·백남기 사건 바로잡기

‘적폐 청산’ 행보, 정치 개혁과 협치는 앞으로의 과제
등록 2017-10-31 15:00 수정 2020-05-03 04:28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8일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북구 운정동의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8일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북구 운정동의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새 정부는 작년 겨울 촛불광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국민의 희망,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출발이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의 열망으로 탄생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타오른 촛불은 사리사욕으로 국기를 스스로 뒤흔든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다.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한 촛불이 타오른 지 꼭 1년. 촛불정부는 얼마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바뀐 정부는 박근혜 정권에서 억눌린 억울함을 푸는 일에 착수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확연히 바뀌었다. 박근혜 정권의 무책임한 미루기와 회피 때문에 인양이 미뤄졌던 세월호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마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091일 만이었다. 미수습자의 수색 작업도 속도를 냈다. 인양 작업 뒤 4명의 유골이 추가 발견돼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줬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근혜 정권에서 억눌린 억울함 푸는 일</font></font>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유가족들은 이전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당시 상황 보고 일지와 국가위기 관리 기본 지침까지 불법 변경하며 진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8월 유가족 200여 명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고,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 다섯 분의 소식이 없어 정부도 애가 탄다.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과와 위로의 말씀 드린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서 세월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는 “(그동안) 너무 억울했고 분통도 터졌는데 지금은 너무 감동스럽다. 이렇게 쉽게 (청와대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감격스럽다”고 했다.

새 정부는 촛불의 도화선이 됐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도 빠르게 바로잡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숨진 백남기 농민에게 사과하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은 책임자 처벌을 두고 발뺌하기 급급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9월 “사람이 다쳤거나 또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물대포 직사 살수가 직접적 원인이었음에도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그러나 병원 쪽은 정권이 바뀌고 한 달 뒤인 지난 6월 사인을 외인사로 뒤늦게 수정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드 기습 배치에 비판 목소리 </font></font>

사인이 바뀌자 경찰도 태도를 바꿨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6월과 9월 “고 백남기 농민님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 청장은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백남기 농민 사건을 첫 사안으로 다룰 것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집회·시위에 살수차나 차벽을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책임자 처벌을 거론하지 않던 검찰도 뒤늦게 움직였다. 검찰은 10월17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신윤균 전 서울지방경찰청 4기동단장(총경), 살수요원인 한아무개·최아무개 경장 등 전·현직 경찰관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는 2015년 11월 유가족의 고발 뒤 거의 2년 만에 나온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 조사와 위상 강화도 이끌었다. 은 문 대통령의 지시로 9년 만에 합창이 아닌 제창으로 울려퍼졌다. 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9월11일에는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져 헬기 사격 의혹 조사에 들어갔다.

국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실험도 실시됐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민주주의 형식을 가미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토론 끝에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재개하되 향후 신규 원자력발전소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내 정치공작을 벌여온 국가정보원 개혁에도 시동을 걸었다. 국정원은 지난 6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출범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 개입과 댓글 공작,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모욕 주기 사건 등을 밝혀내기도 했다.

촛불 민심과 다소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실험과 6차 핵실험 뒤 기습적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를 결정해 비판받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드 배치에 대해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태도를 바꿨다. 사드 배치를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압력이 노골화하자 환경영향평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로 졸속 진행하고, 국회 비준 동의 절차는커녕 주민 동의와 공론화 과정도 없이 국가폭력을 앞세워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6차 핵실험 등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강 대 강 대응을 선택한 것도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공조란 서로 다른 걸 맞춰가는 것이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00대 촛불 개혁과제 중 2개만 실현” </font></font>

촛불이 요구한 정치 개혁과 협치도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연결된 개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10월28일 다시 집회를 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23일 “촛불시민이 명령했던 개혁 과제가 단 2%만 완료됐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재벌·공안통치기구·선거제도·언론 개혁, 노동기본권·소수자권리·복지공공성 강화 등 촛불시민이 내세운 100대 과제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과 검찰의 청와대 편법 근무 방지 등 2개만 실현됐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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