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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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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삼성그룹에서 ‘인력 퇴출’ 감사 주도한 정황 짙다”

삼성SDI 상대로 법정에서 싸워온 김가람·이영만 노무사 인터뷰

“감사 중 사생활 침해 심해, 네이버 계정 털린 직원도”
등록 2017-10-17 17:32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10월10일 경기도 부천시 상동의 법률사무소 ‘내일’ 사무실에서 김가람·이영만 노무사를 만났다. 두 노무사는 40명에 달하는 삼성SDI 감사 대상자와 면담한 뒤, 3건의 민사소송 실무를 맡았다. 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1건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뤄진 ‘업무상 재해’(산업재해) 사건 1건을 담당했다. 이 가운데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과 민사소송 2건은 합의로 끝났다. 다른 민사소송 1건은 패소했고 산재 사건은 이겼다. 근로복지공단이 삼성SDI가 진행한 감사로 인해 노동자에게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발병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삼성SDI를 상대로 법정 등에서 계속 싸워온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_편집자 </font>
10월10일 경기도 부천 상동 법률사무소 ‘내일’에서 김가람 노무사(왼쪽)와 이영만 노무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10월10일 경기도 부천 상동 법률사무소 ‘내일’에서 김가람 노무사(왼쪽)와 이영만 노무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새로운 방식 퇴출 프로그램 발명해낸 것” </font></font>이번 감사로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매우 드문 사례로 안다.

이영만 산재 인정을 받는 것 자체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감사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받는 건 훨씬 더 어렵다. 그만큼 감사가 가혹하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삼성SDI에서 진행된 감사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이영만 감사는 특정 사업 혹은 특정 시점에 비위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본래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직원들은 잘못된 특정 행위로 감사받은 경우가 드물었다. 입사 뒤 지금까지 ‘삼성 윤리 강령’에 위배되는 일을 한 것을 모두 적으라는 식이었다. 감사로 괴롭혀서 사표를 쓰게 하려는 목적이 뚜렷해 보였다.

김가람 예전에도 대기업에서 소규모 인원을 상대로 감사를 진행해 직원을 강제로 내보내려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SDI처럼 다수의 인원을 감사 대상자로 삼아 퇴출시킨 정황이 드러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인력 퇴출 프로그램의 대표적 사례는 과거 케이티(KT)에서 진행된 ‘퇴출관리프로그램’(CP)이다. 집과 먼 곳으로 발령을 내거나, 기존에 해온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을 시키는 방식이었다. 기업 처지에선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의혹만 제기돼도 부끄러운 일이다. 직원들이 ‘어떻게 그런 비인격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하냐’며 분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는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사내 비리를 없애겠다는 취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이걸 뒤집으니까 직원을 내보내기 좋은 ‘잘 드는 칼’이 된 것이다. 2014년 말 PDP 부문 사업 철수 등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삼성 쪽이 새로운 방식의 퇴출 프로그램을 발명해낸 것으로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감사 대상자 중 징계위 회부된 사람 없어”</font></font>인력 퇴출을 위한 감사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김가람 울산이나 천안 사업장에서 일하는 삼성SDI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감사를 자신의 사업장에서 받지 않는다. 경기도 수원 소재단지로 아침 8시30분까지 오라고 한다. 새벽 첫차를 타고 가거나 감사를 받기 위해 수원에 숙소를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감사한다. 험악하게 감사하다 직원이 사표를 쓰겠다고 하면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태도가 바뀐다. 그리고 수원에 있는 인사팀에서 바로 사직서를 가지고 내려온다. 울산 사업장 직원이 수원 인사팀에 사표를 제출하는 것이다. 사직서를 쓰면 그제야 감사관이 자리를 뜬다. 지금까지 목소리 높여 감사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이영만 감사로 비위가 적발되면 징계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감사 대상자 중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비위 적발이 감사의 목적이었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었나.

이영만 특별한 비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하다보니 무리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특히 사생활 침해가 심했다. 한 직원은 네이버 계정을 털렸다. 감사에서 별게 안 나오자 감사관이 자신이 보는 데서 그 직원에게 ‘네이버’에 로그인하라고 한 것이다. 물론 동의서는 받았지만, 당연히 자발적 동의가 아니었다. 감사관이 로그인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네이버 계정을 열었다. 그러면서 직원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등을 뒤진 사례가 있었다. (개인들이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인터넷 카페인) ‘중고나라’에 자기 물건을 여러 차례 올려 판 직원이 있었는데, 감사관이 그걸 ‘겸직’이라며 트집 잡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감사 과정에서 모욕도 심했다고 들었다. 감사관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삼성이 발전 안 된다” “돈 받아가는 것이 미안하지 않냐” 등의 말을 수시로 했다.

소송 등이 대부분 합의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

김가람 삼성을 상대로 소송한 사람들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삼성 직원들은 20년, 30년씩 지내며 체화한 경험이 있다. 삼성과 나쁘게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에 이긴다고 하더라도 다른 형태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이영만 감사 대상자가 대부분 40대 후반∼50대 초반이었다. 정년까지 10년 넘게 남은 사람들이다. 일을 더 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결국 삼성과 관련된 업체에 취직할 수밖에 없다. 삼성과 싸우면 어디서도 아예 일을 못하리라는 부담이 컸던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무차별 감사, 삼성SDI만의 문제 아냐” </font></font>감사를 활용한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다른 대기업도 차용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가람 이번 감사는 단순히 삼성의 한 계열사에서 일어난 문제로 보기 어렵다. 2015년 8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삼성SDI의 경영진단을 했다. 경영진단이 끝난 직후인 2016년 초 삼성SDI는 직원들의 희망퇴직을 받는 동시에 대규모 감사를 시작했다. 감사관으로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직원들이 동원됐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감사를 주도한 정황이 짙다. 삼성SDI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SDI에 앞서 삼성디스플레이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감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있다. 최근에는 삼성중공업에서도 감사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정리해고 대신, 감사로 인력을 퇴출하는 편법이 다른 계열사에서도 적용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 하는 일은 여러 기업에 일종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삼성의 방식을 따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의 감사는 받는 사람 처지에선 인권침해고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다. 법적으로 협박이나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더 확산되지 않도록 강력한 문제제기와 진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부천=<font color="#008ABD">글</font>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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