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교육 업체 ‘퇴사학교’의 하루 퇴사캠프 프로그램. 토요일 11시간 동안 퇴사와 방황을 배웠지만, 나는 ‘내 길 찾기’ 프로그램에서 나 자신을 찾진 못했다. ‘퇴사학교’ 수업자료
8월19일 오전 10시. 나는 ‘박수진’이 아닌 ‘김원희’님이 돼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 은평구 불광동까지 토요일 댓바람에 집을 나섰다. ‘퇴사학교’ 수업을 들으러. 퇴사도 공부해서 해야 하나. 마음 한구석에 헛헛한 바람이 일었다.
그냥 나가면 답 없다그주 월요일. 미치도록 출근하기 싫었다. 회의자료를 준비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다 나도 모르게 ‘퇴.사.’ 두 글자를 쳤다. 마침 퇴사교육 업체 ‘퇴사학교’가 ‘1일 캠프’를 홍보했다. 주제는 ‘내 길 찾기’.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저 막막하고 무기력하다면… 딱 하루의 방황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광고 문구는 옥수동 선녀보살을 만난 것처럼 내 마음에 ‘반신반의’하는 감정의 요동침을 선사했다.
30년 넘게 살면서도 못 찾은 방향을 하루 만에 찾아준다고? 게다가 토요일 오전 10시~밤 9시 일정은 너무 길었다. …. 개론 수업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은 적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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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는 내가 26만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결제 버튼을 누른 이유의 8할은 저녁 8시로 예정된 ‘불타는 치맥파티’였다.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은 왜 ‘퇴사’를 고민할까. ‘위 아 더 월드’를 제창할 수 있을까. 인생의 솔메(솔메이트)를 만날지도 몰라.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강의실에 들어섰다. 캠프에 온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16명. 대구와 울산에서 KTX를 타고 온 사람도 2명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건 나이·직업 안정성·근무연차와 무관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고, 탄탄한 직업으로 알려진 교사·공기업 직원·공무원도 있었다. 입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금융업계 종사자, 감정노동이 극심한 콜센터 상담원도 있었다.
“수학을 좋아한다. 고민과 번뇌가 있을 때 수학 문제를 풀며 고민을 잊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수학이 싫어졌다.” “일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입사하자마자 퇴사를 생각했다. 주변에 닮고 싶은 사람도 없다.” “카드 회사에 다닌다. 이 일이 도대체 가치 있는 일인가 싶어 다른 직종으로 옮기려 한다. 일하면서 면접을 여러 차례 봤는데 모두 떨어졌다. 이직해서 회사에 복수하고 싶었는데….” “연구·개발(R&D) 연구원이다. 석사까지 마쳤는데 매일 똑같은 일을 한다. 그냥 하면 되지만 이대로 괜찮은가, 늘 고민이다.”
초·중·고 시절 앞만 보고 달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 내고 자아정체성을 고민하는 한국 사회의 슬픈 풍경이었다. 그게 부끄러워 나 역시 신분도 이름도 가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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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답은 찾았냐고? 퇴사학교가 퇴사 고민에 내린 답은 다소 ‘대기업 중심’이었다. 경력 관리를 어떻게 할지, 이상한 상사·동료의 유형을 나눠 어떻게 대처할지…. 직무와 관련해 칭찬받은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쓸 때는 여기저기 신음소리가 들렸다. 막상 쓰려니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퇴사학교의 결론은 개인 경쟁력을 분석해 강화하지 않으면 “퇴사해도 답 없다”였다. 요즘 시대엔 퇴사에도 스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잘하는 게 없는 나는 오늘도 퇴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26만원은? 그냥 답을 않기로 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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