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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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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사이비 역사가 쓴 ‘고대사 침탈사’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떠오른 ‘유사역사’

그 ‘위험한 역사’가 손 뻗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폐기 전말
등록 2017-06-20 15:44 수정 2020-05-03 04:28
한국 사회에 때아닌 ‘유사역사’ 논쟁이 일고 있다. 논란은 공교롭게도 국정교과서 반대, 역사 퇴행 저지의 선봉장이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촉발됐다. 고대사 학계는 도종환 장관을 비롯한 19대 국회 동북아 특위가 유사역사에 편향된 의정 활동을 했다고 비판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팀을 구성해 2008~2015년 8년간 애써 작업해온 동북아역사지도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동북아 특위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인식한 듯 도종환 장관은 6월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를 읽어보지도 못했다”며 유사역사 추종 논란을 부인했다.
진짜 문제는 도종환 장관이 ‘국뽕’(국가주의+히로뽕)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학계에선 고대 영토를 실제보다 과장해 ‘위대한 역사’로 포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우려한다. ‘국뽕’을 통해 이웃 나라의 국수주의자와 경쟁하자는 것은 “속된 말로 ‘정신 나간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박노자 교수). 한국 유사역사학의 계보와 대중문화에 뿌리내린 ‘국뽕’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_편집자
6월15일 서울 한 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동북아역사지도 연구팀 이석현 박사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폐기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구팀이 소속돼 일했던 연세대와 서강대의 관련 연구소에 10억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환수하겠다고 2015년 12월 통보했다. 이석현 박사(왼쪽)와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 김진수 기자

6월15일 서울 한 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동북아역사지도 연구팀 이석현 박사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폐기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구팀이 소속돼 일했던 연세대와 서강대의 관련 연구소에 10억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환수하겠다고 2015년 12월 통보했다. 이석현 박사(왼쪽)와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 김진수 기자

중국의 역사학자 담기양이 1981년 펴낸 은 서구의 역사학자들이 동아시아 역사 연구를 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국제표준 지도’로 쓰인다. 8권으로 이뤄졌고, 중국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두 300여 장의 지도가 수록돼 있다. 이 지도책이 중국 동북공정의 근거로 활용하는 ‘담기양 지도’다. 지도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관’에 입각해,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담기양 지도를 토대로 동북아 역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뜻하지 않게 중화사관에 물들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한국 관점에서 고증된 ‘국제표준 역사지도’를 만드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숙원으로 여겨졌다.

담기양 지도의 오류를 바로잡는 역사지도가 한국에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팀을 구성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작업한 동북아역사지도다. 2015년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연구팀)는 담기양 지도 분량의 두 배에 달하는 714장의 지도를 연구 결과물로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느닷없이 ‘부실 사업’으로 낙인찍혀 지난해 최종 폐기 결정됐다. 애초 이 지도는 2018년까지 국내외 역사학계의 검수·검증 작업을 거쳐 완성될 예정이었다.

인사청문회 주요 의제 된 ‘괴짜’들 과격한 주장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폐기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둘러싼 ‘유사역사’ 논란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도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 6월7일 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유사역사 ‘추종’ 논란에 대해 “지난해 부실 논란을 빚으며 교육부 평가에서 40점대의 낮은 평점을 받은 ‘동북아 고대역사지도 사업’이 중단되자 징계를 받은 일부 학자와 제자들이 ‘맺힌 것’을 풀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그는 “동북공정, 독도 침탈에 대비해 우리 역사관이 확고해야 한다. 학계의 문제제기는 잘못된 것이며, 만약 청문회 때 이 문제를 질문하면 그대로 (내 의견을) 답변할 것”이라는 소신도 밝혔다.

한국고대사학회는 도 장관 인사청문회 하루 전날인 6월13일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학회는 “2013년 6월부터 2년여 활동한 국회 ‘동북아특위’의 국회의원들은 유사역사 주창자의 주장을 반복하며 학계가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낸 사실조차 부정하고, 학설에 개입하려 들며 여러 학자를 불러 모욕적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동북아역사지도 작업은 마무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고 밝혔다. 한동안 ‘괴짜’들의 과격한 주장으로 여겨졌던 ‘유사역사’가 주무 부처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 모든 논란의 배경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이하 동북아특위)와 ‘동북아역사지도’가 자리하고 있다.

도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유사역사를 추종하지 않는다’ ‘역사 문제는 학문적 연구와 토론을 통해 밝혀야 할 문제이며,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논란은 일단락된 것일까.

은 논란이 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과 동북아특위의 활동을 들여다봤다. 이를 위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이끌었던 연구팀의 연구원으로 일한 학자 5명을 만났다. 이 사업과 관련해 개별 연구자가 아닌 연구팀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동북아특위가 진행한 38차례 회의 가운데 동북아역사지도 또는 유사역사 관련한 13차례 회의의 회의록도 꼼꼼하게 살폈다.

6월15일 서울의 한 대학 연구실에서 취재팀과 만난 연구원들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동북아역사지도’를 꺼내 보였다. 담기양 지도의 대표적인 오류로 꼽히는 820년(발해 관련)과 1433년(명의 지배 범위가 한반도를 포괄하는 등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시돼 있다) 부분에 맞설 수 있는 동북아역사지도(하단 지도 참조)였다.

820년 부분에선 발해의 세력 범위가 요동까지 포괄한다는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눈에 띄었다. 발해사의 중국사 편입이라는 중국 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하는 ‘한국 역사지도’ 역할과, 1981년 편찬돼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담기양 지도를 대체하는 ‘최신 학술 자료’라는 두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연구팀에서 중국사 지도 편찬 책임을 맡은 이석현 박사(덕성여대 연구교수)는 “중국은 자국의 영토를 최대한 넓게 표시하지만, 이 지도에선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티베트를 중국 영토로 표시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볼 때는 한국에서 만든 중국 지도가 더 객관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사업 평가는 ‘의미 있는’ 성과와 딴판

통일신라·발해 시기를 그린 담기양 지도(820년)와 동북아역사지도(830년). 담기양 지도(왼쪽)에선 발해에 색이 칠해졌다. 통일신라처럼 당의 강역과 상관없는 영역은 회색으로 칠해져, 중국이 발해도 중국사에 포함되는 영역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반도 북부와 요동반도(랴오둥반도) 쪽을 비교해보면 이를 당의 영역으로 표시한 담기양 지도와 달리 동북아역사지도(오른쪽)는 발해의 영역으로 표시했다.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는 “담기양 지도는 말갈을 발해와 다른 영역으로 표시했다. 반면 동북아역사지도는 말갈을 발해에 복속된 지역으로 보고 발해 영역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발해 시기를 그린 담기양 지도(820년)와 동북아역사지도(830년). 담기양 지도(왼쪽)에선 발해에 색이 칠해졌다. 통일신라처럼 당의 강역과 상관없는 영역은 회색으로 칠해져, 중국이 발해도 중국사에 포함되는 영역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반도 북부와 요동반도(랴오둥반도) 쪽을 비교해보면 이를 당의 영역으로 표시한 담기양 지도와 달리 동북아역사지도(오른쪽)는 발해의 영역으로 표시했다.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는 “담기양 지도는 말갈을 발해와 다른 영역으로 표시했다. 반면 동북아역사지도는 말갈을 발해에 복속된 지역으로 보고 발해 영역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지도편찬위원회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살펴본 동북아역사지도는 흔한 ‘종이지도’가 아니었다. 인공위성으로 수집한 지리정보인 지리정보체계(GIS)에 기반했고, 컴퓨터 화면을 통해 디지털로 구현된다. 취재팀이 확인을 원하는 시기와 영역을 제시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지도 10여 장을 화면에 불러냈다. 예를 들어 청동기문화와 고조선, 5세기 삼국과 가야, 명 전기 영역 범위 등이 ‘동북아역사지도 데이터베이스(DB)’에 원하는 ‘값’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재빠르게 구현됐다.

연구팀 관계자는 2015년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출한 지도 714장은 전체 지도의 ‘일부’이며 시기와 영역별로 출력할 수 있는 지도의 양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연구팀이 한·중·일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집한 지명 데이터만 410만 건에 달한다. 미국의 지명위원회가 제공하는 아시아지리정보를 비롯해 각국의 지형도, 문화 유적 정보까지 수집해 집대성한 결과다. 연구팀에서 한국사 지도 제작을 담당했던 정요근 덕성여대 교수(사학)는 “미국 상원에서 담기양 지도를 토대로 동북아 역사 문제를 논의하는 일도 있다. 동북아의 국제표준으로 통용되는 담기양 지도를 대체하려면 담기양 지도가 포괄하는 지역 이상을 뛰어넘는 역사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목표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 학자들이 신뢰하는 국제표준 역사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이 한-중 국경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한국 쪽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하자, 당시 개발 중인 동북아역사지도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요청으로 제공됐다. 3천여 년의 역사 빅데이터를 활용한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 미국 최대 지리학회인 미국지리학회(AAG) ‘디지털역사지도’ 세션에 두 번이나 초청됐다. 2012년엔 하버드대학이 연구팀을 초청해 발표회도 열었다.

국내 역사학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도 적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지도는 4천 개가 넘는 조선 후기 면의 위치와 영역을 고증해 지도상에 복원했다. 학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다양한 사료에 나온 간척사업 기록을 반영해, 아시아 지역의 해안선 변화도 최대한 고증했다. 지형의 역사적 변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까지 모두 적용됐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 대한 평가는 지도가 이룬 여러 ‘의미 있는’ 성과와 딴판이다. 이 사업은 2015년 12월 “지도학적으로 매우 미흡”하다는 총평과 함께 동북아역사재단의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14점을 받았다. 결국 D등급을 받고 ‘폐기’됐다. 연구팀이 항의한 끝에 2016년 6월 재심이 이뤄졌지만, 점수만 조금 올랐을 뿐 ‘부실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을까. 힌트는 ‘동북아역사재단 결과 심사 보고서’와 국회 동북아특위 회의록 등에 담겨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팀에 통보한 결과 심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심사 기준으로 △지도학적 요건(19개) △국가정체성(4개) △외교적 측면(2개) 등 세 가지가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에 제시된 국가정체성 항목이다. 여기엔 “대한민국의 위치, 크기, 형태 등이 부적절” “모든 지명은 한글로 표기되어야 하나 표기되지 않았음” “독도는 반드시 표기되어야 하나 표기되지 않았음” “동해 명칭이 명확히 표기되어야 하나 표기되지 않았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유사역사 편향’ 도종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뜻일까. 이 문제가 논의됐던 동북아특위 회의록을 살펴보자. 동북아특위에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다룬 제29차 회의(2015년 3월20일)와 제32차 회의(2015년 4월17일)가 중요하다. 동북아특위 국회의원들이 지도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판단하며 집착한 시기는 대개 한 시점으로 수렴된다. 즉, 고조선이 멸망하고 고구려가 건국되기 이전인 ‘한사군’ 설치 시기다. 좀더 명확히 말해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이 현재의 평양 주변에 있었는지, 아니면 요동 지역에 있었는지에 대한 위치 비정(역사에 등장하는 지명의 위치를 추정하는 일) 문제다. 이는 유사역사가들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는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두 차례 회의에서 의원들은 사실상 ‘유사역사’를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제시했다. 제29차 회의에서 도종환 의원은 당시 “재야 사학자들이 주로 중국 역사서를 근거해서 주장을 하지 않는가. 그것도 충분히 귀를 열고 받아들여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대상에 넣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도 의원은 이날 낙랑군 또는 왕검성 등이 지금의 평양으로 비정돼 있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며 등을 예로 들었다. 유사역사 쪽에서 낙랑군이 중국 요령성 지역에 있다고 주장할 때 쓰는 대표적 사료다.

물론 도종환 의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사역사 편향’은 여야 구분 없이 대다수 의원들에게서 관찰된다.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의 평가가 부실 쪽으로 기운 분수령은 2015년 4월17일에 열린 제32차 회의다. 이 자리에선 대중 역사저술가로 명성을 얻은 뒤 지금은 유사역사에 기운 주장을 하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소장은 “신라의 팽창 (시기인) 551~600년에 독도를 안 그려놨다.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지도를 그리면 당연히 독도를 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기와 축척, 영역을 달리해 자유자재로 출력될 수 있는 동북아역사지도의 ‘빅데이터’적 특성을 안다면 무의미한 지적이지만, 이후 동북아특위에선 지도에서 독도가 ‘누락’된 것으로 굳어진다. 진보·보수 언론 모두 이 소장의 독도 관련 지적을 지도사업이 부실하게 추진됐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보도했다. 당시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은 이 소장의 발제 직후 “2008년부터 올해까지 총 47억2160만원의 국가재정이 투입돼 2018년까지 검수 등을 진행하면 총 50억원이 넘는 국민 혈세가 투입돼 만들어지는 지도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듣고 나니 좀 참담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랏돈 50억원씩 써가면서 그런 짓거리를…”

지난 6월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6월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날 이덕일 소장은 낙랑군의 위치를 요동이 아닌 ‘평양’에 비정했다는 근거를 들어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동북공정을 인정했다”고도 규정했다.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대표해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가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의원들은 이 소장의 말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상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결과적으로 지금 식민사학자나 동북공정이 주장하는 것하고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따져 물었고, 정문헌 바른정당 의원은 “이런 지도는 중국의 역사 침탈 행위를 우리 스스로가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나랏돈을 50억원씩 써가면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의록에는 동북아특위에 참석한 의원들이 국회의원인지 유사역사가인지 구분할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을 쏟아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북아특위에 유사역사학이 끼친 영향력은 38번 열린 동북아특위 회의에 참석한 참고인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상고사 및 고대사 관련 회의는 모두 13번 열렸는데, 여기에 참고인 신분으로 참석한 이들 중 2번 이상 나온 것은 이덕일 소장(2번)과 낙랑군을 요동으로 비정하는 견해를 내놓은 복기대 인하대 교수(4번)뿐이다. 그 밖에 20여 명의 역사 전문 참고인 가운데는 남창희 인하대 교수, 남의현 강원대 교수(사학) 등 유사역사의 옹호자로 비판받는 이들이 포함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퇴행 결정판이던 국정교과서의 집필진으로 참여한 우장문 경기도 용인 대지중 수석교사가 ‘상고사에 대한 이해 공청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6월15일 만난 기자에게 하버드대학의 피터 볼 교수가 주도하는 ‘하버드 월드맵’을 보여줬다. 시기별·주제별로 지도에 접근한 이용자가 조건을 선택함에 따라 다양한 지도가 출력되는 동북아역사지도와 유사한 형태였다. 중국의 경우 송(宋)·명(明) 시기를 클릭하고, 과거시험 합격자 수를 클릭하자 지역별 합격자 수와 특정 연도 합격자 수가 비교되는 지도가 구현됐다. 현재 다양한 조건을 조합해 생성되는 하버드 월드맵은 7146개다. 이 가운데 중국이 164건, 일본이 26건, 한국은 7건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한국 지도를 봤는데, 한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역사지도를 제공받지 못하고 맛집 지도처럼 거친 수준의 지도를 갖추고 있었다. 피터 볼 교수가 한국 쪽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해온 상태인데,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폐기 결정되면서 진도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낙랑군의 위치 비정 문제 등으로 좌초된 사업

연구팀은 방대한 한국사를 포괄하는 지도 제작 작업이 유사역사 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낙랑군의 위치 비정 문제 등으로 좌초된 것에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낙랑군의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게 황망하다. 이 사실을 외국 역사학계가 알면 우리 역사학의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 작업을 재평가받고 싶다.” 지도 제작에 참여한 이석현 박사가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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