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오월 광주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려 죽음을 선택했던 젊은 청년들. “1982년 광주 진상 규명을 위해 40일간 단식으로 옥사한 박관현, 1987년 ‘광주 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한 표정두, 1988년 명동성당에서 투신한 조성만, 그리고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에서 분신한 박래전.”
<font size="4"><font color="#008ABD">“서러운 죽음 없는 대한민국으로” </font></font>5월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던 수많은 젊음”을 기억하며 열사 4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이들의 이름을 불러내 잊히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기념식 행사장 뒤쪽 잔디밭에 앉아 있던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네 번째 이름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박래전은 박래군의 동생이다. “옆에 세월호 가족들이 없었으면 소리 내서 울었을지 모를”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처럼 동생의 이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호명되리라곤, 그것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뜻밖에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박래군은 30년 가까이 인권운동가로 치열하게 살면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유가협) 어머니·아버지, 서울 용산 참사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의 곁에 가장 가까이 서 있었다.
광주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5월19일 아침,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박래군을 만났다. 그와 가족들은 2007년 박래전 열사 민주화운동 보상금 1억5천만원 전액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탁했고, 이 돈은 2012년 재단 사무실이 있는 건물 완공에 밑돌이 되었다. 박래군은 ‘인권재단 사람’ 부설 연구소인 ‘인권중심 사람’ 소장을 맡고 있다.
‘박래전’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동생 이름이 나올 줄 전혀 몰랐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동생이 숨지고 나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유가협에서 일했다. 유가족 어머니·아버지들은 내 자식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고, 자식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기 바란다. 이 세상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거다. 그런데 주로 기억되는 사람은 이한열, 박종철, 강경대 등 몇몇이다. 유가족들과 생활하면서 나는 되도록 동생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호명되니까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내 동생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고마움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다음에는 최덕수 생각이 났다. 1988년 5월 조성만이 투신하고 사흘 뒤에 단국대생 최덕수가 ‘광주 학살’을 주장하며 분신했다. 동생 래전이는 덕수 영안실을 지키고 장례식을 함께했다. (그해 6월) 래전이가 분신을 결심하게 된 데는 덕수의 죽음이 영향을 미친 것 같고, 덕수 어머니도 ‘우리 래전이’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최덕수 이름이 빠져서 혹시 덕수 가족의 상실감이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
열사들의 이름을 불러준 것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5·18 기념사 자체가 화제다.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세 가지가 다 들어간 기념사다.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당시 발포 명령 책임자를 재조사하고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다. 전남도청 복원도 광주시와 협력하겠다고 약속했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것까지 기대 이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진정성 있는 모습의 대통령 </font></font>대통령이 ‘5·18둥이’ 김소형씨를 안고 위로해주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선거 운동 때부터 유난히 문재인 후보를 붙들고 우는 사람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이명박·박근혜 9년을 겪으면서 나온 현상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억울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놓은 것 같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유가협이나 의문사 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지난 대선은 좀 특이했다. 문재인 후보가 2012년 대선에 나왔을 때보다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열렬한 모습을 보였는데, 진짜 내 문제를 풀어줄 사람으로 생각한 듯하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 옆에서 열흘간 단식할 때도 전혀 대접받으려 하지 않더라. 당시 문재인 의원을 누가 따로 챙겨주지 않아 그냥 맨바닥에 쓰러져 잠들었기에 담요를 깔아준 일도 있다. 백남기 어르신 장례식 때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굉장히 소탈하고 서민적이다. 그런 모습이 ‘저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듯하다. 취임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보를 보이고.
<font color="#006699">박래군은 늘 거리에 있었다. 2009년엔 용산 참사 유가족을 돕다가 10개월의 수배 생활과 4개월의 옥살이를 겪었다. 지금도 그는 2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를 주최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용산 참사 강제 진압 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하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다. 그는 이에 아랑곳없이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로서 촛불집회를 이끌었다.박래군의 곁에는 늘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그가 2014년 펴낸 에세이집 제목도 이다. “내가 유가족이어서 그런지 국가폭력 희생자들이 관련된 사건은 내 문제 같다. 마음도, 몸도 그렇게 움직인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누가 나한테 연락해오기도 전에 내가 그리로 가고 있더라.”</font>
청와대가 세월호 문제에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 것 같나.
대통령 당선되던 날에 세월호 유가족,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전달한 서한에 담긴 요구 사항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책임 있는 답변을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만간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미수습자, 선체 조사, 진상 규명, 4·16 안전공원 등 유가족들의 요구에 구체적인 답변이 나오길 기대한다.
세월호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전반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임기 5년이 길지는 않다.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첫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국가범죄는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게 나라냐’는 질문이 계속 나오는데,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거다. 용산 참사, 위안부 합의, 백남기 농민 죽음, 세월호 등 9년간 사건이 너무 많았다. 밝힐 게 있다면 밝히고, 책임자 처벌할 게 있으면 제대로 처벌해서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 답을 해줘야 한다. 5·18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는데, 그 답이 시작이 될 거다. 좀더 나아가면 우리나라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사상의 자유, 신념의 자유까지 보장돼야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자유의 침해보다 더 심각한 게 불평등이다. 돈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생명 중심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양극화 문제가 바로잡히고 자살률도 떨어진다. 셋째,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차별과 혐오가 발화된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법 하나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 존중을 실현하는 선언이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허용법’이란 비난에 현혹되지 말고, 차별과 혐오를 막는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면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신민’ 아니라 ‘시민’으로 </font></font>취임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고조돼 있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다.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요구가 쏟아지는데, 이명박·박근혜가 개판으로 만들어놓은 걸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만으로도 쉽지 않다. 정부가 자기 전략을 갖고 여러 요구 사항 가운데 ‘집중과 선택’을 하는 식으로 대응했으면 좋겠다. 기대감이 어느 시점에 강한 실망이나 분노로 전환되면, 정부도 힘을 잃고 민주 진영 내지는 진보 진영도 덩달아서 같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왕과 신하의 관계인 ‘신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자기 자신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정부를 제대로 감시해서 견인하는 게 필요하다. 촛불시민 혁명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 시민의 의무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font color="#006699">“이런 날이 오네.” 매일 밤 안부 전화를 걸어오는 여든다섯 살 어머니는 혼잣말하듯이 박래군에게 되뇌었다. 대통령이 막내아들 박래전의 이름을 호명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본 어머니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어머님, 아버님.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은 어두운 세상, 세상을 잘못 만난 죄로, 아니 세상을 바로잡으려 온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죽어갔던 것입니다.’ 박래전이 부모님께 남긴 유서에는 ‘민중의 새 나라’를 향한 열망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네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내가 네 몫까지 싸울게. 그때까지는 절대로 울지 않을게.” 1988년 동생을 묻으면서 박래군은 다짐했다. 5·18 기념사에서 동생의 이름이 불리는 날은 왔지만, 동생이 바라는 새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 박래군은 계속 길 위에, 억울한 사람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내년 6월, 박래전 열사 30주기가 돌아온다. 박래군의 아내는 박래전의 숭실대 국문과 후배다. 아내는 딸과 함께 박래전 관련 사진 2천 장을 모아 일일이 스캔 작업을 했다. 열심히 인권운동을 하는 게 동생을 추모하는 거라 여겼던 박래군도 내년에는 “내 동생이 떠난 지 30년”이라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추모사업을 제대로 알릴 생각이다. </font><font size="4"><font color="#008ABD">박래전, 겨울꽃이 되다</font></font>
박래군과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인권재단 사람’ 안에 있는 도서관의 이름은 ‘인권도서관 동화(冬花)’다. 겨울꽃을 뜻하는 ‘동화’는 박래전이 남긴 유고시의 제목이다. 그의 이름이, 그의 희생이 잊히지 않는 눈짓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한 떨기 겨울꽃으로 피어나길 빈다.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동화(冬花)라 합니다”(유고시 ‘동화(冬花)’)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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