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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 민간 비선조직 판사까지 노렸다

등록 2017-04-18 17:53 수정 2024-11-06 11:26
‘불법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노노데모) 회원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2008년 9월 서울남부지법에서 MBC

‘불법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노노데모) 회원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2008년 9월 서울남부지법에서 MBC


“천지성 판사의 판결은 무(無)지성.”

“민노총과 성노총의 차이란.”

국가정보원이 민간 보수단체 인사를 통해 우익 청년들로 구성된 이른바 ‘알파팀’을 만들어 2008년 말부터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알파팀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헌법을 통해 독립성이 보장되고 법원조직법 등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는 판사 개인을 향한 공격이다. 특히 국정원이 민간인들을 내세워 판사 개인을 향한 여론 공격에 나섰다는 것은 국정원이 노골적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했다는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알파팀 관리자 지시 이튿날 아고라에 판사 비판 글

이와 관련된 내용은 국정원과 알파팀을 잇는 ‘바지사장’ 역할을 했던 마스터(Master)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가 2009년 2월17일 알파팀에 보낸 전자우편에 등장한다. 이를 보면 김 대표는 알파팀 내에서 통용되던 국정원을 뜻하는 은어인 ‘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며 “학교 측의 의견을 전한다” “노노데모 소송건과 관련해 천지성 판사를 집중 비판”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노노데모’는 2008년 여름 이명박 정권을 위기에 몰아넣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반대하기 위해 2008년 결성된 ‘불법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의 다른 이름이다. ‘전투적 보수’를 지향하는 이 단체는 회원 수 3만8623명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 온라인 보수단체다. 이들은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국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가 천 판사에 대한 ‘공격’ 지시를 내린 날은 ‘노노데모’ 등 우익단체가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왜곡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MBC <PD수첩>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된 당일이고, 천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주심판사였다.

김 대표는 지시를 내린 당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리버티 헤럴드>에 ‘노노데모 소송 판결 유감’이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을 보면 “노노데모 소송의 주심판사는 천정배 의원의 장녀 천지성 판사이다. 재판장은 양모 부장판사지만, 판결은 주심판사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법부 내 주류는 소위 진보적이다. 배부르고 등 따듯한 저들 진보적(?) 율사들은 실제 북한 해방과 자유통일의 위대한 현상 타파를 막아선 수구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지시가 떨어지자 알파팀은 즉각 행동에 나선다. 이들은 지시를 받은 이튿날인 2월18일, 2009년 당시 가장 활발한 온라인 토론이 벌어진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천지성 판사는 편파 왜곡의 주둥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보면 “사법부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사법부는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며 국민을 기만한 ‘괴벨스의 주둥이’와 다름없는 <PD수첩>을 일반 보통 방송 프로그램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선전선동 편파왜곡 방송을 정당화하는 반민주주의적 판결을 내리는 죄악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에 대한 조회 수는 2897건에 달했다. 이 글을 보고 일반 시민들은 “돈 받고 글 쓰나?”(아이디 그네타자), “알바가 왜 이리 많노”(아이디 yongari) 등의 반응을 보였다. 판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괴리된 과격한 게시글에 평범한 시민들이 “알바가 아니냐”는 소박한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한겨레21>의 이번 취재를 통해 당시 시민들의 지적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게시 목적은 댓글과 클릭 유도

공격 대상이 되기는 MBC 등 언론기관과 민주당 등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알파팀에 “당분간 MBC-민주당-민노당 비판에 집중해줄 것”을 지시했다. 당시 정치권과 대다수 언론계는 종합편성채널 선정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여론 독과점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알파팀에선 곧바로 “방송법 개정을 두고 MBC 노조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령을 받은 일부 여당들, 좌편향 시민단체들, 그리고 북한 정권이 한통속이 되어 일제히 반대를 하고 나섰다”는 내용의 글을 아고라 게시판에 올렸다. 당시 MBC는 “거대 족벌신문과 재벌의 목소리로 가득한 편향적인 채널의 수만 늘어났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더 높은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일 만큼 방송법 개정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알파팀이 쏟아낸 글의 특징은 논리적이라기보다 공격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점이다. 글을 읽는 이들의 댓글과 클릭을 유도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이들이 국정원에서 ‘고료’를 지급받으려면 게시판 ‘베스트’ 선택과 ‘1000클릭’ 이상이 필수 조건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에서는 더 자극적인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2월12일 ‘학교 측 의견을 전달한다’는 지시를 보면 “당분간 민노총, 전교조 악행 비판에 집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지시를 받은 알파팀은 민주노총을 ‘성노총’으로 빗대 비판글을 올렸다. 당시 수배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민노총의 한 고위 간부가 이 위원장을 피신시켜준 조합원의 집에 침입해 해당 조합원을 성폭행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윤리적 약점을 집중 공격하기 위해 알파팀에 지시를 내려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알파팀이 올린 “민노총이 이번에 커밍아웃한 성노총은 말 그대로 전국성욕노동조합총연맹의 약자로 풀이될 수 있다. 노동자의 권익이 아닌, 오로지 금수와 같은 성욕에만 눈이 어두워 여성들을 같은 노동자가 아닌 오로지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단체를 일컫는다”는 내용의 글은 조회 수 3486건, 댓글 41개를 기록했다.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용산 참사’가 제2의 촛불집회로 번질 기미를 보이자 적극적인 여론전에 나선 정황도 나왔다. 김 대표는 2009년 1월20일 보낸 전자우편에서 자신이 ‘용산 진압은 정당했다!(선진국 사례를 통해 내린 결론)’라는 글을 올린 사례를 예로 들어 알파팀에 조회 수를 올릴 방법을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토론방에서 자신의 글이 1만3894건의 클릭 수를 올렸다고 강조하며 “자유토론방은 좌익의 주거점이어서 보수 성향 글이 올라가면 정치방보다 반응이 뜨겁다”고 조언했다.

용산 참사 희생자 매도하는 글 올리기도

김 대표가 전자우편을 보낸 뒤, 알파팀은 이튿날 자정께 ‘화염병 수류탄으로 무장한 철거민(?)’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철거민들은 도저히 일반 시위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능숙함으로 경찰의 접근을 저지하며 버티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이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용산4구역 세입자 대책위원회를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지목했다고 밝히며 “이를 빌미로 제2의 촛불시위, 즉 반정부 투쟁을 전개할 꿍꿍이라면, 애초부터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파팀이 또 다른 여론 전파 수단으로 삼은 뉴스블로그에 올린 글에선, 용산 참사의 피해자는 경찰이란 점을 강조했다. 알파팀원이 당시 뉴스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면 “과잉 진압이라고 부풀리고 매도하는 좌익들의 정신 상태는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이 준비한 시너와 화염병에 의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비명횡사했고, 수십 명의 특공대원들이 치명적 화상을 입고 남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모양”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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