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부터 이뤄진 ‘알파팀’ 활동은 2013년 드러난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활동의 ‘모태’로 보인다. 알파팀 활동이 이후 벌어진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 양상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국정원 직원의 ‘잠금 사건’을 계기로 꼬리가 밟힌 ‘국정원 사건’은 대선 막판에 벌어진 가장 큰 이슈였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같은 해 12월16일 대선 후보 3차 TV토론에 나와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도 증거가 없다고 나오지만 집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성폭행범이나 하는 수준으로 고의 차사고도 냈다”며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공격했다. 대선 토론 직후인 이날 밤 11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보도자료를 내어 “(여론 조작에 나선 것으로 의심받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노트북 등에서) 문재인 후보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실패한 공작” “흑색선전” 등 거친 언사를 동원해 당시 문 후보를 비난했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선거에서 이겼다. 하지만 2013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의 여론 조작은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이번 취재로 드러난 알파팀의 정체는 대선에 영향을 미친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의 원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정원이 민간단체에 돈을 주고 여론 조작을 지시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첫 사례라는 점에서 5월9일 치러지는 대선 정국에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VPN 서비스 사용이 유일한 차이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옛 기자)가 알파팀 멤버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이들이 참여한 여론 조작 활동의 몇 가지 특성이 드러난다. ①작성자를 숨기기 위한 아이피(IP) 우회 ②팀원 상호 간 추천 수 늘리기 작업 ③전문 프로그램을 활용한 조회 수 증가 ④특정 시기에 특정 지침에 따른 여론 조작 ⑤젊은 층을 상대로 한 보수화 프로젝트 등이다. 이같은 특징은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에도 고스란히 계승된다
2008년 12월29일 김성욱 대표가 알파팀에 보낸 전자우편에는 “임시인터넷파일과 쿠키 삭제 후 클릭+토르 사용한 프록시 사용+좌파 사이트 등(한총련 등)에 자신의 글 URL을 올려놓아 클릭 유도 등 방법을 사용해 단시간 내 일정 수치로 조회 수를 올려놓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주목할 대목은 ‘토르 사용한 프록시 사용’이다. 토르는 접속자가 자신의 아이피를 숨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록시 역시 작성자가 특정 사이트에 접속할 때 직접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서버를 거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다음 ‘아고라’나 여러 중소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쓸 때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 역시 자신의 아이피를 숨기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작업 방식과 흡사
당시 국정원은 토르가 아니라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를 사용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VPN 서비스를 사용하면 한 명이 여러 개의 가상 아이피를 바꿔가며 쓸 수 있다. 국정원 사건의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문에는 “심리전단 직원들은 (자신들이 활동한) ‘오늘의 유머’ 사이트 운영자가 다수의 아이디로 중복 추천이나 반대를 하는 사람을 색출하려고 아이피를 추적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VPN 서비스를 이용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밖에 국정원은 동일 아이피로 여러 개의 글을 작성하는 것을 막는 사이트나 같은 아이피로 중복 추천을 할 수 없는 사이트에선 VPN 서비스를 활용해 추천 수나 조회 수를 늘리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팀 차원에서 여론 조작을 하는 작업 방식도 매우 유사하다. 2009년 1월7일 김 대표가 보낸 전자우편에는 국정원에서 돈을 지급받는 기준과 관련해 “(다음) 아고라 기여도 및 베스트 게재 수”를 언급한다. 해당 대목의 각주에는 “팀원 상호 간 추천이나 댓글 등을 통한 지원 및 협업”이란 내용도 나와 있다. 이런 활동 형태도 국정원 사건 때와 똑같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특정 사이트에서 같은 팀원이 쓴 글을 서로 추천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조작했다. 원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문에는 “심리전단의 외부 조력자인 이○○이 2012년 8월29일경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닉네임 ‘추천박아라’로 접속하여 ‘MB와 전태일 열사… 관계 알고 있냐?’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을 복구하고 전태일 열사 다리와 동상을 건립한 업적이 있다는 취지로 작성하여 게시한 글에 대하여 같은 날 이○○ 등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 3명이 모두 4개 닉네임을 사용하여 집중적인 ‘추천’ 클릭을 함으로써 찬성 의견을 표시”했다고 적혀 있다. 알파팀의 상호 추천 방식과 똑같은 형태다.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한 점도 같다. 2009년 1월8일 전자우편을 보면 “조회 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나, 그때까지는 1000클릭 이상, 베스트에 오르도록 관리해줄 것”이라고 돼 있다. 수작업으로 조회 수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전문 프로그램까지 개발한 정황이다.
2013년 국정원 사건에서 민간인 협조자로 드러난 이아무개씨도 이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이씨가 2012년 11월1일부터 12월18일까지 사용한 VPN 서비스 로그 기록을 보면 ‘지 매크로’(G MACRO)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다. 지 매크로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이동 경로를 설정해놓으면 자동으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특정 게시글의 조회 수나 추천 수를 계속 올릴 수 있다. 이씨는 2012년 12월14일 오후 3시27분부터 저녁 7시17분까지 자신의 인터넷창에 ‘혼자 사는 여성분들 필독! 조심하세요! ㅎㄷㄷ’이라는 게시글을 열어둔 채 지 매크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같은 해 12월11일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서 댓글 작업을 하던 국정원 직원 김씨가 당시 민주통합당 등에 적발되자 ‘민주당이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는 취지의 비난 게시글을 작성하고 조회 수를 조작한 것이다. 이 글의 조회 수는 6만 개를 넘겼다. 이씨의 로그 기록이 확인된 48일 동안 지 매크로 프로그램이 사용된 사례는 총 544건이다. 이씨는 활동 대가로 국정원에서 수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주’서 원세훈 원장 취임 뒤 직접 수행
지침을 받아 특정 시기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작성해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방식도 같다. 김 대표는 2008년 12월30일 전자우편에서 “오늘 내일 학교가 제시한 과제는 ‘31일 좌익 대규모 촛불 규탄, 성스러운 재야의 종소리 타종을 훼방 놓을 거냐?’입니다.”라고 적었다. ‘학교’는 알파팀에서 국정원을 지칭하는 일종의 암호였다. 그 뒤에도 김 대표는 전자우편으로 “김대중 헛소리 비판” “당분간 민노총, 전교조 악행 비판에 집중한다.” “당분간 MBC-민주당-민노당 비판에 집중해줄 것” 등의 지침을 내렸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도 매 시기 ‘이슈 및 논지’를 전달받아 여론 조작 작업에 나섰다.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이아무개씨는 2013년 검찰 조사에서 “매일 내부 이메일로 (여론 조작을 위한) 이슈 및 논지를 전달받는다. (전달받은 자료는) 하루에 몇 개의 이슈에 이슈별로 2~3줄 정도 주된 대응 방향 및 논조가 기재되는 형식”이라고 진술했다.
젊은 층에 주목한 것도 동일하다. 2008년 12월30일 김 대표의 전자우편에는 “학교 측은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으며, 2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한 각주에는 “청년 대학생 육성 등.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말합시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2009년 2월부터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는 ‘청년대학생 육성’ 사업 등이 이후 국정원의 주요 활동이 된 정황은 2013년 드러난 원 전 국정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말씀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 확대부서장 회의에서 한 말을 정리한 2010년 7월19일치 말씀자료에는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국정원이 2009년 2월부터 알파팀과 20~30대 보수화 작업의 기틀을 닦고 2010년부터 별도로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방안’을 마련해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대표는 과의 통화에서 “국정원에 젊은 우익 청년들을 소개해주기는 했다”고 밝혔다.
알파팀 활동이 시작된 것은 촛불시위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인 2008년 말이다. 김성호 국정원장 시절이다. 국정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이명박 정권에 우호적인 보수세력 등을 활용해 ‘간접적 방식’의 여론 조작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말부터 김 대표와 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게시글 작성 등을 지시한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는 국내 정보 파트인 당시 국정원 2차장 산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촛불집회 이후 한동안 알파팀을 이용한 ‘외주’ 방식으로 진행되던 국정원의 여론 조작 활동은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뒤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이 직접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알파팀이 사용해온 여론 조작 노하우는 국정원에 전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알파팀 여론 조작 활동 가능성
심리전단은 2009년 3월4일 독립부서로 편제된 뒤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까지 계속 규모를 늘려왔다. 알파팀의 활동 기간이 2008년 말부터 2010년 말까지였다는 내부 인사의 말대로라면 이 기간에 국정원 차원에서 심리전단, 민간 차원에선 알파팀이 여론 조작 활동을 함께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말 이후 또 다른 인물들이 알파팀의 뒤를 이어 국정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여론 조작 활동을 지속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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