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살수 5인방'을 기억하라

강신명, 구은수, 신윤균, 한석진, 최윤석… 물대포 쏘고 명령 내리고 현장 지휘하고 정책 결정한 자 모두 ‘별일 없이 산다’
등록 2016-10-04 18:11 수정 2020-05-03 04:28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오른쪽)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오른쪽)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 한겨레 김태형 기자

검경은 부검의 칼날을 들이밀었고, 법원은 눈을 감았다. 반면 과잉진압 논란에 휩싸였던 당시 경찰 지휘 라인을 향하는 ‘부검의 칼날’은 보이지 않는다. 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뒤 지난 9월25일 결국 숨을 거둔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이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고발한 경찰 지휘 라인 관계자들을 공개한다.

그날 현장에서 경찰의 ‘살수차 운용 지침’을 어기고 백남기 농민의 머리를 향해 직사 살수한 경찰관부터 경찰 총수까지 모두 5명이다. 향후 진상 규명 과정에서 그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경찰 현직에서 근무하거나 별다른 문제 없이 퇴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시민이 집회·시위 도중 공권력에 의해 숨졌지만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위법한 지시를 했거나 수행했다고 강하게 의심받는 그들은 아무도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취재에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 회의록’을 참고하고 더불어민주당 박남춘·박주민 의원실 등의 도움을 받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초 넘는 직사 살수, 지시자는?</font></font>

2015년 11월14일 저녁 6시56분께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고 백남기 농민을 직사 살수한 차는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충남살수9호’다. 당시 시위·진압 과정에서 동원된 전남지방경찰청, 광주지방경찰청 살수차의 호스가 끊겨 투입됐다.

9호 차량에서 물대포를 쏜 경찰관은 충남 홍성경찰서 소속 최윤석 경장과 충남 천안동남경찰서 소속 한석진 경장이었다. “살수 방향 조정은 최 경장이, 살수 및 살수 압력 조정은 내가 맡았다”고 한 경장은 청문회에서 말했다.

최 경장은 이날 처음 살수차 실전 현장에 투입됐다. 살수 방향은 조이스틱을 이용해 좌우상하로 조정할 수 있다. 조이스틱에서 손을 떼면 방향이 고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수 압력은 디지털 조작판으로 입력할 수 있지만 이날은 페달을 밟아 세기를 조절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9월2일 더민주 박주민 의원실이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살수차 시연회에 참여한 자리를 통해 드러났다.

그들은 고 백남기 농민을 직사 살수하고, 쓰러진 그의 얼굴을 향해 5초간 추가 직사 살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백남기 농민과 그를 구조하러 온 사람들을 향해 또다시 15초간 직사 살수했다. 한 경장과 최 경장은 9월28일 현재 각각 천안동남경찰서 병천동면파출소와 홍성경찰서 정보보안과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당일 경찰이 백남기의 머리 등에 연이어 한 직사 살수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 실수든 위법하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상관은 누구였을까. 이튿날 한 경장이 작성한 2015년 11월15일자 ‘충남살수9호차 사용 결과 보고서’를 보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수 가능한 충남 살수차에게 4기동단장이 무전망으로 살수9호(충남살수차)를 급박하게 살수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장은 신윤균 총경이었다. 신윤균 당시 제4기동단장은 지난 1월14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에 취임했다. 영등포경찰서장 자리는 승진 길목에 있는 보직으로 알려졌다. 현 이철성 경찰청장이 영등포경찰서장 출신이다.

신 총경은 청문회에서 “내가 지시를 하면 참모들이 제4기동단망 무전으로 충남9호차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접 지시한 참모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제4기동단장이 무전망으로 지시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한 경장은 당시 지시자에 관해 “무전망이 4기동단망이라서 그중에 지휘를 하시는 지휘부에서 저희한테 무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최 경장은 ‘살수 시작과 종료 시점을 제외하곤 중간 단계엔 무전 지시 없이 살수했냐’는 물음에 “그렇게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를 지시하는 등 살수 중간 단계에 직접 지시한 책임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현장 상황을 총지휘한 책임자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최고 단계 비상령인 갑호비상령을 내리는 등 정책적 결정 당사자다. 강신명 전 청장과 구은수 전 청장은 2013년 3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연이어 청와대에서 집회·시위 대응을 총괄하는 사회안전비서관을 맡은 공통점이 있다. 그 뒤를 이어 1년3개월간 사회안전비서관 자리를 맡은 인물이 바로 이철성 현 경찰청장이다.

강신명 전 청장은 지난 8월23일 임기 2년을 마치고 퇴임했다.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5년 12월28일 퇴임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검찰에 앞서 법원, 살수 위법 지적</font></font>

강신명 전 청장 등 그날 진압·지휘 관계자 5명은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어떠한 공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공식적인 사과도 거부하고 있다.

강 전 청장은 청문회에서 “(백남기 농민의 가족에게) 인간적인(사적인) 사과는 여러 차례 했다. 다만 공식적인 법적인 사과는 현재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등이 진행되고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에 따라서 내가 경찰 총수로서의 어떠한 책임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다할 것임을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백남기 농민의 가족을 등진 채 또 한 번 ‘인간적인 사과’만 했다.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2015년 11월18일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강신명 전 청장 등 당시 지휘·실무 관계자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9월29일 현재 열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검찰에 앞서 법원이 “경찰의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살수가 위법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심담)는 지난 7월4일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게 민중총궐기 등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징역 5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하면서 “경찰의 백남기에 대한 시위 진압 행위는 위법하다”고 밝혔다. “경찰이 직사 살수할 경우 시위 참가자의 가슴 이하를 겨냥해야 하지만 당일 경찰은 백남기의 머리 등에 연이어 직사 살수했고 그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 실수든 위법하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경찰의 일부 진압 행위가 위법해도 당일 살수차 운용 전체 행위가 위법하다곤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백남기 농민이 숨진 날, 서울 종로경찰서(서장 홍완선)는 ‘시신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검증 영장’(이하 부검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이 목적이라고 했다. 종로경찰서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차장 노승권) 산하의 형사3부(부장 김후균)는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9월26일 부검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검경이 영장을 재청구하자 9월28일 ‘유가족 참여’ 등의 조건을 달아 결국 영장을 발부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진압 관계자에게 닿지 않는 공권력 </font></font>

백남기 농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쌀 적정가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에 참가했다. 정권은 물대포를 직사 살수해 그를 쓰러뜨렸다. 공권력은 그가 죽은 뒤에도 부검의 칼날을 휘두르려 한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진압·지휘 실무 관계자들은 여전히 ‘별일 없이 산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