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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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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똑같은 얘기만 해!” “좌·우파가 나쁜 단어는 아니잖아”

생애 첫 투표자 4명 ‘솔까말’ 대담, 투표율 뒤 숨은 진심 “성인이 된 느낌” 들지만, “정치에 관심 있다고 하면 ‘쟤는 좀’ 하게 돼”
등록 2016-04-14 15:15 수정 2020-05-03 04:28

청춘은 정치를 알고 싶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 준비한 총선 특별기획 2탄의 주인공은 만 19살 첫 투표자를 포함한 20대다.
우리는 이미 2주 전 제1105호 표지이야기 ‘어버이 손에 달렸다’에서 60대 이상 노인들의 정치의식을 분석한 바 있다. 한국전쟁과 개발시대를 거친 그들은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고, 국가의 위기를 안보 문제로 직결시켜, 보수 정당 지지를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생애사가 그들의 정치의식을 결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20살 전후 청년들은 어떨까. 그들의 정치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생애에 어떤 일이 있어났기에 그런 정치의식을 갖게 됐을까. 그리고 그들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
20대 스스로 만들어 활동 중인 독립미디어 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구, 광주, 강원도 원주를 다니며 20대 청년을 만나고, 19살 첫 투표자들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벌였으며, 그 가운데 몇몇을 모아 좌담을 진행했다.
일련의 취재를 통해, 지역주의에 갇히지 않으려는 20대들이 있다는 점, 그러나 그 정치 지향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점, 제 신념에 기초한 정치 행위를 벌이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지내왔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
청년 실업을 포함한 경제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이번 총선의 결과는 그들 청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청년들은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알고 싶어도 알아내는 방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알아봤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요즘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곧잘 비판하지만, 그 책임은 그들을 탈정치화한 사회시스템에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 대안으로 독일의 정치교육을 소개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치 성향을 파악해보도록 돕는 인터랙티브도 곁들인다.
취재 취재팀, 송호진·이완 기자, 편집 신윤동욱 기자, 디자인 장광석
제20대 총선에서 첫 투표에 나서는 20살 전후 청년 4명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20대 총선에서 첫 투표에 나서는 20살 전후 청년 4명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년 독립미디어 이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생애 첫 투표자’(총 182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투표 의향은 있지만 정치권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낮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설문조사에 드러나지 못한 그들의 구체적인 생각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20살 전후 청년들의 정치 의식에 관한 논쟁이 ‘투표율’을 매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을 투표율 수치로 단순화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우리는 그들을 한데 모아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생각을 미리 들어보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에 ‘죄의식’ 느껴

인터뷰엔 김예원(19·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김원범(19·강원대 연극영화과), 박태준(19·입대 준비), 이아영(21·인하대 언론정보학과)씨 등 4명이 참여했다. 원범씨와 태준씨는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고, 예원씨는 녹색당 당원이다. 생애 첫 투표자들이다. 학생회 임원이었던 아영씨는 투표권이 주어지는 첫 연령인 만 19살이 지났지만 총선 첫 투표자다.

질문을 던지면 참가자 4명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진행자가 약간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참여자들의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들은 “첫 투표가 설렌다”고 입을 모았지만, 일부는 “정치가 어렵다”거나 “정치를 알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의 기억을 10대 시절로 돌리자 그들이 마주한 정치에 대한 불신의 이유가 엿보였다. 학창 시절 정치에 관심 갖는 것에 ‘죄의식’을 느낀 경험도 털어놓았다. “10대 때는 정치 무관심을 요구받았는데 (첫 투표권이 주어지는) 만 19살이 되자 갑자기 정치적 의무를 요구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비슷한 또래인 첫 투표자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편한 말투로 옮겨 적는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하려는 이유는 뭐야?

박태준(이하 태준) (후보가 누군지) 알든 모르든 우리의 대표를 뽑는 거니까 당연히 참여해야지. 그런데 입시만 준비하다 갑자기 “투표해!” 이런 것 같아서…. 사전 지식 없이 갑작스럽게 어른의 임무가 주어진 것 같아.

아영 첫 투표라 그런지 어떤 행사를 치르는 것 같아. 이제야 완전한 성인이 된 느낌! 그 전까지는 2% 정도 부족했다고 생각해. 완전한 성인으로서 참여하는 첫 행사니까 꼭 갈 거야.

김예원(이하 예원) 국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의제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으니까.

“교과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너희들의 후보 선택 기준은 뭐지?

김원범(이하 원범) 후보의 인간성을 봐. 또 법을 잘 지켰는지, 군대는 제대로 다녀왔는지. 새로운 법을 만들기 전에 이미 있는 법을 잘 지킬 사람인지 알아야 하잖아.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 아영 나도. 후보의 소속 당도 고려하는 편이야. 그 당에 속해 있다는 건 당의 목적이나 의식에도 공감한다는 거니까. 정치는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과 함께 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예원 (후보가 속한) 당이 추구하는 바가 정확한지,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이에 맞춰서 나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태준 난 반대야. 당을 보고 후보를 뽑는 건 대기업에서 학벌 보고 “이 사람은 스카이(S·K·Y, 서울대·고대·연대)니까 뽑아야지” 하는 것과 똑같다고 보는데.

‘정치’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원범 정치라고 하면 와닿지 않아. 실감이 안 난다고 할까.

태준 ‘정치하는 사람’이란 얘기를 들으면 ‘안 좋은 사람’이란 선입견이 먼저 들어. 주위에서 누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 쟤는 좀’ 하는 거리감이 생기더라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치 관련 기사가 자극적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아.

원범 그래서 그런지 ‘국회’ 하면 ‘싸우는 곳’이란 생각이 가장 먼저 나.

아영 나는 오히려 무감각해지고 있어. 같은 뉴스가 열 개, 스무 개씩 나오니까 예전에 비해 자극이 덜하다고 할까.

실제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친구가 많아?

아영 나부터 잘 모르는데 뭘. (정치가) 어려워.

원범 (정치에) 신경을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 피곤하니까.

예원 살면서 (정치에 대해) 느끼지를 못하니까.

그렇다면 너희들이 보는 정치권의 모습은 어때?

태준 서로 상대 후보에게 어떤 잘못이 있나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는 것 같아. 토론회 자리에서 상대의 공약이 아니라 후보 개인의 흠집을 잡아내려고 하잖아. 흠집 찾기가 되다보니 이걸 지켜보는 사람도 후보의 단점만 보게 돼. 그러니까 뽑을 사람도 없어지고, 투표 참여율도 낮아지고.

◀ 원범 ‘ 여당이든 야당이든 똑같은 얘기만 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말이야. 한쪽이 복지를 하겠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 ‘우리도 복지에 힘을 쓰겠다’는 식이야. 딱히 공약에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됐다기보다 표를 얻기 위한 것 같아. 회의감이 들어.

10대 학창 시절 때 경험한 게 궁금해. 정치나 사회에 대해 고민했거나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

원범 (교과목에서) 정치 시스템만 알려주는 게 문제 아닐까.

예원 학교에선 이론만 배웠어. 정치는 자신이 찾아나서야 알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아.

아영 맞아. ‘투표를 해야 해!’ 이런 의무를 배우는 거나 기본 개념을 정립하는 데는 (학교 교육이) 도움이 돼. ‘정치와 정당’이라는 단원도 있었고. ‘이익집단’,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배웠던 것 같아. 그런데 교과서 등을 통해 받은 교육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뿐이었거든. 정치적으로 내가 어떤 것을 생각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됐어. 오히려 학교 반장 선거 연설을 보면서 (정치를) 더 느꼈던 것 같아.

“시위에 왜 나갔어?” 추궁하는 선생님 학교에서 선거는 잘 이뤄지는 편이었니?

태준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고등학교 2학년 때 관심도 전혀 없었는데 임원 수련회가 재밌다고 해서 2학기 때 선거에 나갔어. 그때 ‘임원 수련회 가고 싶다, 뽑아달라, 햄버거를 사겠다’고 했는데, 내가 뽑혔어. 근데 사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했어. 난 그냥 부회장이란 자리가 갖고 싶어서 한 건데.

원범 인기 투표지.

예원 난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할 때도 토론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냥 연설만 하고 질문도 안 받고 끝났거든. 의례적인 행사로 그치는 거 같아.

아영 우리 학교는 질문도 받고 그랬어. 그것도 솔직히 맘에 안 들어. ‘답변 별로야, 얘 못했어’로 끝나는 게 문제거든. 정치에 대해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낀 게 그때쯤이었어.

고등학교 시절 학내에서 정치에 대한 인식은 어땠어?

태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한 명이 촛불시위를 갔다가 다친 적이 있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와서 “시위에 왜 나갔어?”라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시위 갈 수도 있는 건데, 선생님은 왜 그런 말을 할까’ 싶었지.

◀ 예원 ‘뉴스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를 해야 대학에 간다’ 이게 강한 거 같아. 지난 지방선거 때 지지하는 후보가 있었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유세 현장에 가곤 했어.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그 시간에 공부를 하잖아?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본분을 어기는 느낌이었어.

그러면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원범 모의국회를 보면 스펙(경력) 쌓으려고 하는 느낌이 강해.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경력을 위해서. 대학 들어갈 때 도움이 되잖아.

예원 난 생각이 달라. 정치 참여 활동이 입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고등학교 때 청소년 참여기구 경기도위원회에 참여했어. 만약 스펙 때문에 참여한 거라면 향후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지망하는 사람이 와야 하잖아. 그런데 진로와 상관없이 그냥 참여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었어.

원범 나는 이미 짜인 판에 아이들을 보내는 느낌이야. 고등학교 때 방송부였는데, 나도 그때 진로 신경 안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어서 했지. 그런데 짜인 판에서 하는 느낌이 들었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

“제대로 학교에서 정치 배우고 싶어” 지금보다 더 정치와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 태준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학교 공교육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 토요일이면 학교에서 하는 CA(특별활동)처럼. 가정에서 정치를 배우면 부모님의 생각이 주입될 거 같아.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안 된다고 봐.

예원 난 지역이 중요한 거 같아. 정치란 국회에서만 하는 게 아니야. 정치가 가까이 있는 거라 느껴야 해.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의 정치교육을 맡아서 하고, 다양한 시민조직의 활성화가 보장돼야 할 거 같아.

아영 학교에서 많이 토론하면 좋겠어. ‘좌·우파’라는 단어조차 학교에서 말하기를 꺼려해. 이게 나쁜 단어는 아니잖아. 좌·우파를 학교에서 금기시하지 않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 부모님이 대화 나누는 걸 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 최소한 사회에 참여하거나 관심 가질 의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곳이 가정 아닐까.

원범 나 같은 경우, 가족의 정치 성향이 갈려. 그 덕분에 정치에 대해 알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어.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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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인터뷰


충만한  첫  투표자  만드는 사회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사진)는 생애 첫 투표자들의 ‘정치적 첫 경험’을 지금처럼 방치하면 정치적 무력감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선 그는 생애 첫 투표자들이 자신들의 ‘투표 행위’를 사회 변화를 이끄는 국민의 권리로 인식하며 투표 의향을 밝힌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이들이 표의 등가성을 낙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표의 등가성’이란 1표가 가지는 실질적인 힘이다. 그는 “(생애 첫 투표자들이) 자신의 1표 가치(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런 낙관이 투표해도 크게 바뀌지 않는 ‘표의 미약함’을 깨닫게 되면 정치적 기대가 무기력감으로 번질 것이라고 이 교수는 내다보았다. “투표해도 별 변화가 없는 부정적 정치 현실을 직면하면 정치에 대해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려면 바로 이 ‘(투표에 대한) 효능감’, 즉 표의 효력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정치적으로 결핍된 상태에서 선거권을 갖게 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뒤, 그 원인으로 “규범적 교육”을 꼬집었다. 투표는 의무이니까 해야 한다는 규범적 교육은 이뤄지지만, “왜 투표해야 하는지, 투표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부재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2014년 ‘나는 대한민국 유권자다’라는 주제의 강연 대회에서 청소년부 대상을 받은 한 학생이 사용한 “투표 문맹”이란 말을 언급하며 한국의 정치교육을 지적했다. 생애 첫 투표자들도 10대 시절 현실정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투표 문맹 상황에서 선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기에 정치 참여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도 정당의 정책을 현실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며, 각 정당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과 다른 학생이 좋아하는 정당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의 클럽 활동이나, 학생의회를 잘 운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정치적으로 충만한 첫 투표자를 길러내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영·조유라·김수빈·김인경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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