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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 던지는 ‘실버산업’ 종편

‘고독한 군중’으로 방치됐던 노년층 위로를 산업화한 종합편성채널… 3개 종편 60대 시청률 20대보다 8.3배 이상, 분노 마케팅 성공해
등록 2016-03-31 14:21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당 워크숍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2016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란 보고서를 나눠주었다. 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만든 ‘제20대 총선 전망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핵심은 “(2016년 총선을) 세대 전쟁으로 치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20~40대의 지지를 최대화하고, 장·노년층의 제1야당 호감도를 높이는 우호화 전략을 짜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야당의 이런 고민은 인구 구성에서 고령층의 비중이 늘어난 데다, 이들의 지지 성향이 새누리당 쪽에 쏠린 현실에서 기인한다.
<font size="4">총선 975만여 명의 파워</font>
최근 가장 큰 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령대별 유권자 비율을 보면, 60살 이상이 전체 연령대에서 21.9%를 차지했다. 20대(16%), 30대(19.1%), 40대(21.6%), 50대(19.7%)의 비중을 웃돌았다. 이번 총선에서 60살 이상 유권자는 약 97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투표율도 높다. 60살 이상 유권자는 2002년 대통령선거부터 2014년 지방선거까지 주요 9개 선거에서 최소 65% 이상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주목할 것은 60살 이상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실제 투표자 수에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고, 이에 비해 청년층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더 큰 비중으로 실제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노년층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이들의 정치 성향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6년 3월 마지막주 정기조사를 보면, 60살 이상 응답자의 62%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이들의 65%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당은 이들의 지지를 더욱 견고하게 붙잡을 방법을, 야당은 노년층의 호감도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길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font color="#C21A1A">‘청년의 투표와 정치 참여’</font>(제1104호 특집1 참조)에 대해 살폈던 은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택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실제 투표한 사람들 중 60살 이상 비율이 27.1%에 달할 만큼 이들이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font size="4">청년이 노년을 만나다</font>
기성 언론이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구석 정치’를 직접 보도한다는 목표로 구성된 청년들의 독립미디어 은 60살 이상 노인 75명을 수도권 일대에서 만났다. 청년의 눈으로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살폈다.
이들의 취재에 더해, 노년층의 정치 성향을 분석(뉴스 북리뷰)하면서,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노년층의 정치적 의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함께 짚었다.</font>
공공장소에서 종합편성채널을 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졌다. 종편은 철저하게 군중을 향하는 언론이다. 노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파하고, 노인들은 종편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TV에 종편이 나오고 있다. 김진수 기자

공공장소에서 종합편성채널을 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졌다. 종편은 철저하게 군중을 향하는 언론이다. 노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파하고, 노인들은 종편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TV에 종편이 나오고 있다. 김진수 기자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종합편성전문채널(이하 종편)을 4개나 승인했다. 종편 출범을 맹렬하게 반대해온 언론운동 진영의 한 인사는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모두에 방송을 나눠주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지켜보며 “졌지만 이겼다”고까지 했다. 한정된 광고시장을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잉된 정치적 판단을 냉정한 시장이 뒷받침할 순 없으리란 지적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순진한 생각이었다. 종편은 살아남았다.

매출 추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출범 첫해이던 2012년 2200억원대를 기록했던 종편 4사의 매출 합계는 2014년 4천억원대를 돌파하며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종편 4사의 매출 합계액은 5600억원에 달한다. 채널A와 TV조선은 흑자 전환을 이뤘고, JTBC와 MBN 역시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까지는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둘 중 하나다. 시장이 냉정하지 않았거나, 보수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과잉되지 않았거나.

<font size="4"><font color="#008ABD">‘연환계’로 시장을 개척하다</font></font>

개국 초기만 해도 종편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수개월 동안 시청률 0%의 벽을 돌파하지 못했고, 1시간여 가까이 방송이 나가지 않는 ‘사고’가 발생해도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종편이 출범하고 얼마 안 돼 잇따라 열린 총선과 대선은 종편에 생존 방식을 일러준 제갈공명의 ‘지략 주머니’ 같은 역할을 했다. 메가 정치 이벤트를 경유하며, 종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놀라울 정도로 빨리 터득했다.

종편이 택한 전략은 일종의 ‘연합 전술’이었다. 각각의 채널로는 시장의 ‘환대’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묶는 일종의 ‘연환계’ 전술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정부·여당이 정치적으로 과잉 판단을 해버린 것 같았던 실책이 갑자기 신의 한 수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종편 4사가 나란히 정치·시사 프로그램을 ‘오염’에 가깝게 남발하자 ‘의제 장악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때맞춰 경쟁자라고 할 지상파 방송들이 자학에 가까운 몰락수를 남발한 상황도 호기로 작용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종편이 택한 전략은 일종의 ‘연합 전술’이었다. 각각의 채널로는 시장의 ‘환대’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묶는 일종의 ‘연환계’ 전술을 작동시켰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이 과정에서 종편 뉴스는 이전까지 ‘레드오션’ 취급을 받던 어느 시청자 집단을 ‘블루오션’으로 공략하는 역발상을 실행했다. 이전까지 존재하되, 주목받지 못하던 노인 시청층의 전면화였다. 정치·시사 프로그램의 남발을 합리화해야 하다보니 불가피한 ‘고육계’였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언론의 부진과 맞물리며 궁색하지 않게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로 수렴됐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군중’(crowd)과 ‘공중’(public)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군중은 공통의 관심사나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계열화하기는 어려운 집단이다. 반면 공중은 제도·질서와 같은 공통된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어 조직화할 수 있는 집단이다. 군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들이라면, 공중은 개성을 갖고 있더라도 이성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존재들로 이해된다.

그래서 현대 미디어의 목표는 군중이 아닌 공중을 지향한다. 언론에 의해 결합할 수 있는 존재들을 목표 대상으로 한다. 이를 마케팅적 관점에서 설명하면 ‘구매’ 능력이 있는 집단에 메시지를 쏘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설득’ 가능한 집단이 미디어의 조직화 대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열렬한 구애에 시청률로 보답해</font></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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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이전에 노인은 언론이 감히 전면화하지 않던 집단이었다. 신문시장의 쇠락 이후 방송산업에서 노인은 마케팅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군중이었고, 어떤 정치적 권유를 한들 이미 확고해진 사고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완고한 집단이었다. 종편 이전까지의 방송들은 더 젊은 시청자, 오래 지속 가능한 시청자의 요구와 욕구를 붙잡아두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종편은 이 틀을 깼다. 불가피했지만 결과적으로 절묘한 선택이었다. ‘때깔’로는 도저히 지상파 방송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고, 영향력에서도 위협적이지 못했던 상황에서 종편은 다수자지만 ‘고독한 군중’으로 방치되던 노인층을 파고들었다.

시청률 추이를 보면 확연하다. 시청률 조사기관 TNMS로부터 최근 6개월간 연령대별 시청률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 TV도 이미 ‘올드 미디어’가 되어 연령대별로 보면 tvN을 제외하곤 50대 이상의 시청률이 대체적으로 높았다(그림1 참조).

이 가운데서도 종편은 노인 연령층의 시청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TV조선은 60대 시청률이 20대 시청률의 9.8배에 달했고, 채널A 8배, MBN 7.3배, JTBC 1.8배 순이었다.

이 추이를 지상파 방송과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KBS1이 종편 수준으로 60대 시청률이 20대에 비해 12.2배 높았다. 하지만 다른 채널들은 각각 3.4배(KBS2), 3.2배(MBC), 2.7배(SBS)에 그쳤다. 반면 종편은 차별화 전략을 꾀하고 있는 JTBC를 제외하면 60대 시청률이 20대 시청률보다 평균 8.3배 이상 높았다(그림2 참조).

1030세대의 시청률과 4060세대의 시청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TV조선의 1030세대 시청률 합계는 0.35%였다. 반면 4060세대 시청률 합계는 2.04%에 달했다. 무려 5.8배나 높았다. 이어 채널A가 5.4배(1030세대 시청률 합계 0.46%, 4060세대 시청률 합계 2.48%), MBN 5배(1030세대 시청률 합계 0.56%, 4060세대 시청률 합계 2.81%) 순이었다.

특이점은 JTBC에서 발견됐다. JTBC는 4060세대의 시청률 합계가 1030세대에 비해 1.9배밖에 높지 않았다(1030세대 시청률 합계 0.84%, 4060세대 시청률 합계 1.66%). 이는 지상파 방송보다는 훨씬 낮고, 예능 채널인 tvN에 견줄 만한 수치다(tvN 1030세대 시청률 합계 1.66%, 4060세대 시청률 합계 2.34%, 약 1.4배 차이). 손석희 사장 영입 이후 JTBC가 확실히 젊은 층을 사로잡고 있단 방증이다. KBS1을 제외한 지상파의 경우 각각 2.4배(MBC), 2.3배(KBS2), 2.2배(SBS)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듣고 싶은 얘기만 해드립니다</font></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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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에서 시청률은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에 해당한다. 종편이 ‘언론도 아니다’라는 빈정거림을 견디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60대 시청률이 20대 시청률의 8.3배에 달하며, 4060세대의 시청률이 1030세대 시청률의 5배가 넘는 상황에서 노인은 종편을 비추는 거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편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을 비추는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만, 알아들을 수 있게 하면 된다. 일종의 ‘선무 방송’이고 확실히 ‘위무 방송’이다. 노인 집단을 극단화(polarization)해 진영으로 묶어두는 것은 종편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당장 오늘을 보장받는 가장 절박한 과제다.

개인의 자존감은 종종 스스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타인에 의한 평가로 유지된다.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태를 수용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는 거부하려 든다. 집단의 사회적 본능이기도 하고, 개인들의 방어 욕구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끊임없이 근대화 과정을 강조하고, 근래의 역사를 거꾸로 호출하는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자신들을 찍어줄 이들을 향한 구애, ‘표밭갈이’ 행위다. 말하자면, 종편은 이 추파를 공공연히 그리고 아예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시킨 ‘실버산업’이다.

이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는 감정은 ‘공포’와 ‘분노’다. 종편이 편향성 시비를 기꺼이 감수하며, 매번 노골적으로 정부·여당 편을 드는 이유다. 개국 4년여, 한국 사회에서 종편은 노인층의 시선을 끊임없이 붙잡아둘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해야만 한발 더 디딜 수 있는 운명의 공동체가 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너는 노인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font></font>

‘방송시장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방송 콘텐츠 품질 제고, 여론 다양성을 통한 민주주의 활성화’ 등을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종편은 이제 그런 것을 따져묻기도 겸연쩍게 노인들의 ‘공포’와 ‘분노’를 선동해야만 유지 가능한 디스토피아의 ‘공장’이 됐다.

실체적 진실을 따지고, 언론의 합리적 기능을 요하는 것은 정의롭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장 종편에 ‘빵’이 되질 않는다. 최대 다수 노인의 공포감을 가장 짜릿하게 공략하는 행위만이 지금 종편에 필요한 한 모금의 기갈이다.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바탕으로 민주정부 시절의 기억을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 씹고 또 곱씹어 ‘분노’로 환기하는 무한 루프는 그래서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종편은 오늘도 묻는다. 노인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노인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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