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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도 무서운데 소녀는 어땠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연기한 배우 서미지·김시은·홍세나… 일본 군인의 역겨운 냄새, 거친 군화 소리 상상하다 악몽에 시달려
등록 2016-02-05 02:59 수정 2020-05-03 04:28

배우들은 두려웠다고 했다. “연기는 어떻게든 하겠지만 과연 내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의 몇 퍼센트를 느끼며 연기할 수 있을까”란 생각 때문이었다.

<귀향>에서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왼쪽부터 서미지, 김시은, 홍세나씨. 김진수 기자

<귀향>에서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왼쪽부터 서미지, 김시은, 홍세나씨. 김진수 기자

“주체 못할 정도로 울었어요”

걱정도 함께 따라왔다. “그 고통에 몰입하면 영화가 끝나고 감정에서 제대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란 무서움도 밀려왔다. 촬영 이전부터 배우들의 심리상담을 해줬던 전문의는 이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 동안) 악몽을 꾼다고 생각하라. 곧 깨어날 꿈이다.”

배우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감정에 다가갈수록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 슬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라 눈물이 북받치곤 했다.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면 어떻게든 고통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겠지만 위안소에 갇혔던 소녀들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의 순간을 매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우 김시은씨는 소녀들이 위안소 밖으로 끌려나와 일본군이 겨눈 총구 앞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촬영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 촬영하며 배우들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울었어요. ‘우리는 연기를 하면서 간접 체험을 하는데도 이렇게 무서운데 당시 소녀들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더 슬펐죠.”

배우 홍세나씨도 비슷한 느낌을 얘기했다.

“그 장면을 찍다가 내가 다치기라도 하면 달려와서 도와주는 사람(스태프)이 많잖아요. 그런데 당시 소녀들의 등 뒤에서 총을 겨눈 사람들은 진짜로 죽이려는 사람이잖아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소녀들이 느낀 공포감이 무엇일지 많이 생각했어요.”

배우들은 벌레처럼 몸 위로 기어오르던 일본 군인들의 역겨운 냄새, 위안소로 몰려들던 일본 군인들의 거친 군화 소리, 그 어떤 것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부담감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배우 서미지씨가 말했다.

“전쟁 꿈을 많이 꿨어요. 꿈에서도 피를 흘리고, 누가 총을 겨누고. (그게 힘들어) 수면제를 먹고 잘 때도 있었어요. 촬영하려면 조금이라도 잠을 제대로 자야 하니까요.”

배우들은 그렇게 찍은 영화 (2월24일 개봉)을 후원자 1차 시사회(2015년 12월~2016년 1월)를 통해 관객과 미리 만났다. 위안부 소녀 역을 연기한 배우들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이 자신들의 손을 잡아주던 눈빛을 잊지 못했다.

고맙다며 안아주는 관객

“(상영관) 밖에서 나오는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우리가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는데 울컥했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안아주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시기도 했고요.”

엄마와 동생, 지인들이 시사회에 왔었다는 세나씨는 영화가 끝난 뒤 “고생했다”며 가족과 지인들이 자신을 안아주던 순간을 얘기했다.

“연기 경력 하나 더 쌓으려고 출연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알려주려고 연기한 것인데 그걸 알아준 것 같아 제가 (오히려) 고마웠어요.”

은 1943년 15살 전후의 소녀들이 위안소로 끌려가 참혹하게 당한 일을 보여주고 그곳에서 숨진 이들의 넋을 영화로나마 고향으로 데려오려는 작품이다. 시은씨, 미지씨, 세나씨는 2014년 5월 배우 오디션 때 위안부 피해 소녀 역에 지원했다. 투자자를 찾지 못해 영화의 완성을 장담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이 영화에 발을 디뎠다가 촬영도 하지 못한 채 배우로서 시간만 허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오디션 때 눈물을 글썽이며 의 대사를 읽어 내려갔고, 모두 “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감독에게 얘기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연기)으로 참여한다면 뜻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김시은)

“오디션 공고 사이트에 대본이 올라왔는데 진짜 하고 싶어서 대본을 (인쇄한 뒤) 제본해서 소중하게 안고 다녔어요. 위안부 문제를 꼭 영화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서미지)

적정한 수준의 출연료를 미리 받을 여건도 되지 않았다. 영화 수익이 나야만 그에 맞춰 출연료를 받는 방식(러닝 개런티)이었지만 배우들은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세나씨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바라진 않았다”고 했다. 세나씨는 연기뿐 아니라 촬영부 막내 스태프로도 일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결국 촬영이 진행됐을 때 강상협 촬영감독은 배우들의 연기 집중력에 놀랐다고 한다. “대사를 틀리는 배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지씨는 “제작비가 많이 없는 상황에서 NG가 나면 촬영 비용이 늘어나니까 배우들이 함께 모여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촬영(4~6월) 직전까지 배우들이 모여 사전 호흡을 철저히 맞춘 결과다.

김시은, 홍세나, 서미지씨(왼쪽부터)가 <귀향>에서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을 연기하는 장면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시은, 홍세나, 서미지씨(왼쪽부터)가 <귀향>에서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을 연기하는 장면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사 틀리는 배우가 없었다”

세 사람은 20대이지만 10대 중·후반의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연기했다. 실제로 10대의 나이에 위안소로 끌려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11살에 끌려간 경우도 있다.

시은씨는 평양에서 끌려간 ‘분숙’ 역을, 미지씨는 경북 상주에서 끌려간 ‘15살 영희’ 역을, 세나씨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전라도에서 끌려간 ‘16살 옥분’ 역을 맡았다. 각자 다른 곳에서 살던 이들은 중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에 모인다.

기차 화물칸에 실려 며칠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 위안소에 도착한 ‘옥분’이는 봇짐을 끌어안고 저들에게 묻는다. “근디 여기가 뭐하는 곳이다요?”

스치듯 지나가는 이 짧은 대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제 발로 간 곳이라면 어린 옥분이가 두려움 섞인 표정으로 이런 의문을 품을 리 없다. 저들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알려준다. 가장 먼저 이곳에 끌려온 ‘분숙’이가 절망이 뒤엉킨 비명을 내지르는 소녀들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옥분이가 궁금해하던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니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지? 우린 벌써 다 죽은 기야. 여기가 지옥이다야.”

은 위안소에서 겪은 일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넋들을 위로하려는 영화다. 그래서 죽어가는 다른 소녀를 흔들며 “이제 집에 가자”고 얘기하는 ‘영희’의 대사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찌를 것이다.

세나씨는 “촬영하면서도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지씨는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의 장면을 영화에서 그대로 촬영했는데 할머니가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구덩이에서 태워지는) 모습을 봤다고 생각하면 울컥해진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위안소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 그 공간이 “춥고 스산하게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는 경험도 공통적으로 얘기했다.

연기하기 쉽지 않았던 장면들을 찍고 개봉을 앞둔 세 배우들은 이 많은 관객과 만나기를 기원했다.

시은씨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에 (제작 여건이 좋지 않아) 잘 진행이 되지 않을 때는 안타까워하며 다들 한마음으로 촬영했다. (같이 촬영한)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미지씨는 “(위안부 문제가)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해주시고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과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나씨도 “사람은 잊혀질 때 죽는 거라는 말이 있듯 (위안부 피해 소녀들이 겪은 일은) 잊혀져선 안 될 이야기”라고 했다.

세 사람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는 이 영화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평소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릴 때도 서너 번 다시 보고 올린다”며 웃었다.

배우의 길로 돌아오도록

그러고 보면 은 세 배우에게도 의미 깊은 작품이다. 연기를 전공한 뒤 여러 편의 연극 무대에 서며 연기력을 탄탄히 다져온 시은씨는 1년 남짓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사무 일을 보다가 오디션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영화과를 준비하다 그만둔 채 무역학을 전공한 미지씨는 휴학 상태로 배우를 준비하다 에 참여했고, 아역배우 활동도 했던 세나씨는 2년 남짓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 에 합류했다. 이 영화는 배우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세 사람을 제자리로 데려온 ‘귀향’ 같은 작품이 되었다.

어린 무녀 은경 역 맡은 배우 최리


"소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영화 엔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넋을 불러 고향으로 데려오는 어린 무녀가 등장한다. 1991년을 사는 16살 무녀 ‘은경’이가 1940년대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상처를 보듬는 설정은 이 ‘예상 가능한’ 영화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다.
조정래 감독이 을 구상할 때부터 중요한 배역으로 여긴 ‘은경’ 역은 한국무용(중앙대)을 전공하는 최리씨(사진)가 맡았다. 의 다른 여배우들보다 먼저 합류해 가장 오랫동안 이 영화가 겪은 어려움을 지켜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출연 제안을 받아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나이가 됐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최리씨는 처음엔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영화 내용이 적힌 팸플릿을 감독님이 줬는데 할머니들이 당한 일들이 자꾸 꿈에 나와 대학에 합격한 직후 ‘이 영화 해보고 싶다’고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한 한기를 휴학하며 영화를 준비했지만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일(위안부 문제)이니까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면 (바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라에서조차 잘 도와주지 않고 (투자자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가장 슬펐어요.”
의 핵심은 죽은 소녀들의 넋을 부르는 ‘귀향 굿’ 장면이다. 최리씨는 ‘은경’이가 신기를 느끼듯 이 장면을 찍기 전후로 일주일간 “잠을 거의 못 잘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님도 은경이가 소녀들의 넋을 잘 데려오지 못하면 이 영화는 의미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찍으며 부담도 컸다”고 한다.
그는 “은경이가 죽은 소녀들을 돌아오게 하는 역할인데 이 상영될 때마다 많은 소녀들이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은경은 과거 속 현장으로 들어가 “일어나요 언니, 이제 집에 가야지”라고 말하며 죽은 소녀를 긴 잠에서 깨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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