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들이 2015년 12월30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위쪽). 일부는 ‘위안부 소녀상’ 곁을 지켰다. 그리고 이들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대신했 다.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거부한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경남 거제에 위안부 소녀상이 있다. 저고리 차림에 거칠게 잘려나간 머리, 그러나 다부진 눈매, 주먹을 꼭 쥔 두 손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의자에 앉은’ 소녀상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거제 소녀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감추려는 일본의 행태를 언제까지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는 뜻으로 (소녀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상은)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없는 일본의 모습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행히도 김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한-일 정부는 2015년 12월28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특히 이번 협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데 양쪽이 동의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증폭됐다. 아베 총리가 측근들에게 “이제 모두 끝이 났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거나, “이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도 말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정부를 제외한 국내 여론에선 피해자를 배제하고 치욕적인 협상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피해자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주시기 바란다”며 아베 총리와 입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정부가 굴욕적인 외교 협상을 했다는 사실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법조계·학계·정계, 이들을 응원하는 사회단체와 일반 시민들은 불복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있는 소녀상이 이 땅에 편히 발을 내려 디딜 때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이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사실이다.
취재 홍석재·박수진·전진식·송호진 기자, 편집 정은주 기자, 디자인 장광석
“일본 정부의 직접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겠다”던 한을 끝내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가 192명이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46명이 남았다. 한국 정부는 2015년 12월28일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12·28 합의’를 마쳤다.
기습적으로 이뤄진 합의 내용은 이렇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사과 표명을 한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97억원)을 낸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의 요구는 무시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4년 6월2일 ‘제12차 아시아연대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에서 일본 정부와 군이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점과 함께 위안소 제도가 일본 국내법과 국제법에 위반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해왔다.
일본 정부가 직접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고, 일본 국내 교과서에 일본군이 ‘성노예’를 통해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기록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사업 등의 조처도 취하라고 했다. 이번 합의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 정부가 돈 100억원에 혼을 팔았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들은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털모자와 털목도리로 따뜻하게 감쌌다. 김진수 기자
2015년 12월30일, 1211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냉기를 먹은 비가 옅게 흩뿌리던 이날, 한 무리의 여고생들은 품에 안은 영정을 하나씩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쪽으로 돌렸다.
사진 속 할머니들의 눈길은 일본대사관 너머 청와대와 정부 청사의 외교부 건물에도 미쳤다. 여고생들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불가역적인 것은 일본의 전쟁범죄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법적 배상하라.” 같은 자리에서 2015년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 9명의 추모제가 열렸다.
191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최갑순 할머니는 15살 때, 집에 들이닥친 일본 순경에게 아버지 대신 끌려갔다. 전주에서 만주 목단강까지 끌려다니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는 12월5일 생을 마쳤다. 1925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효순 할머니는 17살 때부터 부산,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까지 끌려다녔다. 성노예를 거부한다고, 매 맞고 고문당했다. 1922년생 박유년 할머니, 1925년생 김달선 할머니, 1925년생 최금선 할머니, 1926년생 황선순 할머니, 1932년생 김연희 할머니, 1934년생 김외환 할머니, 그리고 ‘박 할머니’로만 불리던 9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한국 정부가 우리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 하늘로 떠난 다른 할머니들을 볼 낯이 없다. 끝까지 싸워서 한을 풀어낼 것”이라고 했다. 88살 할머니는 또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오후 6시부터는 ‘평화나비 네트워크’ ‘청년하다’ ‘대학생겨레하나’ ‘같이하자 청년학생캠페인’ 등 청년·대학생 단체 소속 청년들과 시민 50여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목도리를 두르고 담요를 덮은 소녀상에는 누군가 우산을 씌워줬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 강순익(20)씨는 “협상 결과를 듣고 내 마음이 이렇게 아팠는데 할머니들은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새 소녀상 곁을 지켰다. 특별한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이날 처음 거리에 나온 진성주(23)씨는 “피해자이자 당사자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협상하고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과’를 내놓는 모습이 너무나 뻔뻔하다”고 했다. 강씨를 비롯한 30여 명의 청년들은 이날 밤샘 촛불농성을 했다. 2016년 첫 수요집회 때까지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도 이어간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두 나라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이번 합의의 효력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지 하루 만인 12월29일 서울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합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2·28 합의’의 법적 구속력을 따지는 절차에 들어갔다. 12월30일 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이번 합의 때 한국과 일본이 교환한 서한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정보공개 청구를 외교부에 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이 국제법상 ‘조약’인지, ‘신사협정’인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송기호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장)는 과 전화 통화에서 “조약이라면 국제법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국회 비준 절차가 없었다. 비준 없는 조약은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사안이다. 조약이 아닌 단순 신사협정이라면 법적 강제성을 가질 수 없다. 양국 정부가 말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또 “정부가 말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라는 것은 할머니들이 위안부 피해 문제에 별도의 구제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것인데, 국민이 국제법상 심각한 인권침해를 받은 데 대해 다른 나라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는 국가 간 약속 체결로 종결되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권리를 국가가 포기시키거나, 극단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청구권을 국가에 위임한 바도 없다. 이 협약으로 할머니들의 권리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번 합의에서 국제법에 따른 국가 범죄의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연합인권이사회(UNHRC)와 국제법률가협회(ICJ)는 1994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가가 조직적으로 여성에게 성적 노예 행위를 강요한 전쟁범죄’로 보았다. 이에 따라 법적 책임 인정과 이에 상응한 후속 특별입법 조치를 일본 정부에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정대협을 비롯한 위안부 관련 단체, 이들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학계와 정치계까지 합세해 정부의 부당한 합의에 불복종으로 맞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정대협은 1월6일 회담 무효화를 위한 100억원 모으기 범시민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12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만 명당 5만원이면 100억원이 된다. 시민 스스로 재단을 만들어 회담을 무효화하자”고 제안했다. 정대협은 또 미국·유럽·아시아와 연대하는 ‘세계행동 연대체’를 구성해 정부 협약의 무효화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껄끄러워하는 ‘위안부 소녀상’을 세계 각지로 확산시키는 운동도 추진한다. 윤 대표는 “전국에 평화비를 만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국을 돌며 수요집회 릴레이 개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
나눔의집·남해여성회·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등 위안부 관련 단체들도 “이번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그리고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며 위안부 할머니들과 어깨를 결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12·28 합의’의 원천 무효를 선언했다. 문재인 더민주 대표는 “이 합의에 반대하며 국회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했다. 한-일 간 재협상과 굴욕적 합의를 주도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해임도 촉구하고 있다. 더민주는 위안부 문제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의당도 성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라는 것은 오직 법적 책임과 공식 사죄”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이번 합의를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이뤄진 두 정부의 야합”으로 규정하고, 12·28 합의 과정 공개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시민단체와 연계해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1천만 서명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상권 상임공동대표(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2016년 총선과 연계해 이번 합의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이번 협정을 무효화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앰네스티가 이번 합의를 ‘정치적 거래’로 규정했다. 히로카 쇼지 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일본군 성노예제로 인해 고통받은 수만 명의 여성들의 정의 구현에 종지부를 찍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생존자들의 요구가 이번 협상으로 헐값에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성노예제 생존자들이 그들에게 자행된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완전하고 전적인 사과를 받을 때까지 정의 회복을 향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결정문 분석] ‘5 대 3의 희망’ 정형식·김복형·조한창도, 파면에 이견 없었다
[전문] ‘윤석열 파면’ 헌법재판소 결정문 ①
‘불소추특권’ 잃은 윤석열…형사 법정 여기저기 불려다닐 처지에
[전문] 윤석열 “기대 부응 못해 안타깝고 죄송하다”
윤석열 파면에 “아이고, 나라 망했다”…전광훈 “내일 3천만명 모이자”
헌재 “야당 입법독주? 거부권 행사했는데”…윤석열 파면 ‘핀셋 판단’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명문”…헌재 선고 요지 칭찬 릴레이
서부지법 폭동 겪은 언론…‘탄핵선고 취재진’ 경호인력 고용까지
[영상] 윤석열 전원일치 파면…헌재 “주권자 대한국민 신임 중대히 배반”
[전문] 헌재 선고 요지…“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