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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하지 않고 할당할 수 있을까

청년정치를 위한 청년정치가들의 제언 “아래로부터 정치·위로부터 할당제 병행돼야”
등록 2015-08-27 03:22 수정 2020-05-03 04:28

아뿔싸, 실수다.
지난 8월17일 편집회의에서 청년정치 발제가 나오자 입을 잘못 놀렸다. “청년정치가 새로운 의제는 아니고… 이미 21세기 초반 20~30대에 정치를 시작한 이들이 있었고… 어쩌고어쩌고….” 지루한 설교조 코멘트에 기자들 일동의 침묵. 그리고 침묵은 말한다. ‘그렇게 잘 알면 네가 써봐.’ 결국 “청년정치를 해본 사람들이 말하는 청년정치를 쓰겠다”고 자진납세 해버렸다.

청년정치가 완전히 새로운 의제는 아니다. 사회당·노동당으로 이어진 청년진보당. 한겨레

청년정치가 완전히 새로운 의제는 아니다. 사회당·노동당으로 이어진 청년진보당. 한겨레

“청년은 20~30대 비혼남성의 느낌”

몇 명의 생각나는 이름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사의 요지를 설명하자 대개 첫마디가 “아… 그래요”였다. ‘기자질’ 18년을 했는데 느낌이 온다. ‘작금의 청년정치, 잘 모르겠다’는 말씀. 그래도 포기하면 아니 된다. 돌려 돌려 아슬아슬 물어서라도 ‘고귀한 경험의 고갱이’를 낚으려는 처절한 질문을 계속했다. 젊어서 기초의회 의원을 하거나 지구당(지역협의회) 위원장을 했던 이들과 기나긴 인터뷰를 거듭거듭 하며 깨달았다. ‘아, 이들은 청년정치를 했던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를 했던 것이구나.’ 그러면 어떠랴. 청년기에 진보정치를 했으니 그나마 청년정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들이겠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당선자가 된 김혜련씨. 김혜련 제공

2002년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당선자가 된 김혜련씨. 김혜련 제공

김혜련(38)씨는 만 25살7개월에 경기도 고양시의원이 됐다. 2002년 당시 환경운동연합 출신 시민후보로 나와서 ‘덜컥’ 당선돼버린 것이다. 당시 전국 최연소였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워크숍을 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게 인상적이었나봐요. 선배들이 ‘네가 나가봐’ 하더라고요.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밤늦은 워크숍 현장에서 피선거권 나이가 확인이 안 됐어요. 다음날 아침 9시 다들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으로 피선거권 나이를 확인해보니 만 25살이었어요. 이날 9시25분에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마당에서 출마가 결정됐죠.”

그렇게 시작한 기초의원 생활은 2006년 재선, 2014년 3선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정의당 소속으로 고양시의회 건설교통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아이가 둘이 생겼다. “정치와 행정이 50~60대 남성들의 카르텔이잖아요. 예전 지방의회는 특히 그랬고요. 젊을 때 지방의회 초선을 하는 게 좋죠. 뭘 몰라야 과감하게 지르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40대 중반을 넘기면 ‘쪽팔린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얘기가 많아요.” 경륜이 쌓이면서 지금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지만, ‘청년이 정치를 하면 좋은 이유’를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회자되는 ‘청년정치’라는 말에 대해 김 의원은 비판적이다. “저는 청년이라고 하면 20~30대 비혼 남성 위주란 느낌이 들어요. 저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엄마들이 과연 청년정치에 포함된다고 느낄까요? 그건 또 여성정치로 제한되죠. 단어가 포괄하는 다양성이 부족한 거죠.” 역시나, 청년정치를 몸으로 통과한 언니는 그것의 성별까지 세심하게 따졌다.

생애주기 거치며 성숙해가는 정치인

그래서 ‘386세대’라고 하지만, 실은 ‘386 남성들’이라고 해야지 맞겠다. 1998년 총선부터 학생운동 출신 30대 남성들이 그 젊은 나이에 무려 ‘금배지’를 달았다. “젊어서 국회에 들어간 그분들이 과연 당시에 자질이 됐을까요? 국회의원이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권력을 선용해야 하는지 알았을까요? 이후로 그들의 유능함을 보았던가요? 저는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당이 훈련시킨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기초의원부터 경험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아래로부터 풀뿌리 정치를 해온 김 의원이 청년정치 열풍에 대해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표하는 이유다.

경기도 과천시의회 의원을 두 번 했던 황순식(37)씨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그는 2006년 민주노동당, 2010년 진보신당 소속으로 과천시의원에 당선됐다. “결국은 실력으로 검증받아야 하지만, 아무래도 청년이 학습능력이 좋죠.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공무원도 무시 못하게 돼요. 젊으니까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주민들이 편하게 다가오는 장점도 있고요.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는 거죠.” 지역 정치를 현장에서 배우며 34살에 과천시의회 의장을 했던 그의 말이다.

스펀지 같은 학습능력을 말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청년은 연필을 쥐고 공부를 하다 끝낸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뭔가를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죠. 기초의원이 현장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8~9급 공무원인데, 나이대가 비슷해서 유대를 쌓기도 좋고요.” 이렇게 말하는 최선(43)씨는 2006년 34살에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서울 강북구의원이 됐다. 현재는 진보정당의 분립 과정을 거쳐 새정치연합 소속이다.

강북구의원으로 활동하는 최선씨. 최선 제공

강북구의원으로 활동하는 최선씨. 최선 제공

그는 2010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4년에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는 산전수전도 겪었다. 2006년 당시 만삭의 몸으로 출마해 당선된 그는 10년 세월을 거치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청년은 관행과 부채가 없으니 익숙한 것에 익숙한 중·장년보다 가능성이 크죠.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들의 마음을 알겠고, 유모차를 끌어보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고충을 알겠어요. 갈수록 다양한 시민과 접점이 커지고 파트너십이 생기더라고요.” 이렇게 여성·청년 정치인은 생애주기를 겪으며 성숙했다.

그는 요즘도 동네 청년들과 가까이하려 노력한다. 오랜 정치적 인연을 이어온 강북구민 자녀들과 ‘청년정치스쿨’을 했던 이유도 그렇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누가 이득이냐’고 했더니 다들 ‘기득권층’이라고 답해요. ‘교육제도가 바뀌어서 우리가 고생한 이유도 다 정치에 있구나’ 알더라고요.”

그는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청년할당제에 대해 긍정적이다. “진보정당이 했던 30% 여성할당제가 정치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인위적이라도 청년할당제가 필요해요. 청년비례로 뽑힌 장하나·김광진 의원도 의미 있는 활동을 했잖아요. ‘젊어서 진취적이다’의 반대말은 ‘어려서 서투르다’가 아니에요. 청년은 어리지 않아요.” 청년정치인, 더구나 여성이 중·장년 남성이 장악한 지방의회에 들어가서 생긴 존재감도 전했다. “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갑질을 못하게 하는 필터링 작용이 되던데요.”

아래로부터의 청년정치는 가능한가
지역에 밀착한 청년정치를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계속해온 이들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서울 마포구의원으로 출마한 오김현주(오른쪽 맨끝)씨는 현재 마포 민중의집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오김현주 제공

지역에 밀착한 청년정치를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계속해온 이들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서울 마포구의원으로 출마한 오김현주(오른쪽 맨끝)씨는 현재 마포 민중의집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오김현주 제공

오김현주(35) 서울 마포 민중의집 공동대표는 서른에 출마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를 “무언가 내 몸에 통으로 들어왔다가 나간 느낌”이라고 돌이켰다. 2010년 진보신당 후보로 마포구의원에 출마해 2%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기는 했지만, 주민을 직접 만났던 선거 경험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같이 출마했다가 당선된 진보정당 구의원을 통해 거대한 일도 실타래 하나가 풀리면 해결되는 걸 봤어요. 반드시 권력을 잡아서 이 권력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출마했죠.”

이후 그는 지역에 더욱 밀착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한 방보다는 대기만성 하겠어요”라며 웃었다. 다만 할당제로 모아지는 청년정치 논의에 대해선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개인보다는 집단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나 혼자 잘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정치를 하려는 20~30대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의제를 발굴해야죠.”

그리고 다시 웃으며 하는 말, “저는 모르는 사람들 말고 아는 이들이 태워주는 꽃가마 타고 가고 싶어요”. 공천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선발당하는 식이 아니라 꾸준한 지역 활동을 통해 검증받고 싶다는 것이다. “2010년 진보신당 마포당협에서 ‘키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자원도 없는 저를 몇 달씩 월급을 줘가며 후보로 키워줬거든요.”

그리하여 질문은 ‘아래로부터 청년정치는 가능한가’로 이어진다. 20대부터 진보정치를 해온 강상구(44) ‘진보결집+’ 공동대표는 “당시 아무도 우리를 청년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는 학생운동을 거쳐 진보정당 활동가로 20여 년을 살면서 서울 구로 민중의집을 만들고, 2012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구로갑에 출마했다. 강 대표 뿐만 아니라 김종철·나경채씨 등 40대 초·중반 진보정치인들도 그처럼 살았다. 김종철씨는 2006년 35살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여러 차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지만 여전히 ‘당선 가능한 후보’는 아니다.

30대에 제3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종철씨(맨 왼쪽).

30대에 제3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종철씨(맨 왼쪽).

이들은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역구에 출마하는 “총알받이” 구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이들을 키울 방안도, 의지도,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정당에 헌신한 사람이 아닌 외부의 명망가를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영입하는 식이었다.

강상구 대표는 “2012년 총선에서 야권이 청년비례 대표를 뽑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그 나이를 지나버렸다”며 “새 진보정당이 만들어져도 우리는 어차피 청년비례 대상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노회찬·심상정으로 대표되는 386세대 진보정치인은 영원한 국회의원 후보이고, 한번 구의원은 영원한 구의원으로 남겨졌다. 386세대 정치인들이 민주화 이후 정치적 영화를 독점하는 가운데 1970년대 이후생은 386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달고도 남았을 나이에 여전히 득표율 한 자릿수 정치인에 묶여 있다. 이렇게 심각한 자원 배분 시스템의 편중 현상은 의심조차 받지 않았다.

‘유명 청년’ 몇몇으로 대표되는 현실

청년정치 할당제가 논의되는 중에도 여전히 배제 시스템은 작동한다. 강 대표는 묻는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청년이에요. 이렇게 비정규직과 연대하는 노동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전국 곳곳에 지금도 있어요. 과연 이들이 청년정치 주체로 여겨지나요? 언론에 자주 나오는 몇몇 청년단체와 개인으로 과대표되는 현실이 정당한가요?” 정당의 청년활동가로 시작해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시스템이 절실한 이유다. 아래로부터 청년정치와 위로부터 할당제가 병행돼야 ‘청년을 위한 정치’는 겨우 시작된다.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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