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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발 악성코드는 미 수사당국에?

전자우편 해킹 표적으로 추정되는 재미 과학자 안수명 박사 인터뷰 “2013년 10월께 전자우편 서버를 압수당했다”
등록 2015-07-21 18:09 수정 2020-05-03 04:28

재미 과학자 안수명(72) 박사가 기억하는 국가정보원과의 악연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초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안 박사는 서울공대 잡지 의 편집인이었다. 그는 편집인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간 적이 있다. 5·16 쿠데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을 썼다는 이유였다. 중정 요원은 그에게 옷을 벗도록 한 뒤 급소와 머리를 걷어찼다. 그는 바닥을 기었다. 안 박사는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그때) 죽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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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중정에 끌려가 걷어차여

2015년 7월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전자우편(devilangel1004@gmail.com) 이용자(데블에인절)가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 직원과 주고받은 문서에 안 박사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국정원은 2012년 해킹팀으로부터 ‘원격 제어 시스템’(RCS·Remote Control System)이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들여왔다. 특정 인물이 악성코드에 감염된 파일 등을 열어보게 만든 뒤 그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유출된 해킹팀 직원의 전자우편을 보면, 데블에인절은 2013년 10월2~7일 ‘서울공대동창회(남가주)’라는 제목의 문서와 ‘천안함 문의’(Cheonan-ham inquiry)라는 제목의 문서를 해킹용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거나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해킹팀에 문의한다. 두 문서에 대한 작업은 같은 티켓번호(업무 단위)로 이뤄져 동일한 해킹 대상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문의 관련 문서는 기자가 어느 박사에게 천안함 침몰 원인을 문의하는 내용이다. 서울공대동창회(남가주) 문서에는 미국 남가주 지역에 사는 서울공대 출신 300여 명의 이름과 전자우편 주소 및 전화번호 등이 담겨 있다. 천안함 침몰에 관한 정부 발표에 지속적으로 반박 의견을 내온 과학자 가운데 서울공대동창회(남가주) 명단에 등장하는 이는 안 박사뿐이다.

그동안 안 박사는 천안함 침몰에 관한 정부 발표가 비과학적이고 비양심적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는 2011년 6월 미국 정보자유법(정보공개법)에 따라 천안함 침몰 수사에 관한 서류 전체를 요구해, 2014년 9월 미국 해군으로부터 1300쪽가량의 자료를 받아 분석한 바 있다.

국정원도 안 박사가 해킹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지난 7월1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해킹한 IP 가운데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온 재미 잠수함 전문가 안수명 박사의 것이 포함돼 있냐”는 야당 정보위원의 질문에 “그 IP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미국 쪽에도 (IP 사용자) 한 명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발 악성코드, 미 수사 당국 창고에 박혀 있을 가능성

안 박사는 국정원이 해킹 목적으로 악성코드를 심은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들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받고 싶다고 생각되는 이메일만 받고,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메일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국정원이 나에게 그러한 이메일을 안 보냈다는 증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안 박사에게 악성코드에 감염된 문서를 전달하려고 준비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3년 10월께 안 박사는 이전에 쓰던 전자우편 서버를 압수당해 쓸 수 없게 됐다. 국정원이 전자우편을 통해 안 박사에게 감염된 문서를 전달했더라도 그 전자우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수 있다. 국정원은 2013년 10월7일까지 ‘천안함 문의’와 ‘서울공대동창회(남가주)’ 문서에 악성코드를 심어 작동하는 기술적 문제들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안 박사는 “당시 메일 서버를 압수한 기관이 미국 해군인지 FBI(연방수사국)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2013년 10~11월에는 메일 서버를 압수당한 것으로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안 박사가 그때까지 쓴 전자우편 계정은 ahn@ahntech.com이다. 국정원이 악성코드를 심은 것으로 보이는 서울공대동창회(남가주) 명단에 나오는 그의 전자우편 계정과 같다. 그가 현재 쓰는 전자우편 계정은 그것과는 다르다.

안 박사가 실제 국정원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악성코드 감염 문서를 열어보지 않은 채 이전 전자우편 서버를 압수당했다면, 국정원 해킹에 노출될 수 있는 곳은 안 박사의 이전 전자우편을 열 수 있는 미국 수사 당국뿐이다. 이와 관련해 안 박사는 “대한민국 국정원이 ahn@ahntech.com을 감청했으면 대한민국 국정원이 미 수사기관을 감청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해킹팀 유출 자료

해킹팀 유출 자료

“국정원이 협조해 미국서 나를 수사했을 것”

안 박사는 2013년 10월께 이뤄진 한·미 양국 정부의 자신에 대한 감시 강화를 국정원의 통보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2013년 9월3일께 국내에 입국하려다 인천공항에서 입국 거부 통보를 받았다. ‘기피 대상 외국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그는 1984년부터 운영해온 미국 방위산업업체 안테크 대표로서 국방 업무 협의차 국내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입국이 거부된 데 대해 안 박사는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법무부에 자신을 위험인물로 통보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입국에 실패한 그는 바로 중국 베이징으로 갔다. 국내에 들어오는 대신 고향인 북한에 방문할 방법을 찾았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이다. 그는 순수하게 고향을 방문할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에 입국할 때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에 알렸다. 그때마다 CIA는 내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북한 입국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여성인 전아무개씨는 그에게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통해 입국 비자를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2013년 9월8일, 마침 일요일이어서 북한대사관이 문을 열지 않아 그는 북한행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베이징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자 미 수사 당국 요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안 박사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방문을 계획하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돌아왔는데도, 미 수사 당국은 기민하게 그의 항공편 예약 상황과 귀국시간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감시한 국정원의 협조가 없었다면 미 수사 당국이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체크해 움직이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국정원이 미국 수사 당국에 알려서 나를 압수(수색)하도록 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미 수사 당국은 안 박사의 귀국과 동시에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이어 전자우편 계정 서버까지 압수해갔다. 그해 말 안 박사는 1984년부터 허가받은 미국 일급비밀 취급권을 잃었다. 하지만 올해 다시 원상회복됐다고 한다. 애초의 혐의가 무엇이었건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셈이다.

취소된 일급비밀 취급권, 올해 원상회복

안 박사가 2013년 9월 북한 입국을 시도한 상황 등과 관련해 안 박사를 대북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하 의원은 지난 7월1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야권의 의혹 제기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미 과학자라며 순수 민간인으로 포장한 안수명씨는 대북 용의점이 상당히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안씨가 국정원 해킹 시도가 있기 한 달 전에 중국에서 북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이 ‘미국의 비밀 취급 인가권을 갖고 있고 미국의 대잠수함 전투 정보를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어 “안씨는 이 혐의로 미 당국으로부터 컴퓨터를 압수수색 당하기도 했다. 그를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제3의 주장을 펼친 순수한 과학자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 또한 안 박사를 무기 거래 등과 관련해 북한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온 인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안 박사는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떤 나라가 무기를 사려면 직접 사는 방법과 미국 정부를 통하는 방법, 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미국 정부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 무기 거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태경 의원이 나를 빨갱이로 몰아가는데 참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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