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닥투닥. 유리벽 안쪽에선 공기정화 장비를 설치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바빴다. 예닐곱 명의 간호사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체온계를 서로의 귀에 대주고 있었다. “체온계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요? 병상마다 놓을 기본 장비 빠짐없이 챙기시고요.” 마스크를 쓴 의사 서너 명은 의료기기를 최종 점검했다.
긴장감 도는 고요 속 국립중앙의료원지난 6월18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5층. 원래 외상 중환자실이었던 공간을 메르스 격리병실로 바꾸는 준비가 한창이다. 몇 시간 뒤면 다른 병원에서 옮겨온 메르스 확진 환자가 이 병상에 누울 예정이다. 앞으로는 방호복과 고글을 착용하지 않고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5층만이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6월4일 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다른 입원환자를 내보내고 오로지 메르스 환자만 받고 있다. 병원 출입도, 병원 안에서 돌아다니는 통로도 모두 제한돼 있다. “이제 곧 (메르스) 환자 실은 앰뷸런스 들어오니까 얼른 지나가주세요.” 1층 통로를 지나가는데 N95 마스크를 쓴 안전요원이 등을 떠민다. 고요한 병원 곳곳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5층을 포함해 국립중앙의료원이 마련한 음압병실은 모두 25개실, 63개 병상이다. 원래는 5개실, 18개 병상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음압병실을 갖춘 병원이다. 음압기를 새로 들여오고 창문과 벽을 개조해 긴급하게 음압병실을 만들었다. 주차장에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음압텐트도 쳤다. 메르스 환자가 몰려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다.
이날만 해도 국립중앙의료원에 7명의 환자가 새로 들어왔다. 메르스 첫 번째 확진자를 포함해 총 11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었는데, 아산충무병원과 강동경희병원 등에서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메르스에 노출된 환자들이 한꺼번에 추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6월19일까지 국립중앙의료원을 거쳐간 환자는 24명이다. 19명이 아직 병원에 입원 중(확진자 12명, 의심환자 7명)이고, 5명이 병원을 떠났다. 2명은 숨져서, 3명은 퇴원해서 병원을 나갔다. 5월20일부터 한 달 동안 메르스 환자를 돌봤지만, 국립중앙의료원 내부에서 메르스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국에 음압 격리병실은 18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병실 내·외부 압력 차이를 이용해 내부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공조시설을 제대로 갖춘 정식 음압병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감염을 우려해 1인실이 기본이 돼야 하지만, 다인 음압병실도 많다. 외부와 병실 사이에 ‘전실’(前室)을 설치해 공기 흐름을 차단한 곳도 많지 않다. 음압병상 설치에 많은 비용이 드는데다, 공조시설을 돌리는 데 들어가는 전기료만 연간 수천만원이라서 민간병원들이 설치를 꺼린 탓이다.
최근에는 삼성서울병원에 보건 당국이 정한 기준에 맞는 정식 음압병상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병원장으로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병원에 음압병상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삼성서울병원 쪽은 “음압 유지가 가능한 병실 12개를 운영 중이며 나머지 격리병실도 공조설비를 통해 음압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국에 43개 상급 종합병원이 있다. 메르스 환자도 의심환자가 있고, 중환자가 있다. 누가 중환자를 잘 보겠나? 상급 종합병원인데 지금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점이 그동안 누누이 지적돼왔는데, 메르스 사태에서도 그게 교통정리가 안 된다.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에는 안타깝지만 훌륭한 장비도, 중환자를 볼 만한 의료진도 없다. 그런데 환자를 그리로 보낸다. 열악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대학생들 농구 시합을 시키는 꼴이다.”
“초등학교 체육관서 대학생 농구 시합 시키는 꼴”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의 부르튼 입술 사이로 속사포처럼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돌보기는커녕, 메르스 접촉이 의심되는 환자조차 받으려 하지 않는 민간 대형병원들의 이기심에 대한 분노다. 안 원장은 산부인과와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 출신으로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다.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료원들에선 메르스 환자를 돌보느라 의료진들이 쪽잠을 자고 눈이 충혈된 초주검 상태에서도 버티고 있다. 민간병원보다 열악한 시설과 급여 수준에도 목숨을 내놓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는 공공의료인들을 응원해달라.” 안 원장은 메르스 사태가 “공공의료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무너진 의료 전달 체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메르스 확진자의 절반가량은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왔다. 지방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여긴 환자들은 KTX를 타고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찾아왔고, 거기서 감염된 메르스 바이러스를 지방으로 돌아가 흩뿌렸다.
공공의료 붕괴는 메르스 사태를 확산시킨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국내 공공의료기관은 3671곳(2013년 보건복지부 집계)으로, 전국 의료기관의 5.7%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3500곳에 이르는 보건소 수를 빼고 나면, 200곳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공공의료 상황은 당장 숫자만으로도 알 수 있다. 병상 수로는 9.5%, 의사 인력 수로는 10.9%(보건복지부 자료)의 비중밖에 안 된다. 공공병상 비중은 1975년 46.3%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13년 9.5%까지 추락했다. 그 자리는 민간병원, 특히 빅5 대형 종합병원 병상이 채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봐도, 한국의 공공병상 비중은 12.8%로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영국(100%)은 물론이고 미국(24.9%)과 일본(26.4%)에도 미치지 못한다(표 참조).
역대 정부는 공공의료를 확대할 의지가 없거나, 있다 해도 실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공의료기관 비중을 30%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하고 집권 기간 동안 4조3천억원의 공공의료 관련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공의료는 빠른 속도로 후퇴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정부기관에서 법인으로 바꿔 돈벌이로 내몰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방의료원인 진주의료원이 강제 폐업됐다.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립대병원 등 실적이 부실한 공공기관을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이고, 각 시·도는 지방의료원에 ‘수익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월3일, 경남 사천에서 메르스로 의심되는 환자가 처음 나왔다. 이 환자는 120여km 떨어진 부산의 양산부산대병원까지 가서 입원했다. 20여km 떨어진 진주시에 있는 국가지정병원 경상대병원이 당시 음압병상을 수리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이었던 진주의료원은 2013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강제로 폐업시키는 바람에 무용지물이었다.
불똥은 엉뚱한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진주의료원에 메르스 환자를 치료할 만한 음압병상이 있었느냐가 불씨가 됐다.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주장하는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운동본부’(운동본부)는 3층에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실 4곳이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경상남도는 “음압시설은 없었다”면서 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격리병실은 확실히 있었고, 음압병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게 아니다. 2009년 신종플루 발생 때도 그 병실을 이용했다.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같은) 의료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국민 세금을 들여 잘 지어놓은 진주의료원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진주의료원을 마지막으로 맡았던 김양수 전 진주의료원 원장은 혀를 끌끌 찼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건물을 청사로 고치려는 리모델링 기공식을 지난 6월16일 개최하려다가 메르스 확산을 감안해 미룬 바 있다.
수익 못 낸다고 청사로? “가슴이 아프다”
진주의료원은 2009년 9~12월 신종플루가 창궐했을 때 환자 1만 명 이상을 치료하며, 지역거점 의료기관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김양수 전 원장도 당시 타미플루(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먹어가면서 하루 300명을 진료했다고 한다.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민간병원에서 안 받으려고 하는 환자를 다 받았다. 평소 10배가 넘는 환자가 몰려들었고, 의료진이 신종플루에 걸리기도 했지만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했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은 앞으로도 늘어날 거다. 그래서 공공의료기관이 꼭 필요하다. 지방의료원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진주의료원을) 없애버리고 청사로 쓰겠다고 결정한 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서북병원은 이런 ‘수익성’ 고민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서울특별시 직영병원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자 서북병원이 기민하게 대응한 이유기도 하다. 서울의료원과 함께 서울 지역거점병원(노출자 진료병원)으로 메르스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결핵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특수공공병원이라서 평소 음압병실 48개를 갖춰둔 덕분이었다. 결핵병동 1개층을 비워서 메르스 격리병동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26명의 환자가 거쳐갔다. 확진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신질환·골절 등으로 인해 자가격리를 할 수 없는 환자나, 1차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주로 온다.
예방의학 교수 출신인 나백주 서북병원장은 “메르스 환자를 받는 바람에 병원 운영이 안 돼 월급 못 줄까봐 걱정하는 다른 공공의료기관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신종 감염병을 앞장서 다뤄야 하는 공공병원들의 기본 인프라가 너무 열악한 탓이다. 서북병원만 해도 감염내과나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없고, 중환자실도 따로 없다.
“서울의료원 빼고는 지방의료원들이 모두 2차 병원이라서 음압시설이나 신종 감염병에 대한 훈련이 잘돼 있지 않다. 우리만 해도 의료진이 국립중앙의료원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메르스 관련 교육을 받고 대응하고 있다. 그나마 환자들이 단순 접촉자로 가벼운 증상을 보여서 큰 문제가 아니었지, 이런 식의 대응은 코미디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시·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씩 ‘처용’ 훈련을 하긴 하지만, 시·도 단위에서는 역학조사나 위기시 비축 물자 관리, 주요 병원 점검 등 재난 대응이 전혀 안 돼 있다.”
“투자 게을리하며 잘 대처하라는 게 문제”
그나마 서북병원처럼 ‘허리’ 구실을 해줄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도 있다. 대전, 광주, 울산, 세종시 등 4개 광역시에는 지방의료원이 없다. 나백주 원장은 건양대 예방의학과 교수로 있을 때 대전시에 지방의료원을 세우는 운동을 벌인 바 있다. “공공의료 투자를 게을리하면서 메르스에 잘 대처하라고 주문하는 게 문제다. 시·도지사나 의회에서는 지방의료원을 법인화해놓고는 자꾸 ‘왜 돈을 못 버냐’고만 질타한다. 최근 감염내과 전문의를 신규 채용했다가 시의회에서 ‘왜 감염내과를 뽑느냐’고 비판받은 인천의료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감염내과, 호흡기내과를 다 갖춘 지방의료원은 우리뿐이다. 이건 준비다.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이 오면 우리는 자신 있다. 그런데 이걸 유지하려면 당연히 적자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의료원 6층에는 메르스 전용 음압병동이 마련돼 있다. 음압병실 3개(병상 5개)와 부분음압병실 6개를 설치했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외국인 의심환자 등이 격리됐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양성 판정 환자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6월18일 인천의료원을 찾았을 때도 아침에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퇴원해서 병동은 비어 있었다.
인천의료원은 지난해 에볼라 의심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다. 김진용 감염내과 과장과 4명의 간호사가 ‘신종 감염병 대책조’를 짜서 3박4일 동안 격리돼 환자를 돌봤다. 교대 인력이 없어 격리병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공무원들은 병원이 병실과 기계만 있으면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다. 신종 감염병은 예측이 어려워 중환자실처럼 교대로 돌아가야 한다. 상시적으로 의사가 더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 비용이다. 감염병은 우리가 모르는 미래의 위협이다. 전쟁 위협을 대비해서는 국방 예산을 투입하면서, 전염병을 대비할 공공의료기관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민간병원이 다 도망가도 버틸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많아져야 한다.”(김진용 과장)
정부와 인천시는 에볼라 사태 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놓고는, 인건비는 보전해주지 않았다. “에볼라바이러스는 피 한 방울만 튀어도 감염된다는데,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의료진들이 고생했다. 그런데 훈장을 주기는커녕, 병원에 25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의료진 특근수당만 해도 1200만원이다.”(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에볼라 의심 환자가 퇴원한 뒤 투입됐던 간호사들이 다 손사래를 치면서 ‘대책조’는 해체됐다. 김진용 과장은 “명예로운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았는데 누가 (목숨을 내거는 일을) 하고 싶겠느냐”고 되물었다.
인천의료원 운영비 삭감 “보급품 끊은 격”
인천의료원은 이번달 상여금을 못 줄 수도 있다는 공고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천시는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인천의료원 운영비의 15%인 7억여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볼라에 이어 메르스와 싸울 준비만으로도 힘겨운 직원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병사를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보급품을 끊은 격”(인천 공공의료포럼 6월18일 논평)이다. 인천의료원은 메르스 때문에 2개 병동을 비워놨다. 병원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장례식장도 텅 비어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착한 적자’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강조했지만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다.
“민간병원은 영리 위주의 의료로 부를 축적해 덩치를 키웠고, 공공병원은 죽어갔다. 메르스 사태의 출발점은 공공의료가 형편없이 약해진 데 있다. 전염병 예방 등 공중보건 수준을 높이지 못한 탓이다. 그러면서 메르스 같은 사태가 터지면 민간병원이 안 움직이니 공공병원을 내세운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면 영웅처럼 말하다가 지나가면 잊혀진다.” 조승연 원장은 허탈한 듯 말했다.
나백주 서북병원장은 이번엔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스 때도, 신종플루 때도 공공의료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잠시뿐이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공의료기금 같은 걸 만들어서 시·도와 함께 공공의료에 투자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서는 죽어가는 공공의료를 살릴 수 없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지만, 재앙 이후는 미리 준비돼야 한다. “메르스 사태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질되고 전염병 전문병원을 세우기로 하는 등 눈에 보이는 한두 가지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국립대 병원으로 이어지는 공공의료 시스템 자체를 재구축해야 한다.”(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인천=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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