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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메이트? 최악될 수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태로 불거져나온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 직선제 대안인 러닝메이트제·임명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육자치
등록 2015-05-27 12:21 수정 2020-05-03 04:28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새누리당 등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근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기 위한 당내 태스크포스(TF)팀까지 구성한 상태다.
이들은 교육감 직선제의 폐해가 너무 크니 폐지하고 대신 시·도지사와 교육감 러닝메이트제,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 등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현행 제도의 부작용이 너무 클 경우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제대로 됐는지, 새로 도입될 제도가 이전 제도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 적절한지, 제도 개선에 대한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등을 파악하는 일이다. 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 논란과 관련한 이 세 가지 문제를 분석했다. 편집자

교육감 직선제 폐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2007년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공정택·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이 비리 혐의로 당선무효가 되고, 지난해 당선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마저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교육 공백’ 사태가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시교육감 4명 가운데 3명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서울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감까지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선제 폐해, 과도하다 볼 수 없어
지난 5월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맨 오른쪽)가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최근 교육감 직선제 폐지 추진 의사를 밝힌 김 대표는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도입된 2006년에는 이 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지난 5월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맨 오른쪽)가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최근 교육감 직선제 폐지 추진 의사를 밝힌 김 대표는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도입된 2006년에는 이 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인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07년 직선제 실시 이후 치러진 47번의 선거에서 교육감이 최종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것은 모두 3건(공정택·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오제직 전 충남교육감)으로 선거 횟수 대비 6.3%다. 조희연 교육감 사건 등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최종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까지 포함해도 직선제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까지 간 경우는 총 8건(17%)이다.

지난 19대 총선 뒤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가운데 79명(26.3%)이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된 것에 비하면 교육감 선거로 인한 폐해가 과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서울시 사례만 놓고 시행된 지 10년도 채 안 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 이는 전국적인 통계를 왜곡한 것으로 정확한 원인 분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 또 다른 폐해로 지목하는 것은 교육감 선거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점과 정치권의 이념 갈등이 교육 현장에 그대로 반영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점,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다른 성향을 가졌을 경우 갈등이 생긴다는 점 등이다.

그렇다면 직선제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현영희 새누리당 의원이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위해 대표 발의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면, 시·도지사 후보자가 교육감 후보자를 추천하고 시·도지사 후보자와 교육감 후보자가 선거에 공동 출마해 당선된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 이 방식은 교육감 후보가 과도한 선거비용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 정당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기 때문에 ‘선거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교육정책을 공유하기 때문에 정책 갈등이 불거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제도가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부합하지 않는데다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일궈온 ‘교육자치’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헌법 제31조 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러닝메이트제는 선거 과정에서 교육감이 정당 지지를 표방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교육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 경력을 가진 교육감이 나름의 교육적 목표와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러닝메이트인 시·도지사가 정치적 논리로 반대할 경우 실현이 불가능하다.

‘교육자치’ 흔드는 러닝메이트제
직선제 이후 교육감 당선자의 선거법 재판 비율 vs 제19대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의 선거법 입건 비율. 자료: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

직선제 이후 교육감 당선자의 선거법 재판 비율 vs 제19대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의 선거법 입건 비율. 자료: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

고전 제주대 교수는 “러닝메이트 방식은 교육감의 당락이 후보 당사자가 아닌 러닝메이트를 맺은 관련 정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방식이다. 교육감이 시·도지사 후보에 종속된 선거라는 점에서 판례와 헌법정신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도 “러닝메이트제는 당파성이 철저하게 강조되는 선거다. 시·도지사가 교육감에게 많은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닝메이트를 통해 당선된 뒤 시·도지사나 교육감 가운데 한쪽이 중간에 사퇴하는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영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시·도지사의 재·보궐 선거 사유가 발생한 때와 임기가 만료된 때에 교육감이 퇴직하도록 규정한다’고 돼 있다. 교육감 본인뿐 아니라 시·도지사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까지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현행 직선제보다도 ‘교육 공백’이 더 커지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교육감 직선제의 또 다른 대안으로 나오는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의 경우에도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점에서 ‘교육자치’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를 아예 치르지 않으므로 선거로부터 불거지는 모든 부작용은 사라지게 되지만, 시·도지사에 철저하게 종속되기 때문에 교육감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독일·프랑스·영국·핀란드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교육감 임명제를 실시하며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육자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한국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김병찬 경희대 교수는 “핀란드의 경우 아주 소규모 단위에서부터 교육자치를 실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역에 미치지 못하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교육감을 따로 뽑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지역의 자율권이 충분히 보장된 상태에서 임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외국이 임명제를 하니까 따라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인 얘기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2006년 교육감 직선제 도입 찬성

새누리당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TF팀을 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지역 가운데 13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직후에도 팀을 구성해 직선제 폐지를 시도한 적이 있다. 지난 4월27일 직선제 폐지와 관련해 “도저히 이 제도를 갖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06년 12월6일 교육감 직선제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법이 본회의에 올라왔을 때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여권의 직선제 폐지 시도가 직선제 자체를 반대해서라기보다는 ‘진보 교육감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교육감 직선제가 폐지될 경우 그동안 진보 교육감들이 일궈낸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 등의 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한다. 김형태 전 서울시 교육의원은 “교육감 직선제가 폐지되면 교육정책을 둘러싼 공론의 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비록 교육정책을 둘러싼 공론이 아직은 지역 구도나 진보·보수 등 진영 논리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과거 임명제나 간선제 시절보다는 훨씬 성숙되고 있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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