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인 지혜와 한률은 지난 4월16일 저녁,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리는 서울시청 앞 잔디밭을 지켰다. 1주기만이 아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농성을 할 때, 둘도 각각 이틀과 사흘씩 곡기를 끊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소년 ‘방과후 농성장’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5월10일, 지혜가 제안한 청소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7~8시간 동안 함께 걸은 게 첫발자국이었다. 그 뒤로는 세월호 참사 200일, 300일… 특별한 날마다 유가족 곁을 지켰다. 한률은 지난 4월11일 유가족들과 함께 최루액까지 맞았다.
둘은 청소년세미나모임 ‘세모’ 회원이다. ‘세모’는 지난해 9월엔 교육부가 청소년들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교육부가 학교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공동수업이나 노란리본달기 등을 하지 말라는 공문을 각 시도 교육청에 보냈기 때문이다. 지혜와 한률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주며 교육부 방침에 저항했다(제1030호 ‘우리마저,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참조). 비판 여론이 일자, 교육부는 “금지가 아니라 자제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이 희생됐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또래 친구들의 죽음은 10대들에게 여전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리는 광화문과 시청 곳곳에는 교복을 입고 하얀, 노란 국화를 손에 든 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교복을 입고 노란 리본을 목에 걸거나 가방에 매단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친구들이랑 손을 잡고 모여, 세상에 없는 친구들을 추모했다.
10대들에게 지난 1년은 어땠을까? 지혜는 학교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고, 경기도 고양시 세월호 기획단에도 참여했다. 누구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질기게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게 있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어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무력감이 더 심해졌어요. 1년 동안 ‘잊지 말자’고 했어도, 많은 사람들이 1주기를 맞아 다시 세월호를 이야기하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이상의 깊이가 없잖아요.” 지혜는 ‘힘없는 추모’만 남았다고 느낀다.
세월호 참사는 한률의 인생 항로를 바꿔놨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한률은 지난해 5월 이전에는 청소년 모임이나 집회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들었다가 희생됐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옳은 게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죠.” 참사 직후 추모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막말을 하고 잊어가는 모습은 한률에게 충격이다. “결국 교육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낸 거잖아요. 대학을 가는 것보다 ‘인간’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한동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느끼는 ‘실망’은 더 크다. 경기도 안산 지역 24개 고등학교 학생회장단연합(COA)은 지난 4월10일 저녁 단원구 안산문화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 ‘기억, 희망을 노래합니다’를 열었다. COA는 2개월 동안 행사를 준비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주변 어른들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막말하는 사람도 교육이 만든 것“어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우리가 배운 공부가 무엇이기에, 친구들의 죽음을 잊으라고 하는 걸까. 이대로 잊혀진다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아서 모였다. 어른들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일지 몰라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다.” 추모제 사회를 본 김도윤 부곡고등학교 학생회장의 말이다.
이날 행사에는 안산 지역 고등학생 1천여 명이 모였다.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한순간이었던 1년이 지났다. 많은 분들이 잊지 말자고, 잊으면 안 된다고, 기억하자고 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을 사각사각 지워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광화문에서 이런 현수막 글귀를 봤다. ‘세월호에 사람이 있습니다’. 잊지 못하는 이유, 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른들께 부탁한다. ‘기억하겠다’는 말을 제발 잊지 말아주세요.”(신창윤, 안산 초지고 3) 학생들은 1시간30분 남짓 진행된 추모제가 끝날 무렵, 밤하늘에 노란 풍선을 날리며 외쳤다. “우리들의 친구들을 영원히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습니다.”
10대들에게는 ‘잊지 않겠다’는 것도 일종의 기억 투쟁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1년 전, 과 단체 카카오톡 채팅(제1009호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참조)을 했던 고등학생 3명과 다시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부산에 사는 지영이는 “국가를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바뀐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고3이 되면서 친구들에게서 세월호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솔직히 많은 친구들이 세월호에 관심이 없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지영이 친구들은 사고 직후 며칠을 울었다. 그런데 왜 변했을까? “그동안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뉴스를 거의 접하지 못했어요. ‘일베’가 폭식 투쟁을 하거나, 특례입학과 배상금 문제 등 관심을 불러모으려는 기사만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왜곡 보도도 많았고요.”
재수생인 지수도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거의 챙겨보진 못한다. 하지만 가끔씩 광화문 농성장에 들른다. 지수는 주변 친구들의 여론이 언제부터인가 ‘무관심’을 넘어섰다고 느낀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견이 나뉜다는 느낌이 들어요.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보상금이나 특례입학 관련 기사를 자주 올리는데, 참사 직후엔 ‘추모’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왜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느냐’는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이슈가 되어버린 탓이다. 지수는 지난 1년 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과 정부가 원망스럽다. “유가족 곁을 무관심하게 지나쳐가는 대통령, 무릎 꿇는 유가족을 무시해버리는 국회의원을 보면서 답답했어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요구하는 거잖아요. 세월호와 관련된 국민들의 반감은 결국 국가가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해요.”
전남 순천에 사는 고3 승효는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부른다. “고등학생인 우리의 의식 속에 커다란 불신의 상처가 남았어요.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동질감을 갖든지 반감을 갖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우린 ‘세월호 세대’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승효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느꼈다. 그리고 지난 1년은 그런 불신을 오히려 더 키웠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잖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진실을 은폐하고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만 해요. 유족들이 마치 보상금을 원하는 것처럼 본질을 흐리는 식이죠.”
지수는 “아직도 세월호야?”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아직도’가 아니라 당연히,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1년 전이나, 1년 후나 여전히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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