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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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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 우리가 하나씩 이뤄갈게

단원고 고 박수현군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ADHD 공연 20회 하기’ 위해 모인 밴드 친구들의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
등록 2015-04-14 18:02 수정 2020-05-03 04:27

전교 10등 안에 들어보기, 아빠 수제기타 만들어드리기, 자서전 내기, 부모님 효도여행 보내드리기…. 단원고 2학년4반 고 박수현군이 일기장에 쓴 25개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친구들 눈에 띄었다. ADHD 공연 20번 뛰기.
ADHD는 고 박수현군과 중학교 친구 김재성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팀원을 모집해 2013년 여름에 꾸린 밴드다. 8명이 모였다. 롯데리아에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뜻하는 ADHD를 팀 이름으로 정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해도 재미나게 놀아보자는 뜻을 담았다.

지난 3월8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첫 번째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 나기훈군(맨 왼쪽)은 베이스, 김재강군(뒤쪽 가운데)은 드럼. 김재성군(오른쪽)은 수현이 생전에 연주하던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세월호 304 잊지않을게 제공

지난 3월8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첫 번째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 나기훈군(맨 왼쪽)은 베이스, 김재강군(뒤쪽 가운데)은 드럼. 김재성군(오른쪽)은 수현이 생전에 연주하던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세월호 304 잊지않을게 제공

아빠 수제기타 만들기, 자서전 내기…

ADHD는 세월호 사고로 타격을 입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현을 포함해 단원고를 다니는 팀원 5명이 친구들 곁을 떠났다. 남은 멤버 김재강·김재성·나기훈군은 단원고가 아닌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생사를 갈랐다.

지난 1월17일 수현의 생일. 재강·재성·기훈 등 세 친구는 수현의 집으로 향했다. 재성은 중학교 때부터 수현의 생일이면 케이크를 사들고 수현 집으로 갔다. 1차 생일파티를 부모님과 함께 한 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구경하곤 했다. 올해는 수현 부모님과 함께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가 생일상을 차리고 수현 대신 미역국을 먹었다. 이날 수현 생일을 함께 보낸,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세월호 304 잊지 않을게’ 윤솔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버킷리스트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셋 다 1년 뒤 수현이 버킷리스트를 대신 해보려고요.”

윤 작가가 다른 제안을 했다. “1년 동안 선배 뮤지션들이 먼저 공연하고 있다가 너희가 이어서 하면 어떨까. 잊혀지지 않도록.” 재강·재성·기훈 모두 동의했다. 다만 첫 공연은 직접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한 달 동안 게이트플라워즈, 가시 등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연습 강행군을 시작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안산에서 서울 홍익대 앞으로 가서 연습하고 집에 와서 한두 시간 공부하고 새벽 1~2시에야 잘 수 있었다.

3월8일. 딕펑스, 브로큰발렌타인, 브리즈 등 뮤지션들과 함께 드디어 홍익대 앞 어느 공연장에 섰다. 수현의 버킷리스트 한 가지가 친구들에 의해 시작되는 날이었다. ADHD는 수현이 가장 좋아하던 3곡을 골랐다. YB의 , 시나위의 , 국카스텐의 . 공연 뒤 기훈은 수현에게 말했다. “남은 셋 만의 공연이 아니라 우리들의 공연이야. 우리 실수도 많았잖아. 하늘에서 많이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 수현의 기타를 연주한 재성은 어리광을 부렸다. “우리 하루 두세 시간밖에 못 자면서 연습했어. 잘 들었으면 칭찬해줘.”

세월호 304 잊지않을게 제공

세월호 304 잊지않을게 제공

날마다 그립다, 수현아

공연 이름은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수현이 세상을 마친 나이, 열일곱 살의 이루지 못한 꿈. 첫 공연에서는 수현이 속해 있던 단원고 2학년4반 희생자 아이들 28명의 꿈도 함께 영상으로 소개됐다. 좋은 아버지, 역사 선생님, 형이 다니는 대학 가기…. 록밴드의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의 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신나게 놀던 550명의 관객은 금세 숨도 못 쉴 만큼 고요해졌다.

ADHD가 고3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공연은 ‘세월호 304 잊지 않을게’가 뜻을 함께하는 뮤지션들과 이어간다. 매달 공연마다 단원고 한 반 아이들의 꿈이 영상으로 소개된다. 4월19일 홍대 롤링홀에서 두 번째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공연이 열린다. 이날은 2학년3반 희생 학생 26명의 꿈이 영상으로 소개된다. 가리온, 3호선 버터플라이, 요조, 백현진 등이 아이들의 꿈이 외롭지 않게 무대에 선다.

“수현아, 우린 내년에 다시 무대에 설게. 셋 다 재수하지 않게 도와줘.” 재성은 매일 수현에게 이야기한다. “고3 되니 진짜 힘들다.” “나 ○○대 갈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수현이 날마다 그립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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