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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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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는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나

무상급식 비용 돌려 마련하는 바우처 사업, 경남도교육청 사업과 대상에 중복 예
산 배정… 결국 무상급식 수혜자였던 21만 명 지원받은 50만원 그대로 급식비로
내야
등록 2015-03-26 16:02 수정 2020-05-03 09:54

보편적 무상급식은 ‘절대선’이자 당위적 사업인가. 질문할 수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했을 때는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겨냥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3월11일 페이스북에 썼다. “가진 자의 것을 거두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것이 진보좌파 정책의 본질입니다. (중략)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공부보다 급식에 매몰되어 있는 진보좌파 교육감님들의 편향된 포퓰리즘이 안타깝습니다.” ‘무상급식’을 가운데 놓고 좌우를 쪼갰다.

최저생계비 250% 이하 가정에 1년 50만원

홍 지사의 이같은 주장에 “밥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솟구쳤다. ‘무상급식’은 잘못된 용어라며 ‘의무급식’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국가가 초·중등 교육을 소득과 무관하게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서 제공하는 것처럼 급식 역시 의무교육의 영역에 속하므로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다. 공짜가 아니라 ‘세금급식’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담론의 영역을 차치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 자체는 홍 지사가 발표한 대로 ‘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는 정책인 걸까. 그리고 한정된 예산을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집행한 걸까.

이번에 홍 지사가 무상급식 대신 추진하겠다는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의 핵심은 바우처 사업이다. 급식비로 사용될 643억원 가운데 65%에 달하는 418억원이 이 사업에 쓰인다. 바우처 사업은 수혜 대상 가정의 초·중·고생 자녀 1명당 1년 동안 최대 50만원을 쓸 수 있는 바우처 카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카드는 △교육방송 교재 구입 및 교육방송 온라인 강좌 수강 △문제지·참고서·추천도서 구입 등에 사용할 수 있다. 그 대상은 최저생계비 250% 이하의 가정이다. 4인 가족 기준 월 소득인정액(근로소득 등 월소득에 집·자동차 등 재산환산액을 더하고 부채 등 공제액을 뺀 금액)이 418만원 이하인 가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월 실제소득액이 25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도는 수혜 계층을 10만 명 정도로 예측했다.

홍준표 지사가 지적한 대로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바우처 사업이 그 사다리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경상남도 읍 지역에서 일하는 김형률(가명) 사회복지사는 “바우처 대부분이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는 돈으로 쓰이는데, 실제 저소득층 아이들의 경우 혼자 집중해서 온라인 강좌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집에 아예 컴퓨터가 없는 경우도 많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지원은 저소득층 한명 한명을 직접 대면해서 그 아이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찾아서 해주는 방식이 필요한데, 일괄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바우처 50만원은 실제 아이들에게 제대로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는 “1년에 50만원치 온라인 강좌를 듣는 것이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꿈을 키우는 계층 사다리로 작용할 확률은 정말 미미하다. 차라리 도청 공무원을 뽑을 때 저소득층 쿼터제를 두는 게 훨씬 유효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를 고려 않는 복지, 전혀 관리 안 돼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따질 때 빠뜨릴 수 없는 항목은 ‘중복 투자’다. 같은 사업과 같은 대상에 예산이 중복되면 효율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은 도교육청이 진행하는 사업과 내용이 상당 부분 유사하다.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에서 바우처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은 △대학생 멘토링 △자기주도 학습캠프 △진로 프로그램 및 명사 특강 지원 등에 159억원, 교육여건 개선 사업에 66억원이 사용된다. 어학실·멀티미디어실 등을 개선하는 시설사업인 교육여건 개선 사업은 교육청이 이미 하고 있는 학교시설교육환경개선사업과 거의 유사한 사업이다. 대학생 멘토링, 진로캠프도 이미 교육청이 하고 있는 사업이다.

“‘무상급식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하에 졸속적으로 대립하며 교육사업 대부분이 마련되다보니 사업의 효과를 낙관하기 힘들다.”
-정진후 진보당 의원

대상도 상당 부분 겹칠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의 대상자는 교육청이 이미 지원하고 있는 각종 교육복지 사업의 대상자를 대부분 포괄한다(표 참조). 경상남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포괄되는 대상은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복지 강화로 본다. 또한 교육청 사업은 교내에서, 바우처 사업은 교외에서 하는 활동이어서 중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관계자는 “어떤 기초생활수급자 아이에게는 방과후 활동이 끝난 뒤 집에서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는 것보다 다른 차원의 복지가 필요할 수 있다. 교육이라는 건 무조건 돈을 내려보내는 게 아닌데, 아이에 대한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지원되는 복지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진보당 의원은 “경상남도 사업 대부분이 그 성격과 내용, 대상에 있어 교육청의 사업 내용과 겹치기 때문에 지원하더라도 도교육청과 협의가 있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무상급식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하에 졸속적으로 대립하며 마련되다보니 사업의 효과를 낙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의 피부에 와닿는 함정은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의 종잣돈이 애초 무상급식 예산으로 사용될 돈이라는 점이다. 결국 무상급식의 수혜자였던 계층이 그 돈을 그대로 내야 한다. 지난해까지 경상남도의 초·중·고 무상급식 시행률은 73.6%에 달했다. 초등학교는 100%, 중학교는 읍·면 지역에만 시행해 시행률은 60%였다. 영남권에서 가장 높은 시행률이었다(부산 48.1%, 대구 19.3%, 경북 60.1%). 시행률이 높았던 만큼 무상급식 제도를 뒤엎음으로써 급식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계층도 많다. 그동안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던 28만8638명 중 법정 저소득층 6만6451명을 제외한 21만8638명은 한 달에 평균 4만~5만원씩 1년에 50만원가량 급식비를 내야 한다. 경상남도 초·중·고 전체 학생 41만6천여 명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다. 이들 가운데는 분명 ‘부자’도 있겠지만, 홍 지사가 새롭게 1년에 최대 5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서민 자녀’도 있을 수밖에 없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이다.

무상급식, 보편적 복지 담론 견인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무상급식은 선거라는 정치 이벤트와 결합해 매우 빠른 속도로 보편적 복지 담론을 퍼트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09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가 보편적 무상급식을 내걸고 당선된 뒤 2010년 지방선거에 이어 2012년 대선에 이르면서 무상급식은 무상보육으로, 반값 등록금으로, 기초노령연금 확대로 그 영역을 넓혀왔다. 다만 보편복지 담론이 선거와 결합하다보니, 보편복지를 논의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재정에 대한 고민, 증세에 대한 토론 없이 진행되면서 결국 여기저기 암초에 걸려 있는 상태다. 홍준표 지사가 무상급식 시행률을 76%에서 일거에 0%로 되돌린 것도 결국 ‘부족한 재정’을 핑계 삼아 가능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무상급식 등 보편복지론이 선별복지론에서 내세우는 ‘예산의 합리적 배분’ 논리를 넘어서려면 이제라도 재정 규모에 대한 가정을 바꾸고 증세를 합리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또 “홍준표 지사는 지방정부 재정이 부족한 이유가 기초연금을 올리고도 정부보조금은 올리지 않는 중앙정부에 있음을 기억하고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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