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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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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으로 가는 사다리 끊겼다

‘일 배우기 위해’ 비정규직만 옮겨다니는 사람들, 51.4% “한 번도 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없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넘어가는 가교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건 명백한 현실
등록 2015-03-14 13:58 수정 2020-05-03 09:54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대우버스(현재 자일대우버스),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그의 일터는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이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직원이었던 적이 없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직원이거나, 대기업 공장 한켠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직원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정규직이 아니었다. 감히 정규직이 될 꿈조차 꿔본 적이 없다. 대기업 정규직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심지어 정규직 채용 공고를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저 알음알음 비정규직 일자리 20여 곳을 옮겨다녔을 뿐이다.

매일 한곳에 출근해도 소속 업체는 10여 곳
1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현대중공업에는 사내 하청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 4만여 명이 근무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300명이상 대기업 가운데 간접고용 노동자 규모가 가장 크다(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결과 발표 기준). 박승화 기자

1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현대중공업에는 사내 하청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 4만여 명이 근무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300명이상 대기업 가운데 간접고용 노동자 규모가 가장 크다(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결과 발표 기준). 박승화 기자

최충열(43)씨의 첫 직장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청년은 비정규직이 뭔지도 몰랐다. 1t 트럭의 밑바닥 차체만 열심히 만들었다. 생산라인에는 ‘현대자동차’ 작업복을 입은 정규직 형님들이 뒤섞여 일했다. 월 45만원이던 첫 월급은 그래도 3년차가 되니 80만원까지 올랐다. 생산라인이 통째로 이전하면서, 그의 일터도 현대정공으로 바뀌었다. 군 입대만 아니었다면 그곳이 평생 일터가 됐을까? 알 수 없다. 제대한 뒤에는 고향 부산으로 돌아갔다. 대우버스에 철판을 납품하는 업체가 두 번째 직장이었다. 트럭을 만들던 손으로 철판을 두들겼다. 그러다가 1998년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취업했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 ‘초짜’ 용접공은 서툴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로 다시 발길이 향했다. 그곳에 머문 시간도 고작 1년 남짓. 2001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로 되돌아왔다. 그 뒤로는 10년 넘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만 근무했다. 매일 출퇴근하던 일터는 1곳이었지만, 그가 속했던 사내하청업체는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계약서를 안 쓴 업체는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조선소 하청업체는 건설업처럼 이직이 잦다. “한 군데 있으면 시급도 잘 몬(못) 올려요. 일도 배우고 자기 몸값도 올릴 겸 몇 군데 옮기는 거죠.” 그래봤자 월급은 180만원이다.

“일 배우고 한다는 사람들은 두세 번은 옮기지요.” ‘일을 배운다’는 건, 숙련된 용접을 가르쳐주는 업체로 옮긴다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용접 일은 비슷하다. 담당하는 생산공정과 근무조건만 조금씩 달라진다. 조선소 하청업체는 건설업처럼 이직이 잦다. “한 군데 있으면 시급도 잘 몬(못) 올려요. 일도 배우고 자기 몸값도 올릴 겸 몇 군데 옮기는 거죠.” 그래봤자 월급은 180만원이다. 같은 울산조선소에서 일하는 정규직이 100만원 벌 때, 그는 60만원밖에 못 번다. 조선업이 한창 호황이어서 정규직들이 연말에 1천만원 넘는 성과급을 챙겨갈 때도 그는 상여금이라곤 구경도 못했다. 그래도 2002~2003년 여러 하청업체를 전전하느라 벌이가 시원찮아 신용불량자가 됐던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최근 현대중공업에 몰아닥친 인력 구조조정 폭풍과, 월세 20만원짜리 10평 방에 홀로 몸을 뉘어야 하는 외로움만 빼면.

비정규직 일자리는 ‘함정’ 또는 ‘덫’이다. 최씨처럼 비정규직만을 전전하는 노동 생애사를 가진 이가 많다. 의 ‘2015년 비정규직 심층 실태조사’에서 자신의 노동시장 이동 경로를 응답한 비정규직 1024명 가운데 51.4%(526명)는 한 번도 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이 없다. 오로지 비정규직 일자리만 떠돌았을 뿐이다. 이직 횟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비정규직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지진 않았다(표1 참조). 비정규직 일자리를 6곳 이상 떠돌아다닌 응답자도 16.5%나 됐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끊겼다는 뜻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2013) 자료를 봐도, 한국은 비정규직(임시직 근로자) 가운데 1년 뒤 정규직(상용직 근로자)이 된 노동자의 비중이 11.1%에 불과했다. 69.4%는 1년 뒤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에 머물렀다. 프랑스·영국·독일·일본 등 비교 대상 16개국 가운데 정규직으로의 이동성이 가장 낮았다. 1999~2009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OECD는 “한국 비정규직들이 다른 나라보다 덫(trap)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박사가 1998~2005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 개인 추적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처음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사람 가운데 7%만 정규직으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거나 ‘가교’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다.

16개국 중 이동성 가장 낮아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비정규직들의 노동시장 이동 경로가 확인된다. ‘첫 일자리의 고용형태’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1017명 가운데 28.4%는 ‘정규직이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이들의 삶은 추락했다. 첫 일자리가 정규직이었던 사람이 100명이었다고 가정한다면, 18.1명은 무기계약직이 됐다. 그러나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하다는 파견·용역직이 된 사람이 23.4명, 사내하청 노동자가 된 사람이 21.6명이었다(표3 참조). 정규직에서 파견·용역이나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옮겨간 비중이 45%에 이르는 셈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표본이 비정규직뿐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정규직→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정규직’의 노동시장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는 없다. 다만 4년간의 ‘한국복지패널’ 조사 결과를 보면, ‘임시일용직(비정규직)→상용직(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9~13%다. 사다리를 내려오는 사람이 올라가는 사람의 3배를 웃돈다.

오종익(43)씨도 처음엔 정규직이었다. 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했던 경기도 성남의 작은 목재가구 공장이 그의 첫 일자리다. 대형 가구업체에 납품하는, 직원 20명 남짓의 중소 영세업체였다. 이주노동자와도 섞여 일했다. 정규직이라고는 하나, 월급은 40만원밖에 안 됐다. 군 입대 때문에 3년간만 일하고 그만뒀다. 제대하고 나서는 고향인 전라도로 내려가 건설 현장을 떠돌아다녔다. 일용직 노동자였지만, 용접 자격증이 있어 그럭저럭 벌이는 쏠쏠했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에 몸이 축났다. 이른바 ‘오야지’(팀장)라고 불리는 1인 도급업자에게 재하도급을 받는 식으로 일하다보니 임금 체불도 잦았다.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건설 현장을 떠난 오씨는 지난해 서울시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을 청소하는 용역업체에 취직했다. 서울시가 버스정류장 시설물 설치·관리를 맡긴 JC데코라는 용역업체의 2차 하청업체다. 그런데 오씨가 소속된 업체가 JC데코와 계약이 해지되면서, 그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24명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오씨는 지난 2월9일부터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하고, 원청인 서울시 쪽에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매달 155만원을 받던 월급마저 끊기면, 오씨는 앞이 캄캄하다. 선배에게 신용카드를 잘못 빌려줬다가 떠안은 빚 3천만원을 갚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오씨는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는 기약이 없고, 비정규직의 현실은 절망스럽다.

간접고용 비정규직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증명돼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일수록 스스로 ‘덫’을 풀고 나갈 가능성은 낮아진다. 설문조사 응답을 보면, 기간제 노동자로 시작한 100명 가운데 무기계약직이 된 사람은 28.1명뿐이었다. 52.6명은 그대로 기간제로 머물렀다. 기간제법(비정규직법) 시행 이후에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 뒤 해고돼 다른 기간제로 옮겨간 비정규직이 제법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나마 직접고용된 비정규직(기간제)이었다가, 파견·용역, 사내하청 등 근무조건이 더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사람도 18.7명이나 됐다.

장지연 박사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넘어가는 가교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건, 굳이 계량분석을 하지 않아도 모두 인정하는 현실이 됐다. 다만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의 이동 경로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등 규모 추정이 쉽사리 안 돼서 계량적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라는 가설은, 간접고용 비정규직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증명됐다. 설문 응답자 1017명 가운데 첫 일자리가 파견·용역,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고 답한 비중은 27.9%였다. 파견·용역 비정규직은 100명 중 88.3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100명 중 82.8명이 첫 일자리였던 간접고용 노동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표3 참조).

이세용(37)씨는 직장 5곳을 옮겼다. 2005년 대학 졸업 뒤 처음 취업한 곳은 정보기술(IT) 파견업체였다. 그는 파견업체와 1~2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는, 대기업에 전산업무 담당자로 파견을 나갔다. 파견된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가운데 비정규직은 달랑 이씨 혼자였다. 책상을 맞대고 앉아 있지만, 옆자리 직원과는 ‘동료’가 아니었다. 상여금·휴가 등 대기업 정규직들과는 뭐든 달랐다. 회식할 때도 왠지 눈치가 보여 쉽사리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이방인처럼 일했다. 다른 파견업체로 옮겨가서 다른 대기업 사무실로 파견을 나갔지만, 겉도는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월 120만원을 받으면서, 차별을 꾹 참고 있기가 괴로웠다.

세 번째 직장부터 이씨는 업종을 바꿨다. 그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와 탑승교를 잇는 ‘브리지’ 업무를 담당한다. 월급은 190만원으로 올랐지만, 그는 자신의 ‘계급’이 올라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는 인천공항공사에서 탑승교 운영을 따낸 외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그동안 그가 속한 하청업체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2~3년마다 업체가 바뀔 때면, 행여나 고용 승계가 안 되면 어쩌나, 임금이 줄어들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와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200명도 비슷하다. 이씨는 ‘브리지’를 잇지만, 정작 정규직으로 옮겨갈 ‘가교’(다리)가 자신 앞에 놓이리란 기대는 접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에 태어날 아이도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여긴다. 그는 지난해 결혼한 새신랑이다. 그가 생각하는 비정규직이란 “현대사회의 계급 사다리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현대판 노예’”이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아예 무너뜨리려는 정부

이씨와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덫’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요인은 무엇일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설문에 응답한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에게 성별·학력·연령·업종 등의 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로짓’ 모형으로 분석해봤더니, 학력이 낮은 남성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30명 이상의 중대형 사업장일수록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첫 일자리를 간접고용 비정규직에서 시작한 경우, 성별·학력 등 다른 영향 요인을 모두 통제한 상태에서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머물 가능성이 83.2%나 됐다(표2 참조).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안에서도 한번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직접고용조차 안 되고 계속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심각하다는 데는 정부나 경영계, 노동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해법은 다르다. 정부는 비정규직에게 디딤돌을 놓아 정규직으로 올려보내는 대신, 사다리를 무너뜨려서 정규직을 아래로 쉽게 끌어내릴 수 있게 하려 한다. 해고 기준 완화, 파견업 확대가 그 방향이다. 기업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꾸 노동력 거래를 외부로만 돌리려 한다. 이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산으로 나타난다. 그럴수록 기업 내부의 숙련도는 점점 낮아진다. 비정규직 일자리만 회전문처럼 뱅뱅 맴도는 저임금·비숙련 노동자들의 증가가 과연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지금 ‘덫’에 걸린 건 비정규직 개개인만이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 전체가 거대한 함정에 빠져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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