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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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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와 다수의 편 ‘기울어진 저울’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 6년간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 112건 분석…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에 ‘면죄부’ 주고
철도노조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다수의견 추종하고 소수의견 내도 보수화 뚜렷
등록 2015-02-08 03:12 수정 2020-05-03 00:54

이 지난 6년간(2009년 2월~2015년 1월) 신영철(61·사법연수원 8기) 대법관이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해보니, 그는 ‘다수파 추종자’였다. 반대·별개·보충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었고, 가끔 내놓을 때도 보수화 경향이 도드라졌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대법원장 포함)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4명씩 3개의 소부로 진행하는 사건 중에서 합의가 안 되거나 주심 대법관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전원합의체가 열린다. 전원합의체 사건은 연평균 20건 정도다.

노동자보다 사용자, 개인보다 국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신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 112건에 참여해 반대의견을 17차례(15.2%), 별개·보충 의견을 7차례(6.3%) 내놓았다. 다수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경우가 21.5%에 그친 것이다.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한 전체 대법관 평균인 23.2%(반대의견 13%, 별개·보충 의견 10.2%)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참여정부 때 임명한 대법관 그룹(김황식·박시환·김지형·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이들이 전원합의체 사건 중 반대·별개·보충 의견을 개진한 경우가 평균 33.6%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반대의견을 많이 내놓은 2014년(42.8%)을 제외하면 신 대법관은 항상 다수의견에 서는 대법원장과 다를 바 없었다. 2009~2013년 신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10.4%, 별개·보충 의견은 5.2%였다. 전원합의체 판결 10건 중 9건에서 신 대법관이 다수의견을 선택한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보수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진보적인 다수의견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보수적인 다수의견은 더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재판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신영철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보수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진보적인 다수의견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보수적인 다수의견은 더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재판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다수의견을 보면, 신 대법관의 저울은 노동자보다 사용자, 개인보다 국가에 기울어져 있었다. 신 대법관이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나온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판결을 보자.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허태학·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현 부회장)에게 세금 없이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에버랜드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이재용씨 등 4명에게 배정한 것은 주주배정 방식에 의한 것으로 전환가액이 시가보다 낮더라도 이사로서 임무를 위배한 것이 아니다.” 세금을 거의 물지 않으면서 회사 가치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김영란·박시환·이홍훈·김능환·전수안 대법관이 “제3자 배정 방식”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역주행하는 과거사 판결에도 동승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신 대법관은 친기업 성향을 드러냈다. 2013년 9월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신 대법관은 “임금이란 노사 자율로 결정하는 게 원칙인데 상여금이 통상임금인지 여부를 노사 자율로 맡기면 문제되느냐”고 물었다. 이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힘의 불균형’을 왜곡하는 전형적인 기업 쪽 논리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고영한 대법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소급 적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기업 경영 현실’과 ‘관행’ 등을 앞세워 사실상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신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내어 “다수의견은 타당성 있는 논리적 뒷받침 없이 단순히 원고(근로자)가 피고(사용자)로부터 연·월차 수당과 퇴직금을 더 받아가는 걸 용인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 대법관은 파업한 노동자에게도 가혹했다. 헌법 제33조는 파업이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명시하지만, 현실에서 파업은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 때문이다. 1991년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그 흐름은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까지 이어졌다. 다수의견은 2006년 2월 철도노조 총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면서도 그 적용 기준을 좁혔다.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을 때”라고 말이다. ‘파업=업무방해’라는 공식이 20년 만에 깨진 것이다. 신 대법관은 이때 다수의견에 섰다. 그러나 2014년 8월 견해를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009년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심대한 혼란 또는 막대한 손해를 초래할 ‘위험’만 있어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고 그 적용 기준을 다시 넓혔다.

역주행하는 대법원의 과거사 판결에도 신 대법관은 항상 뜻을 함께했다. 2013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국가의 과거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가능 기간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뒤 ‘3년’에서 ‘6개월’로 대폭 단축해버렸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전남 진도에서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뒤 사망한 박아무개·곽아무개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다. 또 다수의견은 “과거사위 조사보고서가 유력한 증거자료는 맞지만 심사도 하지 않고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반드시 인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과거사위 결정에 흠집을 냈다. 이후 1·2심에서 승소했던 고문·학살 피해자들이 대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최근 한발 더 역행했다. 지난 1월22일 고문·가혹 행위 피해자라도 민주화운동 보상 생활지원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의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었던 오종상씨도 결국 국가배상금은 받지 못할 상황이다.

보수의 ‘획일성’을 연장하는 역할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반드시 필요한지 궁금해진다. 카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저서 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워싱턴DC의 항소법원에서 이뤄진 판결을 연구한 결과, 비슷한 성향의 판사로 이뤄진 재판부는 극단적인 의견을 취할 확률이 커졌다. 서로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극단적인 견해로 치달은 탓이다. 반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판사들이 모인 재판부에선 이견이 제시돼 정치적 영향을 받을 확률이 낮아지고 판결이 좀더 중도적이 된다.” 선스타인 교수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이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보수와 진보의 ‘다양성’보다는 보수의 ‘획일성’을 연장하는 역할을 했다. 진보적인 다수의견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보수적인 다수의견은 더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종교계 학교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2010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영란 대법관) 판결을 보자.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다 퇴학당한 강의석씨가 자신이 다녔던 서울 대광고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다수의견은 학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광고는 교육부 고시와 달리 대체 과목을 개설하지 않았고 학생의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는 등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 비춰볼 때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해 위법하다.” 신 대법관은 학교에 관대했다.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강제한 종교 교육이 위법한 것인데, 대광고의 종교 교육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또 “학생이 종교 교육을 거부할 때는 학생 본인의 의사표현만이 아니라 부모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08년 MBC 이 방송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보도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가 낸 정정·반론 보도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011년 9월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깼다. 농식품부는 보도에 대해 7가지 내용이 허위 사실이라고 정정·반론을 청구했고 원심은 이 가운데 3가지를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부분만 허위 사실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의견 표명이라 정정보도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을 나무랐다. “‘이번(미국산 쇠고기) 협상으로 앞으로는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과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라는 보도도 정정해야 한다.” 2012년 4월 미국에서 광우병 사례가 발생했을 때 우리 정부는 실제로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
26살 베트남 여성이 한국인 남편의 동의 없이 생후 13개월 된 자녀를 베트남 친정으로 데려갔다가 기소(국외이송약취죄 등)된 사건에서도 신 대법관은 ‘보수성’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2013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상대방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았지만 폭행, 협박 또는 불법적인 힘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행위가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신 대법관은 유죄라고 했다. “가정법원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자녀를 국외로 데리고 나가 남편의 친권 행사를 곤란하게 한 것은 ‘불법적인 힘’에 해당한다. 또 자녀의 이익에 어긋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석기 내란 음모·선동 사건 ‘엄벌’ 강조


최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선동 사건에서도 ‘엄벌’을 강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월22일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는 유죄,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확정했다. 2013년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130명이 모여 이 전 의원의 발언에 호응하며 국가시설 파괴 등을 논의했지만 토론을 넘어 내란을 실행하겠다는 확정적 의사가 합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전 의원은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인정하지 않은 내란음모죄도 물어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신 대법관은 주장했다. “내란을 실행하자는 합의의 구체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내란의 실행 행위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면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 내란음모죄가 성립한다.”
신영철 대법관 후임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은 검찰 출신 박상옥(59·사법연수원 11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을 임명 제청했다. 박 원장이 취임하면 2012년 7월 안대희 대법관 퇴임 이후 맥이 끊긴 검찰 출신 대법관이 부활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천다민 인턴기자 abeai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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