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장님, 희망고문을 그만두세요

직권해제 조항 등 현행법 적극 활용하면 가능한 뉴타운 출구전략,

건설사를 ‘동등하게’ 걱정하면서 인간다운 삶 외면한 박 시장이 문제
등록 2015-01-10 14:33 수정 2020-05-03 04:27
박원순 서울시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 사회에서, 적어도 서울시민의 경제적 삶은 뉴타운 전과 후로 나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적 현안에도 불구하고 각종 선거에서 뉴타운·재개발 의제는 늘 중대 이슈로 등장해왔다. 서울에 사는 사람치고 지난 10년간 뉴타운 재개발과 관련된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

뉴타운 지역의 세입자는 애초부터 집수리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집주인의 일방 고지에 의해 퇴거한다는 약정을 하고서야 집을 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자기 집이 있는데도 전·월세를 전전한다. 전세금을 끼고도 은행빚을 얻어 사들인 집은 다음 전세 세입자의 전세금이 아니면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 아예 사업 속도보다 한발 앞서 실시한 이주 탓에 매달 50만~60만원의 이주비 이자를 내는 사람도 있다. 환상적인 조감도 속의 아파트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업 초기 뉴타운·재개발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살아온 터전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함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데 대한 절망감을 토로했다.

멀어져가는 환상 속의 아파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던 길음뉴타운은 원주민 재정착률 17%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때만 해도 뉴타운·재개발 문제는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와 개발이익에 눈먼 집주인 간의 사적 관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실제로 세입자에 대한 제도적 대책은 허술했고, 사업시행 공고일과 이주 시점을 기준으로 ‘보상’과 ‘미보상’이 나뉘는 일은 마치 코미디 같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갈등까지 드러났다. 사업성이 바닥을 치는데도 서울시나 자치구가 지정한 뉴타운·재개발 지역에 대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이 많게는 40%에 육박하는 기반시설 기부채납 비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업계획 변경이 이루어졌다. 서울시나 자치구들은 별다른 검토 없이 용적률을 상한선까지 올려주고 인센티브까지 부여하는 계획 변경안을 수용해주었다. 그 덕분에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도 별다른 공공투자 없이 개발이익에 편승해 공공시설을 확보하려 했던 ‘무임승차’ 논란에서 비껴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건설비용은 가파르게 올랐다. 2005년 조합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양천구 신정 2-1구역의 경우, 그해 10월에 삼성물산과 가계약을 맺었는데 이때 건설비용이 1547억원이었다. 2009년 추진위가 정식 조합으로 설립하면서 본계약을 맺을 때는 비용이 2695억원으로 불어났다. 비용은 불과 1년 뒤인 2010년 사업시행 인가 때 3417억원으로 뛰었고, 2012년 사업성 평가설명회에선 4450억원으로 올랐다. 실제 주민들이 사는 집은 10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낡았고, 사업은 서류 위에서만 진행됐는데도 7년 새 2903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리 속에서, 계약관계의 ‘갑’인 주민들이 사실은 계약상 ‘을’인 건설사에 상투가 잡혀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성 검증을 핵심으로 했던 박원순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은 별다른 실효도 없이 막을 내렸다. 추진 주체가 없는 구역에서는 ‘사업 해제’라는 소기의 성과가 있었지만 정작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조합 설립 이후’의 사업지는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둔 것이다. 50% 이상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를 통해 조합 해산을 신청하도록 한 현행법의 한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탓이 크다. 이미 부재지주(실거주자가 아닌 소유자)의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사업 구역에서 권한도 실체도 없는 주민들이 50% 이상의 해산 동의서를 징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조합원 명부조차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30~40%의 해산 동의서를 모으고도 발을 동동 구르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정비구역 해제, 지자체장 직권으로 가능

같은 기간 경기도에선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조의 3에 보장된 직권해제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해당 법령에는 ‘정비사업의 시행에 따른 토지 등 소유자의 과도한 부담이 예상되는 경우’나 ‘정비예정구역 또는 정비구역의 추진 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시도지사가 정비구역 등의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는 이를 준용해 ‘경기도 정비구역 등의 해제 기준’을 마련했다. 2014년 6월에는 25%의 토지 등 소유자가 구역 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이뿐만 아니라 ‘경기도 추정분담금 시스템에 의한 정비구역 내 비례율(수익성 지표 중 하나)이 0.8 이하이거나 추정분담금이 일반분양금의 30% 이상일 경우’에는 아예 도지사가 직권으로 해제하도록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은 별다른 실효도 없이 막을 내렸다. 추진 주체가 없는 구역에서는 ‘사업 해제’라는 소기의 성과가 있었지만 정작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조합 설립 이후’의 사업지는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둔 것이다.


서울시에서도 이런 기준이 적용됐다면 추가로 해제될 지역이 많았을 것이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뉴타운·재개발 분쟁도 다른 국면을 맞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 11월, 성북구 돈암·정릉 재개발 지역의 주민이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서울시청 앞 조형물을 차량으로 부순 사건이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시민들의 말을 더욱 잘 듣겠다며 상징적으로 설치한 귀 모양의 ‘여보세요’라는 제목의 조형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13년 12월에는 당시 민주당 소속인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이 재개발 지역 철거로 돈을 번 다원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철거왕’이라 불린 다원그룹의 계열사는 철거업체 계약이 진행된 100개 사업구역 중 25곳이나 수주하고 있었고 사업이 끝난 곳까지 포함하면 40곳이나 수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의 국회도, 책임져야 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외면하는 가운데, 뉴타운·재개발 지역 주민들은 잘 알지 못했던 진보정당을 찾아 도움을 구하고 있다. 노동당 서울시당은 거의 매년 두세 차례 관련 기자회견과 집회를 지역주민과 함께 열고 있다. 그때마다 서울시로부터 공식적인 답변과 비공식적인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답변의 대부분은 ‘권한’이 없다는 내용이었고 비공식적 해명의 대부분은 ‘시장의 의지가 없다’는 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박 시장의 서울시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들과 혹여 이 사업이 중단되면 피해를 입게 될 건설사들을 ‘동등하게’ 걱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업을 계속 추진하자’는 주민들의 의견 역시 간과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시장의 의지가 없다’는 비공식적 해명

그런데도 주민들은 집회나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박원순 시장님, 믿습니다”와 “박원순 시장님, 힘내세요”와 같은 구호를 외친다. 시청 집무실에 앉아 있는 박 시장과 공무원들이 회의실에서 마주치는 건설업자나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조언’을 넘어, 구체적인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이런 목소리를 듣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주민들의 믿음이 서글프다.

뉴타운·재개발은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밖에 없는 이들이 보수 정권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소리 없는 박수를 치도록 만들었고, 깡통이 되어버린 자산에 부과되는 세금을 싫어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혁신을 기치로 등장한 박원순 시장이 취약한 지지층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새누리당의 경기도만큼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짐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뉴타운·재개발사업을 이대로 둔다면 박 시장이 추진하는 ‘공유 서울’이나 ‘도시 재생’의 구호는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뉴타운·재개발이 진행되는 서울에서 만들어질 ‘마을’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