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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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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4일의 복직투쟁,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해직기자 3명에 해고 확정판결 내린 대법원… 언론 공정성보다
회사 경영권에 무게 둔 법원의 판단에 조승호 기자 “대한민국 언론을 ‘기
레기’로 만들려는 시도”
등록 2014-12-06 16:02 수정 2020-05-03 04:27
해직기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지난 11월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조승호 기자가 후배 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6명의 해직기자 가운데 조 기자를 비롯한 3명에 대해 사 쪽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해직기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지난 11월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조승호 기자가 후배 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6명의 해직기자 가운데 조 기자를 비롯한 3명에 대해 사 쪽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이도 있다. “괜찮아.” “힘내.” 후배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는 이는 조승호(45) 기자였다. 지난 11월27일 아침, 그는 대법원으로부터 “회사가 당신을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는 최종 판결을 들었다. 노종면·현덕수, 2명의 동료도 함께였다. 침통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의 가슴팍에서 금색 배지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YTN, 조승호 기자가 지난 6년간 잊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최대 규모의 언론인 해직 사태

YTN이 아닌 다른 이름을 고민한 적이 없다. 1994년 4월 을 그만두고, 창사를 준비하던 YTN에 합류한 뒤 조승호 기자는 14년을 사회부·국제부·편집부·정치부에서 일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올해 그는 입사 2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조촐하게라도 가졌을 것이다. 6년 전 ‘MB맨’ 구본홍씨가 YTN을 찾지 않았다면 말이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캠프 언론특보를 맡았던 구씨를 YTN의 새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권에 장악된 언론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동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시민들이 YTN 빌딩 앞을 지나며 ‘YTN 불 꺼라’라고 외치는 장면이에요. 그 동영상을 보고 조합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노조원들의 반발 속에서도 사 쪽은 기습 주주총회를 열어 구씨의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주주이기도 한 조합원들의 발언은 외부 용역직원들이 막았다. 민주적 절차가 엉망이 된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새 사장의 출근을 몸으로 막아서야 했다. ‘정치중립 공정방송’을 외치는 가운데, 당시 노조 공정방송점검단장이던 조승호 기자를 비롯해 노종면 노조위원장, 현덕수·우장균 전 노조위원장, 권석재 노조 사무국장, 정유신 노조 편집부장 등 6명의 기자가 해고되고 27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 이후 최대 규모의 언론인 해직 사태였다.

조승호 기자는 자신은 “민주투사도, 노동운동가도 아니고 YTN 기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중파 방송 뉴스는 정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지만 제가 아는 YTN은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던져주던 언론사입니다. 그게 무너지는 걸 볼 수 없었어요.” 해직기자들의 징계무효 소송에서 1심 법원은 그런 기자들의 뜻을 인정했다.

2009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박기주)는 “뉴스 전문 방송사인 YTN은 공정보도의 원칙을 준수할 책임이 있다. 원고들의 행위는 대표이사가 이명박 대선 후보를 위해 활동했던 경력이 있어 YTN의 공정보도 원칙이나 정치적 중립이 저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돼, 공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동기가 포함된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며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1년 넘게 끌어온 YTN 해직 사태가 마침표를 찍는 듯 보였다.

거짓말처럼 곧 시련이 찾아왔다. 이듬해 7월, 교사 생활을 하던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취미로 마라톤을 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마음고생이 많았지요. 제가 죄인입니다.” 아내가 병석에서 일어나기까지 3개월여 직접 간병을 하고, 초등학생인 세 아이를 돌봤다. 겨우 가족이 제자리를 찾을 때쯤, 절망이 더해졌다. 2011년 4월,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그와 동료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김용빈)는 해직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위해 투쟁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담 정도’에 따라 판단을 달리했다. 투쟁을 주도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에 대해선 해고가 정당하다며 원심을 뒤집었고,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에겐 가담 정도가 낮아 해고는 부당하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방송 제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거나 견제하는 행위까지만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판결이었다. “거의 공황상태였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더는 기자를 하지 말라는 거구나. 내가 그 정도로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싶어서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위축돼서 거의 밖에 나오질 못했어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는데

공정언론에 대한 꿈을 배반당하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3년7개월이 걸렸다. 해고된 날로부터는 2244일이 지났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며칠간은 하루 새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내심 “당연히 해고 무효 판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조 기자를 비롯해 오랜 기자 생활을 해오며 “그래도 사법부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었다. 사상누각인 것은 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

법원은 언론의 공정성보다 회사의 경영권에 무게를 두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1월27일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고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에 대한 해고는 과도하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용자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권리인 경영진 구성권과 경영주의 대표권을 직접 침해했다. 방송의 중립성 등 공적 이익을 도모하려 했던 점을 참작하더라도, 해임이 징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 뒤 조승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의 판사들에게 묻고 싶어요. 대법원장직에 판사 출신의 나경원·황우여 의원 아니면 법조인이라는 이유로 김기춘 실장을 임명한다면 반대하지 않고 환영할 것인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의나 경고에 그친다면 공정언론이 몰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 세월호 사고 이후 아무 비판 없이 정부 발표를 베껴쓴 언론이 ‘기레기’라고 비판받았습니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언론을 기레기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YTN 기자들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판결이 나오자 전국언론노조 YTN지부는 성명을 내어 “갈등 해소와 화합은 법원 판결 등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YTN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해직 사태를 해결할 때 가능할 것”이라며 “판결 이후에도 6명 전원 복직의 당위성은 변함없이 유지되며 노조는 보다 성숙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전원 복직 실현을 통한 회사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승호·노종면·현덕수 기자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 기자는 “기자 생활엔 아쉬움이 없다”고 했다. 그가 다른 해직기자들과 달리, 대안언론을 통해 기자 생활을 이어가지 않고 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으로 일하는 이유다.

YTN의 전성기는 기자로서 그가 누린 전성기였다. 차장급 젊은 기자들이 뉴스팀장을 맡아 직접 함께 일할 팀을 꾸릴 권한을 주고, 취재와 편집에 사 쪽이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던 2008년 이전의 YTN을 떠올릴 때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 인생에 가장 화끈하게 뉴스를 만들던 시절입니다. 모두 신이 나서 일했어요. 권력 고발을 회사가 지원했으면 했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지요. 지금의 YTN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납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데스크와 평기자가 자유롭게 논쟁하던 보도국을 다시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일뿐이다.

YTN을 제대로 된 언론사로 돌려놓는 길

해직기자들의 복직은 YTN을 공정언론, 제대로 된 언론사로 돌려놓는 길의 첫걸음이다. “복직은 단순히 해직기자 3명의 명예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6년 동안 저와 해직기자들, 그리고 YTN 소속 언론인 400명이 걸어온 길이 옳았는지 가리는 역사적 평가가 될 겁니다. 동아투위 해직기자 선배들이 단 하루라도 복직됐으면 한다고 했던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때까지 조 기자는 YTN이라고 새겨진 배지를 결코 가슴에서 떼지 못할 것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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