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퇴근 시간이 10분 늘어나면, 공동체 업무 참여는 10% 떨어진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단언한다. 그는 저서 을 통해, 미국인의 사회 참여 쇠퇴 요인 중 하나로 ‘장거리 출퇴근’을 지목했다. 교외 지역으로 주택단지가 확장되면서, 일터로 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집과 일터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공동체’ 범위는 흐릿해진다. 경기도에 거주하지만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느 공동체에 소속돼 있다고 여길까? 애매하다. 공동체 범위가 분명해야, 주민들의 지역 업무 참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통근 편도 시간이 1시간30분을 넘기는 사람들을 ‘초장거리 출퇴근자’(Extreme Commuter)로 분류한다.
도시로 회귀하는 ‘전문직 젊은 중산층’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시간 차이가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 국내 연구는 드물다. 보통 도시 중심부엔 업무지구가 발달하고, 주변 지역엔 공업지구, 교외엔 주거지역이 형성된다. 전통적으로 저소득층은 시간의 가치를 낮게, 교통비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도심 가까운 저렴한 지역에 거주하고, 고소득층은 교외로 나간다고 보았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견해를 내놓는 연구자들도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중산층이 ‘도시적 삶’을 즐기기 위해 도심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출퇴근 시간이 감소할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위대가 구글 통근버스를 공격한 사건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구글 등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이 위치한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다. 이들 기업은 직원 복지를 위해 통근버스를 운영한다. 고소득 전문직들이 회사 근처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면서 임대료는 더욱 상승했고, 교통체증까지 심해지면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수도권의 경우 기업이 있는 곳은 대부분 역세권으로 주택 가격이 비싼 상황에서 고소득층은 경제적 제약 없이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으나 저소득층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2012년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권지현씨는 2만263명으로부터 수집한 이틀간의 시간일지를 분석한 석사 학위 논문 ‘통근시간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내놓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월평균 개인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집단의 통근시간이 가장 짧았다. 통근시간이 두 번째로 짧은 집단은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이들이었다. 통근시간이 가장 긴 쪽은 월평균 개인 소득이 200만∼300만원인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전문사무관리직 비율은 61.2%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군에서 같은 직종에 종사한다면 대체로 소득이 많을수록 출퇴근 시간이 짧다는 결론이다. 권씨는 “‘지옥철’을 타고 학교에 갈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이러한 시간 역시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복지가 취약한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지난해 미국 스토니브룩대학 조슈아 존슨 교수 등 연구진은 저소득층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치 참여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양적 시간 차이를 유발하는 노동 시간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출퇴근 시간이 정치적 관심과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출퇴근 시간이 정치적 관심과 참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저해하는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지만, 저소득층에겐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자원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해당 연구를 검토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이은경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서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며 “임금뿐 아니라 주야간 노동, 작업장에서의 위계, 자기결정권, 기본적 복지가 취약한 상황에 놓인 서민들이 자신을 위한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 문헌 (로버트 퍼트넘·2009), ‘통근시간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권지현·2012), ‘출퇴근 시간과 정치참여의 상관관계’(이은경·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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