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벌고, 더 행복한 생활은 어쩌면 흔한 꿈이 되었다. 이런 꿈을 꾸는 이는 많지만 용기를 내서 결단을 하는 이는 아직 많지 않다. 희망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무려 서울에서 마을과 일감을 연결하는 ‘50만원 프로젝트’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 시골로 내려가 먹거리를 직접 가꾸고 채취하며 사는 가족도 있다. 이렇게 이탈한 자들은 뜻밖의 즐거움을 만났다. “평균대 위를 걷는 듯한” 불안도 있지만, 희망을 나누는 동료가 있어서 이들은 오늘을 산다. 별일 없이 산다, 아니 행복하게 산다. 여기에 무언가 하나를 끊으니 많은 것이 달라진 경험을 한 이들도 있다. 몸으로 겪고, 손으로 발견한 희망을 보았다. _편집자
맛집 검증단이 맛집을 검증하듯 그곳을 찾아갔다. 지난 8월26일, 오늘공작소가 운영하는 ‘이글루 망원’을 지예(25·신지예)씨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정말로 50만원 벌어서 즐겁게 사나요?” “서울에서 그게 가능해요?” 여름의 이글루에서 뜨거운 질문을 퍼부었다. 마침 ‘50만원 부족’들이 지난 주말의 망원정 축제를 마치고 쉬는 날이었다.
“후지무라 선생을 만나고 사기꾼 냄새가 난다, 그런데 너무 매력적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오늘공작소 청년 6~7명이 진행하는 ‘50만원 프로젝트’는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북센스 펴냄)에서 영감을 얻었다. 발명가인 후지무라 선생은 한 달에 이틀 일하고 3만엔을 버는 비즈니스를 개발해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라고 청년들에게 권한다. 사업의 아이템은 사회에 유익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지역에 기반해 기업이 하지 않는 일을 만드는 원칙도 있다. “정말로 가능해?” 의문이 드는데, ‘이글루 망원’을 운영하는 오늘공작소 청년들은 정말로 그렇게 산단다. 는 농촌에 가서 일감을 찾으라 하지만, 이들은 서울에서 그것을 실험한다. 50만원은 이들이 통신비·교통비·식비 등의 항목을 에 설명된 생활비 산출 방식에 대입해 얻은 최저선이다.
[이글루는 움직인다]“이글루는 이누이트족의 언어로 ‘집’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누이트족에게 ‘집’은 누군가의 것이 아닌 함께 모여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공유지입니다.” 서울 망원동 한켠에 위치한 공간이 ‘이글루’인 이유다. 지금 사회는 청년들에게 사시사철 먹고살기 힘든 동지섣달 같다. 그러나 아무리 극한 환경에 처했더라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겠다는 생각을 담아 ‘오늘공작소’ 이름도 지었다.
지예씨와 마주 앉은 책상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원래는 학원이었어요. 방마다 달린 문짝을 떼서 책상을 만들었죠.” 이글루가 입주해 바꾼 공간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바퀴가 달린 책상은 움직인다. 여기는 점심이면 한 끼를 4천원에 제공하는 ‘오늘의 식당’이 되고, 저녁이면 인문학 강의를 듣는 강연장이 되고, 주말이면 알루미늄 파이프로 자전거를 만드는 작업장이 된다.
오늘공작소 청년 6~7명이 진행하는 ‘50만원 프로젝트’는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에서 영감을 얻었다. 발명가인 후지무라 선생은 한 달에 이틀 일하고 3만엔을 버는 비즈니스를 개발해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라고 청년들에게 권한다.
“겨울 동안 이들은 이글루에서 따뜻한 수프를 먹으며 사냥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하고, 걱정거리를 털어놓기도 하며 서로 다른 부족들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런 이누이트족 생존법처럼, 청년들은 모여 이겨낼 방법을 찾았다. 지예씨는 “공간이 없다면, 동료도 없고 사건도 안 생긴다”고 말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직장생활을 벗어나 여기선 일과 삶이 하나가 된다.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이들이 한 달에 25만원씩 갹출해 공간을 만든 이유다. 공유지의 자랑은 샤워실과 다락방. 부엌도 있으니 여기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사람도 있다.
2012년, 공부모임을 시작했다. 등을 읽었다. 지난해 각자 50만원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함께 모여서 모색할 공간이 절실했다. 홍익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 성산동과 합정동에서 이주한 어르신들, 다양한 거주 피난민이 원주민과 어울린 망원동에 공간을 마련했다. 동료와 함께하니 생활비도 절약되고 일감도 늘어났다. 지난 주말, 이들은 ‘망원정 축제’를 열었다. 오늘공작소 리사(24·김다빈)씨가 총연출을 맡았다. 리사씨는 “이글루는 상상하는 것을 실현하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하면 동료들이 응답했다. 리사씨는 “‘우리 미드 볼까?’ 하면 바로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이글루는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는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공유지는 리사의 자립에 디딤돌이 됐다.
[이글루는 요리한다]이글루는 점심시간에 ‘오늘의 식당’으로 변한다. 요리를 ‘50만원 일감’으로 삼는 유선(29·고유선)씨가 식당을 연다. 망원동에 사는 1인 거주자를 위한 소셜다이닝으로 기획됐지만, 주민들도 오면서 마을식탁이 됐다. 오늘공작소 동료들도 함께한다. 영어를 잘하는 리사씨는 유선씨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밥을 먹고, 지예씨는 유선씨의 서류 정리를 도와주고 밥값을 대신한다. 동네에 입소문이 나면서 행사에 음식을 제공하는 유선씨의 일을 나인씨가 만든 카고 자전거를 이용해 모두가 돕는다. 이렇게 화폐를 대신한 일감 나누기로 생활비를 줄인다. 자전거를 타니까 교통비도 절약된다. 방식으로 설명하면, 자급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동료의 존재는 필수다. 유선씨는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려면 50만원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시시콜콜 설명해야 하지만, 여기선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눌 동료가 있다”고 말했다. 지예씨는 “힐링될 친구는 밖에도 있지만, 함께 현실을 돌파할 동료는 찾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지예씨는 이글루를 운영하고 어린이 교육을 하는 두 가지 일감을 통해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번다. 50만원 비즈니스는 50만원만 벌자는 취지가 아니다. 한 가지 일감에서 5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나면 되도록 일감을 동료와 나눈다. 하지만 두세 가지 일감을 겸업해 100만원, 150만원을 벌어도 좋다. 적당히 일하자는 것이지, 50만원 이상을 벌었다고 반칙으로 여기진 않는 것이다. 지예씨는 “회사에 기대는 삶에서 벗어나 그 순간 재미있는 일을 하니 일시적 힐링이 아니라 태연한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글루는 노동한다]“너희가 왜 자전거를 만들어?” 누구는 그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질문한다. “너희가 왜 강연을 주최해?” 이글루에서는 김규항씨의 ‘혁명과 성찰, 그리고 해방’,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등의 강연이 열렸다. 인문학 강의 이름은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방법’. 학교와 집, 직장과 집만 오가는 삶에서 벗어나자고 지은 이름이다.
인문학에 바탕한 기술을 배운다. 기술을 함께 익히는 워크숍이 열리는데, 나인씨는 자전거 앞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카고 바이크’ 워크숍을 이끈다. 알루미늄 파이프를 이어서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다. 번역회사를 다녔던 나인씨는 “자전거는 지구에 가하는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교통수단인 동시에 오락거리”라며 “거기에 화물수송 기능만 더하면 도시를 구원할 잠재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이렇게 기술과 인문학은 따로가 아니다. 나인씨는 “기술이면 기술, 인문학이면 인문학으로 파편화된 사고에 젖어서 그것이 하나의 구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익힌 적정기술로 이들은 50만원 일감을 찾고, 장인의 미래를 꿈꾼다. 최근엔 ‘도시거실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다. 지예씨는 ‘스케치업’이라는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배우는 워크숍을 하는데 이것을 곧 입주할 집에 활용한다.
‘치워야 할 곳’ 그들에겐 다른 희망“아이고, 오시는교. 저 뒤에 방 얻었나?” 지난 8월26일, 이글루 망원 옆에 위치한 부흥주택 골목에서 한 할머니가 지예씨를 반기며 물었다. 지예씨가 “그렇다”고 하자 할머니는 “아이고, 잘했어! 젊은 사람이 있어야 된다카이, 잘했고만 잘했어”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아저씨도 지예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기 짱’이네요” 하자 그는 “가끔 밥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고 말했다. 부흥주택은 지은 지 40년이 넘었다. 입주자의 다수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밖에선 여기를 ‘치워야 할 곳’으로 여기지만, 지예씨는 다른 희망을 만들고 싶다. 그는 “월세가 10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며 “청년들이 함께 이곳에 들어가 도시 재생 모델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9월에 들어갈 부흥주택을 어떻게 꾸밀지를 듣고 이글루로 돌아왔다. 문이 열린 이글루를 찾은 대학생 윤채영씨는 “사부작사부작 놀러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글루는 마을 ‘청년정’ 구실도 한다. 인근 대학에 다니는 채영씨도 부흥주택에 들어갈 생각이다. 그는 “먼저 살던 사람이 멀쩡한 타자기를 두고 갔다”며 웃었다.
채영씨에게 “50만원 비즈니스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가지 일감으로 50만원이나 벌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 세 개를 하지만 50만원을 벌기는 어렵다. “‘한 달에 50만원밖에 안 쓴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글루 같은 공간이 있고, 자전거를 타고 밥을 나누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 “그래도 50만원은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는데, 적당히 벌고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청년의 현실을 듣고 뜨끔했다. 채영씨는 “용돈을 받는 20대는 죄책감을 느낀다”며 “밥 한 끼를 사먹어도 세종대왕 대신 부모 얼굴이 보인다”고 전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오래 곱씹게 됐다. “저는 20대가 취직을 꿈꿔야 하나, 솔직히 모르겠어요. 취직을 꿈꾸는 게 오히려 허황된 것 같아요.”
플리마켓·찾아가는 공연·푸드마켓…8월28일, 다시 찾아간 이글루 망원에 오늘공작소 동료가 모두 모였다. 리사씨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았던 경험을 살려 성미산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그가 총감독해 8월23일 망원동 일대에서 열린 ‘망원정 축제’에는 주민 500여 명이 참여했다. 동네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인 ‘플리마켓’, 인디 뮤지션이 나온 ‘찾아가는 공연’, 지역 주민이 참여한 ‘푸드마켓’ 등이 열렸다. 리사씨는 축제 사진을 보여주며 “딱지를 팔았던 동네 청소년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며 “‘언제 다시 하느냐’고 자꾸 전화한다”고 말했다. 통역·기획을 해온 리사씨는 “언제나 중간에서 문화를 보는 역할을 해왔다”며 “프리랜서로 일하면 주어지는 일을 좇게 되지만, 여기선 내가 기획하고 나만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망원동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수집하고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객 대상으로 망원동 무료 투어를 진행하고 ‘팁’으로 생계를 꾸리는 ‘50만원 일감’도 구상하고 있다.
유선씨는 오늘의 식당을 열고, 망원시장에서 닭강정을 팔았다. 이렇게 서너 개 일감으로 안정된 수입을 올린다. 그는 “호텔 주방장이 되려는 꿈을 존중하지만, 나는 동네에서 요리하며 느끼는 충만함이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상상하지 말라”고 말했다. “친구들이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고 부러워해요. 하지만 ‘너도 해봐’ 하면 ‘나는 못해’ 하죠. 누구에게나 50만원 일감은 있어요. 너무 상상력이 풍부해서 시도를 못하는 거예요. ‘내가 뭘 감수해야 하지, 내가 뒤처지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죠.”
대량생산·소비 벗어난 일감 만들기유일한 40대인 나인씨는 번역회사를 다녔다. 플랜트 운영 매뉴얼 같은 기술문서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직장생활이 너무 좋아서”라고 말했다. “앞으로 무난히 계속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두려웠다”는 것이다. 회사를 나와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서 삶의 전환을 모색하는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는 “사실 우리가 망원동에서 하는 일은 민과 관을 잇는 중간 조직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마을과 일을 잇는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시간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줄었다. 그럼에도 그는 “뜻밖의 사람들과 이웃이 되고, 이들을 통해 몰랐던 도시 생활의 이야기를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고 전했다.
역시 회사를 다녔던 이지(29·이지원)씨는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오늘공작소를 만났다. 그는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놀잇감 개발을 통해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8월부터 함께한 그처럼 50만원 일감을 찾아 이글루로 오는 청년들이 있다.
[이글루는 미완성이다]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을 벗어나 일감을 개발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그 적정기술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이글루를 시작한 지 이제 6개월, 내년엔 ‘전환학교’를 열려고 한다. 지금보다 심도 있는 기술 워크숍을 열어 50만원 일감을 찾는 학교다. 여기서 단순한 일감을 넘어 삶의 양식을 바꾸는 전환을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다. 나인씨는 오늘공작소의 시도를 “언젠가 터질 예정된 공포를 극복하고 돌파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인씨는 낭만을 경계했다. “사람들이 50만원 프로젝트 얘기를 하면 ‘멋지게 살기 위한 거군요’라고 해요. 이건 멋지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예요.”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50만원 프로젝트’는 적극적인 모색이다. 그러나 ‘얼마나 하겠어’라는 시선도 있다. 지예씨는 “어떤 단체든 생과 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인씨는 “50만원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겪었는지가 각자의 몸에 남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됩니다’. 이들이 공부한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글씨였다. 2030년까지 탈핵이 가능하다는 녹색당의 홍보물 표지였는데, 다른 삶의 양식을 자발적으로 증명하기에 나선 청년들의 시도와 겹쳐 보였다. 오래된 미래를 먼저 발견한 청년들, 스스로 먼저 온 미래가 될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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