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원로·중진 의원들이 지난 8월1일 박영선 원내대표와 긴급히 만났다. 7·30 재·보궐 선거 패배와 지도부 총사퇴로 만신창이가 된 당의 기둥을 어떻게 일으켜세울지 논하는 자리였다. 한 참석자는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됐나?”라며 한숨을 토했다고 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묘책이 없기에 더 큰 걱정과 두려움 </font></font>7월30일 밤 11시10분께. “929표 차로 끝났네요.” 한 당원의 말이 힘없이 흩어졌다. 10분 뒤 침울한 공기를 가르며 노회찬 후보가 선거 사무소로 들어왔다. 몸을 뒤로 돌려 입을 막고 우는 당원들이 보였다. “저는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이기고 싶어 했던 국민은 패배하지….” 노 후보의 ‘낙선의 변’을 듣던 다른 당원이 기자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 당은 어떡하죠? 답이 잘 안 보이네요.”
새누리당은 선거 분위기가 살아날 무렵부터 ①새정치민주연합의 권은희 후보 공천과 재산 축소 신고 논란 집중 공세 ②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민원법인 듯 여론 유도를 통한 지지층 결집 ③여당의 의회 과반수 확보를 통한 경제·민생 살리기 쟁점화의 단계를 거치며 재보선 완승을 거뒀다. 선거 다음날 파안대소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진이 여러 신문지면에 깔렸다.
야권은 이번 패배를 ‘2014년 7월30일 선거’의 단발적 패배로 보지 않는다. 무력한 제1야당, 지리멸렬한 진보정당들이 현 상태를 유지했다간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권 창출이 어렵다고 우려한다. 걱정과 두려움이란, 상대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고 상대를 쓰러뜨릴 묘책은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서 커지는 법이다. 야권은 지금부터 2016년 4월 총선까지 선거가 없는 ‘1년8개월’이 와신상담할 기회라고 본다. 정확히는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2015년 말까지 야권 내부 혁신, 야권 재구성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면서 격랑에 빠져들었다. 이는 곧 신임 지도부 선출과 당 체질을 바꿀 새 기회를 갖게 됐다는 의미다. 새정치연합은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한다. 옛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의 통합 이후 대의원과 지역위원장이 정비되지 않은 탓에, 이들을 새롭게 선임하고 연말에 정기국회까지 끝난 이후에나 전당대회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한길·안철수 이후 체제는 내년 초에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임기 2년의 차기 당권을 잡으면 2016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쥐기 때문에 이른바 ‘누구 사람’이란 계파들의 신경전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를 한 차례 지내 옛 주류·당권파로 불리는 정세균 의원, 원내대표를 지냈던 박지원 의원, ‘구 민주계’의 틀에서 벗어나 확장성을 꾀하는 추미애 의원, 486과 고 김근태계의 이인영·신계륜 의원, 당과 호남정치의 혁신을 주장하는 천정배 전 의원 등의 전대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 여부도 주목받는다. 당에선 문 의원이 대권 주자를 다시 꿈꾼다면 대표에 도전해 당 변화의 중책을 감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당 대표로서 계파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 흠집을 당하면 대권 가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대 출마 신중론도 존재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강하면서 합리적 리더십</font></font>당 안팎에선 계파 갈등을 최소화하는 안정된 리더십이 구축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여당에 끌려다니지 않는 강한 리더십이면서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비치는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민주적 리더십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야권의 문제는 리더십의 문제인데, 김대중을 끝으로 제왕적 리더십은 끝났지만 민주적 리더십은 구축되지 않고 있다. 밑에서부터 (의견을) 끌어모아 그걸 비전으로 만들어내고, 그 비전을 다시 밑으로 소통해가는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게 되지 않으면 누가 대표가 되든 (계파 갈등·소통의)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내 여러 정파의 다양한 의견 표출은 존중돼야 하지만, 의사결정이 된 뒤엔 ‘리더’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야권의 고질적 계파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내부 상호신뢰의 구조를 풀어갈 사람이 차기 지도부에 강력히 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리해야 하는 과제도 놓여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합치는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인 정강정책도 양쪽의 분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정리한 측면이 없지 않아서다. 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챙기는 구체적 대안을 사회적 의제로 적극 발굴하고 이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 진보개혁 성향 모임인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은 노동자·서민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는 정치가 약화된 상황에서 ‘노동을 존중하는 복지국가 지향’을 당의 주요 가치로 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시민 참여 확대, 온라인 소통 강화, 학생·청년·직장인·지역 조직 복원, 시민들의 정치교육 확대 등 열린 정당을 위한 갖가지 방안들은 새정치연합이 과거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개혁안으로 제시된 바 있다. 결국 실천 의지의 문제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당원 민주주의, 민심을 읽는 당의 감수성을 높이는 실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특히 손학규 상임고문의 정계은퇴를 계기로 향후 당의 원로와 중진들의 용퇴를 통한 세대 교체의 폭이 어느 정도 되느냐도 야권 변화의 잣대가 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야권에선 이러한 제1야당 혁신의 과정과 동시에 고민해야 할 것으로 큰 틀의 ‘야권 재편’을 꼽고 있다. 이번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후 야권에선 이런 얘기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첫째, 지금처럼 가난한 집안(야권)들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으면 하나의 거대 집안(여당)을 앞으로도 이기기 어렵다.
둘째, 선거에 임박해 2~3명의 후보를 1명으로 합치는 기계적 야권연대는 감동도 없고 승리도 보장할 수 없다. 노회찬 정의당 후보 같은 진보 진영의 스타가 새정치연합 후보와 단일화를 했는데도 석패한 결과가 이를 다시 증명시켰다.
셋째, 2016년 총선 이전에 야권 재구성에 동의하는 정당과 시민사회가 야권 통합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내년 초께 전대 기점으로 통합 논의 나올 듯</font></font>이번 재보선을 거치며 야권의 통합과 재편을 거론할 계기가 움트고 있지만 당장 이를 추진할 형편은 아니다. 새정치연합도 대표 공백의 혼돈기이고, 새정치연합이 지원한 서울 동작을 선거에서 패해 당세 확장 기회를 놓친 정의당도 일단 당의 존재감 부각에 주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 통합 논의는 가능하지도 않다. 현재 정의당의 존재감을 봤을 때 새정치연합에 적대적 인수·합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야권에선 내년 초께로 예상되는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야권 재편·통합 논의의 물꼬가 조금씩 트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새정치연합 전대에서 야권 통합과 재편을 주장할 당권 주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들이 지도부에 입성하면 야권 재구성 논의가 전개될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란 얘기다. 전대 출마를 고려 중인 이인영 의원도 “갑자기 이뤄지는 단일화는 감동이 떨어진다. (연대를) 하려면 미리 (당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대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신계륜 의원도 “정당들이 선거에 임박해 선거 전술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노동자·조합·직능단체·사회적 경제에 동의하는 세력과 시민사회들이 크게 통합할 건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일단 야권 재편에 긍정적인 기류가 엿보인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노회찬 후보가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원을 받은 상황에서 정의당이 앞으로 ‘우리끼리 가겠다’고 계속 주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지난 3월 통합을 발표한 직후 정의당 의원 5명이 모인 워크숍에서도 진보정당으로서 독자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원은 1명이었고, 나머지는 새정치연합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정의당의 조승수 전 의원도 “선거가 없는 2015년이 야권 재편을 모색할 중요한 시기”라고 했고,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 새정치연합도 독자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야권 재편 논의가 속도를 내면 지금보다 존재감을 키운 정의당이 다음 총선 이전에 새정치연합과 제3의 정당을 만들어 통합정당에서 진보 블록을 형성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당 대 당 통합에 대한 정의당 내부의 논쟁이 심화되면 총선은 공통의 가치와 의제를 중심으로 한 범야권 단일후보로 치른 뒤 공동정부 구성을 조건으로 2017년 대선을 계기로 통합정당의 꼴을 갖출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정의당이 진보 진영과 당 내부에서 진보정당끼리의 통합을 통한 진보세력 독자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고민이 깊어질 경우 야권 재편의 속도와 모습이 달라질 순 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정의당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font></font>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무능한 제1야당, 지금의 진보정당으로는 선거에서 여당에 안 된다는 것이 재보선에서 확인됐다. 하지만 당장 당 대 당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저소득층 문제와 소득 불평등 심화 극복, 경제민주화 해결에 동의하는 정당의 정치인 등이 원탁회의 같은 것을 만들어 네트워크를 형성한 뒤, 이들이 관련 민생 법안도 같이 내는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2017년 대선까지 새로운 대안정당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공통의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연대와 접촉 면을 늘려 야권 재편의 신뢰를 축적해가자는 얘기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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