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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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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없고 어이없는 33m 셈법

선로 옆 33m 이내의 주민들에게만 보상청구권을 부여하는 송주법, 7월29일 시행…

33m 밖의 동네도 농사 안 되고 땅 매매 안 되기는 매한가지인데
등록 2014-07-30 14:25 수정 2020-05-03 04:27

‘수직 세계’의 법은 수평 33m까지만 미친다. 33m 안의 땅과, 33m 안의 사람과, 33m 안의 분노만 책임진다. 수평 33m 밖의 땅과, 33m 밖의 사람과, 33m 밖의 분노를 수직 세계의 법은 돌보지 않는다. 안과 밖은 1m 차이로 선택받거나 버림받는다.

“올챙이 올록올록 우렁이가 우렁우렁”

“여긴 마 철탑 구디기(구덩이)라.”
이곳은 수직 세계. 여수마을(경남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김무출(67)씨의 대문 안으로 송전탑이 육박해 들어왔다. 담장 저편 300m 거리에서 124번 철탑이 하늘을 들이받고 있었다. 여수마을은 부락을 사이에 두고 산이 양쪽에서 품에 안듯 감싼 형세다. 오른쪽 산등성이로 송전탑이 줄지어 피어올랐다. 마을 아래 도곡(상동면)에서부터 산줄기를 타고 번식해온 철탑은 고정(상동면)을 거쳐 평밭(부북면)까지 뻗으며 5개의 송전탑을 망막에 찔러넣었다. 마을 초입 건너편 산에선 120번 철탑이 힘차게 싹을 밀어내고 있었다. 주민들은 송전탑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었다.

왼쪽부터 여수마을 김무출씨, 고정마을 정잠숙씨, 위양마을 서종범씨(왼쪽), 동화전 마을 양상용씨. 양상용(76)씨는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풀려고 남의 집 품을 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산에 밤나무밭을 일궜다. ‘산만댕이’에 97번 송전탑이 들어오면서 항공 방제를 못할 것이란 생각에 그는 근심이 많다. ‘벌개이’가 슬어 밤농사를 망치면 밤 팔아 얻는 한 해 수입 700만~800만원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력이 그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154만원이다.

왼쪽부터 여수마을 김무출씨, 고정마을 정잠숙씨, 위양마을 서종범씨(왼쪽), 동화전 마을 양상용씨. 양상용(76)씨는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풀려고 남의 집 품을 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산에 밤나무밭을 일궜다. ‘산만댕이’에 97번 송전탑이 들어오면서 항공 방제를 못할 것이란 생각에 그는 근심이 많다. ‘벌개이’가 슬어 밤농사를 망치면 밤 팔아 얻는 한 해 수입 700만~800만원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전력이 그에게 제시한 보상금은 154만원이다.

“밤마다 저놈(송전탑)이 불을 쓰면(켜면) 이리 봐도 뻘건 불 저리 봐도 뻘건 불이다. 전신(사방)에 불이 번쩍번쩍하는 기, 보고 있으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 (철탑) 선까지 연결되고 나믄 무서버서 우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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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마을은 감밭이다. “감으로 먹고사는 동네”다. “가실(가을)에 오믄 온 동네가 (잘 익은 감으로 뒤덮여) 빨간 꽃밭”이 된다. “전기가 흐르고 벌·나비가 안 오면 감꽃 수정도 안 된다 카던데, 진짜가?” 그는 “우예 살 것노”를 되풀이했다.

마을에 송전탑이 줄줄이 꽂히면서 부동산 매매 자체가 사라졌다. 김무출씨의 땅도 재산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철탑 무리가 징그럽게 서식하는 ‘구디기’에서 ‘최소 5대째 이상’ 농사를 지었다. 도곡에서 열아홉 살에 시집왔을 때 ‘증조시아부지’까지 한 논밭에서 모를 심고 밭을 맸다. 올여름 가뭄에도 물을 잘 댄 논에선 “올챙이가 올록올록하고 우렁이가 우렁우렁”했다. 논두렁에서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축축했다.

“우리 마실이 다 땅이 안 팔려.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제. 우리 논밭에서 보믄 송전탑이 더 가찹게 보여.”

그의 논(637번지)과 밭(673번지)은 송전탑에서 200여m 거리에 있다. 2012년 그의 아들은 아파트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려고 두 땅을 담보로 농협에 대출을 신청했다. “감정가 산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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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심(힘)이 꼬, 밥맛도 꼬, 살기도 싫다. 뱅기(비행기·자재 운반 헬기) 날믄 더하다. 11년 전에 할배(남편) 죽고 소복소복 농사짓는 맛으로 살아왔는데, 어른들한테 물리받은 농사가 이래 돼뿌면 우짜노. 억울하고 분해서 나는 몬 산다.”

헌법 제23조 ‘정당한 보상’의 원칙 위배 소지

그의 땅은 ‘33m의 셈법’이 눈길을 주지 않는 영역이다. 7월29일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이 시행된다. 7월22일엔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리적 보상 및 지원제도가 시행됨으로써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는 ‘피해 지역에 연간 1260억원을 지원하게 됐다’며 홍보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으며 제정된 송주법은 지난 1월28일 공포됐다.


김무출씨의 논과 밭은 송전탑에서 200여m 거리에 있다. 2012년 그의 아들은 아파트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려고 두 땅을 담보로 농협에 대출을 신청했다. “감정가 산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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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법은 한국전력공사가 자체 내규에 따라 임의로 처리해온 토지 수용과 보상 절차를 법제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765kV 송전탑의 경우 송전선로 양쪽의 가장 바깥선(최외선)으로부터 3m까지만 해당되던 ‘재산적 보상(토지평가액의 약 28%) 지역’을 33m까지 늘렸다. 180m 이내 지역 주민들은 사업자에게 주택 매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33m 밖은 법의 핏줄이 닿지 않는다. 송주법이 구제하지 못하는 ‘소외의 땅’이다. 위헌 소지(헌법 제23조 ‘정당한 보상’의 원칙 위배)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피해 지역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설정돼 있고, 법 시행 전에 건설된 송전탑과 154kV 송전선로 주변은 보상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재산 피해를 입으면서도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33m는 ‘절망과 배제의 경계’일 뿐이다. 김무출씨가 그 안에 있다.

‘밀양 송전탑반대주민 법률지원단’(밀양법률지원단)은 지난 5월부터 송전선 34m~1km(‘송전선로 주변지역’ 경계) 이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2차례 실태조사를 벌였다. 송주법 시행 시점에 맞춰 법률 대응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다. 경과지 주민 217가구가 조사에 응했다. 주민 대부분이 영농 피해와 땅값 하락 및 담보대출 거부의 고통을 호소했다. 은 법률지원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장을 찾았다.

“철탑의 장관인 기라. 우짤 끼고.”

이곳은 수직 세계. 120번 송전탑 공사가 한창인 여수마을 초입의 산등성이를 거꾸로 따라가면 고정마을(상동면 고정리)이 나온다. 마을 주민 정잠숙(57)씨의 안방 안으로 송전탑들이 달려들었다. 창문 너머 400여m 거리에서 116번과 119번 송전탑이 하늘을 찔렀다. 이미 훤칠하게 솟은 113·118·119번에, 공사 중인 113·114번을 더하고, 여수마을 쪽 120·121번까지 합하면, 완공 뒤 그는 집 앞에서 9개의 송전탑이 펼치는 ‘장관’과 마주하게 된다.

12만원 받을 걸 6만원에 겨우

그도 ‘33m 세계’ 밖의 사람이다. 그는 2012년 집 옆에 위치한 비닐하우스(2495번지)를 팔려고 평당 14만원에 내놨다. 남편 및 시부모와 “손가락이 휘도록”(실제 그의 손가락은 부르트고 휘어져 있다) 일해 장만한 땅들이었다. 결혼하는 아들에게 전셋집을 얻어주려고 살고 있던 집까지 한꺼번에 내놨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송전탑이 없으면 18만원 이상 받을 수 있다(부동산업자 평가)는 비닐하우스(대지는 25만원 이상)를 10만원에 겨우 팔았다.

“이거(송전탑 갈등) 겪으면서 나는 법을 알게 됐어요. 힘있는 놈들한테만 법이고 약자한테는 법도 아닌 기라. 사람이 악에 받쳐요. ‘나 건드리지 마라, 터지면 다 죽는다’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같은 마을의 ㄱ씨는 사업자금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물려준 땅을 부동산에 맡겼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선 시세(송전탑이 없을 경우 12만원)의 절반만 받아도 잘 받는 거라고 했다. 매수 문의조차 받지 못했다. 다급해진 그는 지인을 통해 평당 6만원에 처분했다.

“은행이 땅의 담보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아 대출은 꿈도 못 꿨어예. 돈은 필요한데 땅값은 갈수록 떨어지니께 울면서 반값으로 넘겼지예.”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에 피가 마르는 사람들이 있다. 위양마을(부북면 위양리) 서종범(54)씨도 팔리지 않는 땅 때문에 속을 끓였다. “내년에 딸 시집보내려고 땅을 내놨는데 안 팔리서 죽겄다”고 했다.

“시골에선 소 팔고 논 팔아서 아들(애들) 핵교 보내고 결혼 시키는 거 아입니꺼. 13년 전에 사서 밤에 불 써가면서 일해 가꾼 땅입니더. 딸은 송전탑 서니까 땅 팔고 이사 가자고 하는데 팔리야 이사도 가지요.” 그가 불편한 걸음으로 밭고랑을 걸었다. 오랜 시간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다 그는 척추협착증을 얻었다.

“그 사람 땅 안 팔립니더.”

밀양 시내에 있는 ㄱ부동산 대표는 단언했다. 13년 전 그는 지금의 땅을 서종범씨에게 소개해 매매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한테 오래전부터 팔아달라 했는데 몬 팔아요. 당최 안 팔리는데, 뭐.”

서종범씨의 땅은 송전탑이 없을 경우 40만원 이상 한다, 포도밭을 사서 다듬고 가꿨으니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평당 20만원도 못 받는다, 며 부동산 대표는 자신의 사례까지 꺼내놨다. 그도 서종범씨 땅 인근에 1500여 평을 갖고 있었다.

“내가 업자 아잉교. 땅 팔려고 얼매나 싸댕겄소. 부동산 업자가 지 땅도 못 판다 아입니꺼. 내가 은행에 1500평을 담보 잡히가 1억2천만원을 빌거든요. 땅을 몬 파니께 한 달 이자만 수십만원씩 물고 있단 말입니더. 나는 업자니까 그렇다 치고예, 현지 주민들은 저대로 두믄 화병 나서 다 죽심니더. 지 재산 몽창 날아가는 거 보믄서 우예 살 깁니꺼.”

법률지원단 7월29일 직후 재결신청

그는 위양마을 128번 송전탑에서 200m 거리의 땅 3500평을 2010년 자신의 인척에게 7천만원에 중개했다. 4년 만인 7월15일 그는 “죄인 된 심정”으로 같은 땅을 5천만원에 제3자에게 팔아줬다. 그것도 헐값에 매수자를 ‘겨우겨우’ 찾은 결과였다. 그는 “송전탑 주변 땅들은 이미 은행에서 재산으로 안 쳐준다”고 했다.


“그 사람 땅 안 팔립니더.” 시내에 있는 ㄱ부동산 대표는 단언했다. 13년 전 그는 지금의 땅을 서종범씨에게 소개해 매매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한테 오래전부터 팔아달라 했는데 몬 팔아요. 당최 안 팔리는데, 뭐.”


2012년 1월 이치우(산외면 보라마을)씨가 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했다. 동생 이상우(74)씨도 2010년 농협에서 대출을 거부당했다. 감정평가서엔 “본건 담보물은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토지로서 현재의 상황으로는 담보대출을 반려한다”는 농협의 설명이 붙었다.

밀양법률지원단의 정상규 변호사는 “송전선로 인근 지역의 ‘현실적 피해’는 명백하다”고 했다. 실거래를 기준으로 보면 시간이 갈수록 재산가치는 0으로 수렴되고 있다. 선이 연결되고 전기가 흐르면 더 악화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송주법은 선로 옆 33m 이내(765kV의 경우)의 주민들에게만 보상청구권을 부여했다. 법률지원단은 보상 대상에서 배제된 33m 밖의 주민 중 피해가 큰 경우를 선별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 송주법으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피해 주민들은 7월29일 법 시행 직후 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신청(사업자와 피해 주민이 보상 합의에 실패할 경우 위원회에 판단 요청)을 하며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 33m 밖은 보상청구권이 없다며 위원회가 기각 혹은 각하할 경우 행정소송→위헌법률 심판제청→헌법소원 절차를 밟으며 송주법의 위헌성을 다툰다는 방침이다.

날마다 자라나는 송전탑의 울퉁불퉁한 철제 힘줄이 밀양 주민들의 삶을 조이고 있다. 애초 송주법이 조여드는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송주법마저 외면한 수직의 세계에서 주민들은 찢긴 살림을 기울 바늘이 마땅치 않다.

밀양=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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