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1일, 전국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취임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 차별이 아니라 배려, 탐욕이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공통으로 내세운 이들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내놓은 교육관은 1989년 창립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오랫동안 품어온 가치다. 실제로 새 교육감 가운데 전교조 출신은 8명이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평소 느낌, ‘좋지 않다’ 48%, ‘좋다’ 19%</font></font>진보 교육감 시대를 열어젖힌 민심은,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의해 법 밖으로 내몰린 전교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만은 않는 듯하다. 한국갤럽이 6월24~26일 전국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평소 전교조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8%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좋다’는 응답자는 19%였으며, 의견을 내놓지 않은 이는 34%에 달했다. 초·중·고 자녀가 있는 경우 ‘전교조에 대한 느낌이 좋다’는 응답률이 33%로 올라가지만 ‘좋지 않다’(38%)나 ‘응답 거절’(30%)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궁금했다. 은 우선 서울·경기·대구·제주 등 전국 11개 지역에서 교육감 선거에 참여한 학부모 19명에게 전교조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이들 중 진보 성향 후보에게 표를 던진 학부모는 16명, 보수 성향 후보를 지지한 이는 3명이었다. 학부모 대다수는 전교조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모른다는 학부모는 1명뿐이었다. 진보 교육감 후보에게 투표한 16명 가운데 이번 전교조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이는 3명이었다. 대부분 긍정 의견과 부정 의견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을 둔 이승희(37·전북 전주·진보 교육감 지지)씨는 교육 현장이 바뀌길 원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부터 교육 편차가 너무 크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교육은 전적으로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다른 지역 특목고로 다 빠져요. 또 아이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커요. 때때로 ‘내가 왜 돈을 벌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학업 성적을 생각하면 마음이 늘 불안하다. 아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밤 11~12시. 그도 아이가 불쌍하다. “지금 교육 시스템이 정말 아니니까 ‘너 공부 못해도 된다’고 하기도 어렵고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씨는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추진한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높이 평가했다. 전교조에서 주장한 교육정책이다. 반면 전교조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이씨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조 선생님은 지적이고 교사로서 사명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엔 노동자 집단인데 폐쇄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font size="3"><font color="#C21A1A">‘우리 아이의 이익’에 따라 엇갈리는 평가</font></font>강원도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지역에서 전교조 강원지부장을 지낸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 기간 내내 ‘빨갱이’라는 공세가 뒤따랐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채규옥(42·강원도 원주·진보 교육감 지지)씨는 민 교육감이 당선 뒤 평준화 정책을 곧바로 실현시키자, 이번에도 그를 지지했다. 학교를 일렬로 세우는 정책을 반대해서다. 전교조와 정부 간 대립은 그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주제다. “학부모 입장에선 자리싸움 같아 보이죠.” 교사를 노동자로 봐야 할지도 의문이다. “일반 직장인은 임신해도 쉬지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데, 교사들은 배부른 거죠.”
<font color="#C21A1A">한 학부모는 전북도교육감이 추진한 체벌 금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높이 평가했다. 전교조에서 주장한 교육정책이다. 반면 전교조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font>
중·고교생 두 아이를 둔 유승현(45·충남 천안·진보 교육감 지지)씨는 애초 평준화 정책을 반대했지만 이번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뽑았다. 다른 지역에선 대부분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고, 성적인 중간이 아이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전교조에 대해 채규옥씨와 비슷한 반응을 내놓았다. “전교조가 교원노조잖아요. 아마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공무원 노조는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노조가 생겨서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공무원 노조를 안 좋게 보지만 말을 안 하는 거죠. 교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는데, 노조라는 형태는 적합하지 않아 보여요.”
실제로 학교 교실은 진보-보수의 구분을 넘어 경쟁사회에서 ‘내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블랙홀이다. 전교조에 대한 평가는 정치 성향이 아닌 ‘우리 아이의 이익’에 따라 엇갈린다. “학부모는요, 애한테 득이 되면 다 따라가요.” 중학생 자녀를 둔 임심옥(42·대구·보수 교육감 지지)씨가 단언했다. “10년 전에는 전교조라고 하면 싫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체벌도 없어지고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데 일조했어요.”
지난 교육감 선거에선 진보 성향 후보를 지지했다는 원아무개(43·서울 목동·보수 교육감 지지)씨는 이번엔 보수 성향의 문용린 후보를 찍었다. 과학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때문이다. 당장 교육정책이 바뀌면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요즘엔 초등학교 5학년이 입시 준비 시작점이라고 한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고달픈 먹고살기와 악의적 여론몰이</font></font>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교육학)는 시민들이 전교조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든 ‘교사 집단’ 자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비정규직화라는 사회의 격랑 속에서, 직업 안전성이 높은 교사들은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올라갔다. 반면 다수의 학부모들에게 ‘먹고살기’란 더욱 고달파졌다. 여전히 많은 학생 수, 행정 업무의 틈바구니에서 자발적으로 소통을 이루어야 할 교사와 학부모는 가까이하기엔 먼 존재다.
그 간극을 비집고 보수언론의 전교조에 대한 악의적 여론몰이가 힘을 발휘한다(34~35쪽 참조). 특히 전교조는 ‘촌지 없애기 운동’ 등으로 합법화 이전에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단체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나라에선 전통적으로 교육에서 희망과 탈출구를 찾는다. 그러나 학교는 이런 열망을 받아안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십수 년간 열심히 일한 전교조 교사들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학교 교실에서 진보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선순환 고리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의사 표명이나 시국선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학부모들조차 ‘조퇴 투쟁’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는 수업에 차질을 빚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전교조 조합원은 나름의 고충을 토로한다. “‘선생님은 조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상식인 세상에서, 전교조가 하늘에서 용쓰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김용일 교수는 다르게 바라봤다.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으니 대정부 투쟁은 허용하면서도, 학부모들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복합적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전교조가 법 밖으로 밀려나면서까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핵심 쟁점은 해고노동자는 노동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악법’이다. 전교조가 이런 법을 근거로 한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건, 조합원 9명을 버리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서는 노동기본권의 문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1970년대 노동운동은 해고자가 노동조합원으로 들어와 이룩한 역사다.”(전교조 조합원) 하지만 이런 절박한 상황조차 노동조합이라는 틀 안에서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대다수 서민들에겐 ‘배부른 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전교조는 20년간 진행된 사회의 보수화, 시민사회 진영의 영향력 감소 등 척박한 환경에서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난제를 안게 된 셈이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종이호랑이 그려넣고 “무섭다”</font></font>상황이 이렇다보니 진보개혁 진영에서조차 ‘진보 교육감 시대라는 하늘이 준 기회를, 법외노조 문제로 날려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전교조 교사 출신인 이계삼 편집위원은 빈약한 논쟁이라고 선을 그었다. 위기에서 도출된 다층적인 지점을 살피지 못하고 ‘의리냐 실리냐’만을 따지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이 편집위원은 현재 전교조 상황을 “일본 우익들이 실질적 영향력이 거의 없어진 ‘종이호랑이’ 일교조를 그저 이데올로기 사냥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전교조가 지지 기반인 대중과 멀어진 상황을 맞이한 데 대해선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임용고사 위주의 교원 양성 과정으로 인해 젊은 교원들이 보수화·엘리트화되고 있다. 전교조에 새로운 피가 충원되지 못하면서 노령화가 된 문제도 있다. 또 하나는 운동 방향성의 문제다. 현장보다는 제도 개선과 교섭에 운동 역량이 집중되면서 청소년 인권이나 두발단속 같은 반교육적 관행 등 아이들의 삶, 일상과 관련된 미시적인 투쟁에서 비껴갔다.”
지난 7월2일 전교조 교사대회에 참여했던 조합원 김아무개(37)씨는 학교가 학부모와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교육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의 존재감을 알기 어렵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지만 교육 철학을 논하기에는 안건이 많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로 ‘어, 어’ 하다가 결국 학교장 의지대로 가는 거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했다. 특히 두 자녀를 둔 이금호(41·광주·진보 교육감 지지)씨는 말했다. “지금 정부가 전교조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교조의 대응 방식도 조금 더 유연했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먹거리 운동 등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다른 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또 다른 지류가 나타나 이를 비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외부의 높은 기대에 대해 조합원은 답한다. “터무니없는 중상모략과 ‘저런 조직 없어져야 해’라는 비난만 아니라면, 저는 기대를 많이 받을수록 좋습니다.”
전교조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있었다. “아들한테 어제 전교조에 대해 물었더니 ‘데모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텔레비전을 봐도 교총은 회의하는 모습이 나오고, 전교조는 집회 나가는 모습만 나오니까요.”(임심옥)
<font size="3"><font color="#C21A1A">아이에게 ‘전교조=데모하는 사람들’</font></font>혁신학교에 둘째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신순화(44·경기도 군포·진보 교육감 지지)씨는 전교조 교사가 이번 투쟁으로 인해 ‘내 아이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전교조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참 안쓰럽죠. 사실 전교조가 학부모들에게 투쟁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노력을 많이 해야죠.”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장슬기 인턴기자 kingka8789@hanmail.net·김연희 인턴기자 kyhbb72@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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