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무슨 말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로 교직에 선 지 1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이 된 지 벌써 9년차에 들어섰지만, 해직 선생님들에게 건넬 말을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참 죄송스럽게도 이제까지 선생님들이 서 있는 자리는 제가 서 있는 자리와 다르다고 생각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저 같은 후배들이 언젠가부터 선생님들의 위치를 특별하게 인식하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세상은 선생님들을 학교 밖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핑계로 박근혜 정권은 법외노조를 통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누가 해직을 원해서 당하나언론에서는 전교조 조합원들이 9명의 해직 선생님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규약 시정 명령을 거부한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명령’은 반헌법적일뿐더러, 국제사회에서도 외면당할 만큼 부당했고, 매일매일 양심과 인격을 걸고 교육해야 하는 전교조 교사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놓고 전교조에 법을 지키라 하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요즘 불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교직을 잃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전교조를 멈출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는 박근혜 정부가 너무나 바라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해직이 제 일이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약한 저로서는 ‘해직’이란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립니다.선생님. 전교조 활동을 하다보면 종종 ‘해직’의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누가 해직을 원해서 당하겠습니까? 전교조 교사들이 사립학교 비리를 고발하거나, 교육 좀 바꿔보겠다고 목소리를 낼라치면 해직의 위협은 당연한 듯 뒤따랐던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3년차 새내기 교사였을 때가 생각납니다. 동일여고 교문 앞 비탈길에 앉아 당시 해직 교사였던 조연희(학생 급식비 비리 등 사학 비리를 고발하고 2006년 파면된 전교조 교사) 선생님의 눈물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일에 별 관심 없던 저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립학교의 비리를 고발했다고 교사를 거리로 내모는 세상, 그리고 그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따라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결국 조연희 선생님은 8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복직되셨습니다. 그조차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눈물의 기자회견과 보름 이상 철야 단식농성을 하는 등 한바탕 싸움을 치른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명박 정부 때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서울에서만 교사 9명이 파면·해임을 당했습니다. 단지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 반대를 안내하고 시험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였습니다. 하다못해 성적에 포함되는 중간고사도 학생이 보기 싫으면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답답했습니다. 결국 당시 해직된 선생님들은 재판에서 승소해 지금은 모두 복직됐지만, 해직 상태였던 3년여간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선생님들과 전교조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전교조에는 사립학교 비리를 고발했다고, 통일교육을 했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까지 받았음에도) 교육감 선거를 독려했다고 거리로 내몰린 해직 선생님이 22명이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분들의 복직이 아닌 전교조로부터의 배제를 명령했다는 건,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전임자의 임금이라도 줘왔던 것처럼선생님. 이번엔 박근혜 정부가 저를 비롯한 전국 71명의 전임자에게 ‘교직’을 내놓으라 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니, 이제 전임자들의 활동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동안 정부가 전임자들의 임금이라도 줘왔던 것처럼 당당합니다. 알다시피 전교조 전임자들은 6만 조합원의 조합비로 임금을 받고 있으며, 정부가 하는 일은 전임 휴직을 내주는 일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게다가 전임 교사들이 기말고사 등으로 한창 분주한 7월3일까지 복귀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겁니다. 한 학기가 마무리돼가는 7월, 갑자기 교체된 교사가 무슨 수업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현장에 아무런 혼란도 일으키지 않았던 조퇴 투쟁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학습권 침해’를 그리도 들먹이더니, 정작 실질적인 혼란이 야기될 ‘전임자 복귀’ 문제는 나 몰라라 합니다.
선생님들이 이미 알다시피 전교조 전임자들의 근무조건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늘 해야 할 일은 많고 사람은 부족합니다. 교육청에서는 수백 명의 관료가 시시각각 온갖 정책을 생산해냅니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는 고작 몇 명이 그 모든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현장 교사들에게 의견 수렴을 해야 하며, 그 결과를 전교조의 투쟁이나 실천사업으로 기획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그뿐입니까? 전교조 교사들이 참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교류하는 모든 활동도 기획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게다가 사무실에 있다보면, 전교조 교사가 아닌 교사들과 학부모들도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의뢰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런 속에서 저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밤 11시 퇴근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아마 전국 대부분의 전임자들이 저와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그 모든 일을 감당해온 건, 오로지 전교조가 바라는 참교육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런 전임자들에게 한시의 지체 없이 현장으로 복귀하랍니다. 전교조를 멈추려는 겁니다. 법외노조 통보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겁니다. 전교조한테서 법적 지위는 물론 사무실을 뺏고, 일하는 사람을 없애서, 교육정책에 대해 전교조가 담당해온 역할을 빼앗고 없애려는 시도입니다.
학교 밖으로 내몰리면서 지키려 했던 것저는 요즘 불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교직을 잃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전교조를 멈출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는 박근혜 정부가 너무나 바라는 일입니다. 저들이 바라는 대로 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이 됩니다. 이제까지 해직이 제 일이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약한 저로서는 ‘해직’이란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립니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 저를 만나러 사무실에 놀러왔던 제자들 얼굴도 떠오르고, 가족에게는 뭐라 설명해야 할까 막막한 마음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런 제 나약함을 통해 선생님들이 걸어오신 길이 얼마나 외롭고 고됐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선생님. 그럼에도 저는 자꾸만 용기를 내봅니다. 지금의 저처럼 선생님들도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셨겠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학교 밖으로 내몰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선생님들이 끝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교육을 바꾸기 위한 투쟁과 실천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교조’ 때문이었구나 싶습니다.
저 역시 요즘 예전의 선생님들처럼 전교조를 지키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철없는 제가 선생님들처럼 긴 시간 참교육의 정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의와 모순에 끝까지 저항한 선생님들을 품고 있는 전교조를 믿습니다. 그리고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을 넘어, 해직 선생님들이 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뛰겠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요.
유성희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기획국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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