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무개는 어떻게 ‘관심○○’가 되었나. ‘쉽게 화를 낸다’ ‘종종 우울하다’ 따위의 설문 항목이 적힌 종이 조각에 ‘그렇다’고 답했을 뿐이다. 가끔 누군가 그를 앞에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더니 누군가 그에게 ‘등급’을 붙여줬다. ‘1+’ 한우처럼, 그는 ‘등급’으로 분류됐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B급’이라거나 ‘관심○○’라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등급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편하게 ‘관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군대에서는 임아무개를 일컬어 ‘관심병사’라 불렀고, 학교에선 임아무개를 상담이 필요한 ‘관심군’으로 분류했고, 무노조 전략을 택하고 있는 대기업에선 임아무개를 ‘관심사원’(KS) 또는 ‘문제 인력’이라고 칭했다. 관심(關心):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다. 그런데 거짓 마음이라 문제다. ‘관심’을 가장한 ‘낙인찍기’라서다.
가난하면, 한부모 가정이면 B급지난 6월21일 강원도 고성군 22사단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고와 관련해 ‘관심병사’라는 단어가 새삼 입에 오르내린다. 총기를 쏴서 동료 병사 5명을 숨지게 한 임아무개 병장이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이른바 ‘관심병사’였던 탓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일반전초(GOP) 근무가 불가능한 A급(특별관리대상)으로 분류됐다가, 그해 11월 B급(중점관리대상)으로 조정되면서 GOP에 올 1월 투입됐다.
‘보호관심병사’는 군대 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병사를 골라내 관리하는 제도다. 2005년 경기도 연천 전초(GP)에서 김아무개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난사해 8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관심병사’는 굼뜨고 얼뜬 병사를 놀리듯이 부르던 ‘고문관’을 대체하는 신조어로 등장했다. 군은 신병 교육 기간 중에 개인 신상기록과 인성검사 등을 종합해 ‘관심병사’를 밭에서 잡초 뽑듯이 구분해낸다. 한국국방연구원이 만든 인성검사 평가서가 판단 잣대다. 이들은 크게 A·B·C의 세 등급으로 나뉜다. 대대장 이상의 지휘관이 수시로 관심병사의 등급을 조정한다.
등급을 분류하는 근거는 모호하다.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할 우려가 있는 병사는 A급으로 분류된다. 그다음이 문제다. 부모가 없거나 한쪽만 있는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집안이 가난한 경우에 B급이 된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가정환경이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신분제 사회나 다름없다. 동성애자는 무조건 기본관리대상인 C급으로 분류된다. C급에는 입대 100일 미만이거나 신체적으로 허약한 병사가 포함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육·해·공군의 A급 관심병사는 1만7천여 명에 이른다. 전체 병사(45만 명)의 3.8%가 ‘특별관리대상’이라는 뜻이다. B급과 C급까지 합치면 1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통계는 파악조차 못하는 형편이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사람들이 ‘왕따 문제가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반응하는 걸 보고 놀랐다. 한국 사회엔 조직의 구조적인 폭력을 보지 못하게 하는 습관이 있다. 개인의 ‘내적 특이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담론을 구성하는 거다.” 군대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해온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말했다. “유영철, 유병언 다 마찬가지다. ‘예외’적인 인물들이 벌인 사고라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군대 내에서 어떻게 왕따를 비롯한 상호 폭력이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어쩔 수 없다’며 왜 그걸 용인하는지 등이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실제 임 병장과 관련해 국방부 안팎에서는 “입대 전에 전투게임을 하루 12시간씩 했다더라” “주로 소설을 읽었는데 판타지 소설이 있었다”와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 전형적인 여론몰이다. 관심병사 개인의 일탈, 돌발적인 행동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임 병장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든 군대라는 조직은 뒤로 숨는다. 임 병장에게 관심병사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기수 열외나 왕따를 오히려 조장하는 군대 조직이나 문화에 대한 비판은 점차 수그러드는 것이다.
“병신처럼 안 살려면 괴물이 되라”애니메이션 (2012)은 이같은 군대폭력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후임을 잘 아우르며 상관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던 주인공은 ‘관심병사’인 신병이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용도폐기 처리된다. 상관들은 주인공을 희생양으로 ‘찍어’ 영창으로 보내고, 내무실에 ‘창문’이 없어서 상습 구타가 일어났다는 얼토당토않은 원인을 조사 결과로 내놓는다. 연상호 감독은 “군대라는 조직은 그대로 두고 내무실에 창을 뚫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대책을 세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현실을 비꼬았다”고 말했다. 연 감독의 전작인 스릴러 애니메이션 (2011)이 학교폭력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계급과 권력에 의해 서열화된 교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그리고 학생의 자살. 영화 속 대사처럼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돼야” 하는 건 군대나 학교나 다를 바 없는 섬뜩한 현실이다.
실제 학교는 군대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기본적으로 규율과 통제로 유지되는 조직이다. 더구나 2000년대 들어 청소년의 자살과 왕따, 우울증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뒤, 학교는 군대처럼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공간이 됐다. 경기도에 사는 김아무개(41)씨는 최근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중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와 집단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아들은 “친구들이랑 몸을 던져 탑쌓기 놀이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학교 쪽에선 해명조차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은 채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만 놨다. 평소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던 아이가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학생부장인 선생님은 반성문을 받겠다며 하루 네댓 시간씩 아이를 무릎 꿇려놓고 욕을 하거나 체벌했다. 김씨는 “아이가 설사 잘못한 부분이 있다 해도 그런 식으로 교사와 학교가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관심병사’는 군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초·중·고교생 211만 명을 대상으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해, 이 중 7.2%인 15만 명을 ‘관심군’으로 분류했다. 당장 자살을 생각하는 등 위험해서 ‘우선관리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도 4만6천여 명에 달했다. 자살충동이나 우울증을 겪는 아이를 찾아내 돌보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교사가 ‘관리자’가 돼버렸다는 게 문제다.
“학교에서 심리검사와 상담은 전체 학생들에게서 고위험군의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관리하는 통치 전략이다. 이전에 상담은 ‘좋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교육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분류하고 구분하는 것은 ‘성적’만이 아니라 ‘마음’이 되었다. (중략) 학교는 그저 학생들의 육체적 생명을 돌보기만 하는 ‘수용소’가 된 것이다.”(엄기호, )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겐 일방적인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는 ‘주홍글씨’만 새겨진다. 2012년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조처를 기재하지 않은 학교와 교원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라고 시·도교육청에 요청했다가, 진보 교육감들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교육적인 접근 방식보다, 낙인찍기를 통해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를 억누르기에 급급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네 개의 계급 MJ, KS, OL, KJ엄기호 덕성여대 강사(문화인류학)는 “군대와 학교 모두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관심 때문에 심리검사나 상담을 하는 게 아니다. 안전을 강박처럼 내세우는 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때처럼 ‘조용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는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에게 병리학적 낙인을 찍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병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병적인 모습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우는 대기업에서도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공개된 이마트의 내부 문건(2011년 작성)에 따르면, 이마트는 모든 직원을 등급으로 분류했다. 2011년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무노조 경영전략이 깨질 것을 염려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다. 사내 인력은 문제사원(MJ), 관심사원(KS)으로 나뉜다. MJ는 노조를 세우거나 노조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은 사원, KS는 MJ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사원을 뜻하는 이마트 내부 용어다. 회사 내부의 여론을 주도하는 여론주도사원(OL)과, 회사 쪽이 믿을 만해서 별도 관리하는 가족사원(KJ) 등 총 4개 등급이 존재했다. KJ에겐 MJ를 일대일로 밀착해 맡으면서 동향을 수시로 보고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 대신 회사는 KJ에게 인사고과나 승진에서 보상을 해줬다. 삼성그룹도 지난해 공개된 ‘S그룹 문건’에서 ‘문제인력’을 따로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2012년 10월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해고됐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 “연차휴가 요청서와 휴직 신청서를 냈는데 회사가 거부했다.” 그런데 회사 쪽 인사담당자는 오히려 전국 각 점포 지점장들에게 전자우편을 뿌려서 “전수찬인가, 걔 19일 동안 무단결근했다며? 일방적으로 아프다고 휴직했대~” 등 휴게실이나 흡연실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할 내용까지 친절하게 일러줬다. 전 위원장은 “당시 MJ와 KS를 합쳐서 200명 이상을 회사가 관리했다. 노조를 설립할 즈음엔, 나와 친했던 사람들을 다른 점포로 보내버렸다. 회사가 관리직과 가족사원 등을 동원해 나를 관리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 등 직원을 미행·감시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이사는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적응 병사 54%도 “힘들다”“사람을 등급으로 분류하는 건, 뭐든지 대상화하는 거다. 한국 사회에선 사람들이 자기 안의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불필요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줌으로써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군대나 학교 등 폐쇄적인 공간에 있으면 그게 더 심해질 수 있다.” 지난 3월 이란 책을 펴낸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사회학)의 말이다.
결국 이같은 모멸감이 폭력으로 나타나서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군 복무 부적응자 인권상황 및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1169명 표본조사) 보고서를 보면, 부적응 병사의 63%, 적응 병사의 54%가 “내가 아닌 군대 때문에 군 생활이 힘들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폭력을 불러오는 구조를 바꾸겠다던 사람과 마음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관심○○’라는 주홍글씨만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김영선 두 동생, 윤 대통령 ‘창원 산업단지’ 발표 전 인근 주택 ‘공구’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대통령 이재명’은 가능할까, 법원 말고도 변수는 있다
야당 예산안 감액 처리에 대통령실·여당 “민주, 예산폭주” 반발
한동훈, 정년 연장이 청년 기회 뺏는다는 지적에 “굉장히 적확”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트럼프 만난 트뤼도 “마약·국경 공조”…관세 철회는 못 듣고 빈손 회담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