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선거를 앞둔 대구 민심은 ‘이번엔’과 ‘그래도’의 충돌 속에 있다. 우리 손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란 숙원을 풀었으니, 마음의 짐을 털고 ‘이번엔’ 인물 경쟁력 있는 야당 후보를 ‘쫌’ 밀어보자는 게 한 축이다. “쟈들(새누리당) 계속 찍어줬더니 대구가 뭐가 좋아졌노?”란 비판론이 깔린 흐름이다.
‘그래도’ 트집 잡는 야당은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한테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나, 미우나 고우나 새누리당이지. 또 하나는 ‘우리가 남이가’란 누적된 정서다.
이명박계 권영진 후보 경선 승리
보수 기득권의 영달을 떠받쳐온 ‘대구·경북(TK) 지역주의’란 소리까지 들었던 대구에서 두 흐름이 다툰다는 것은 큰 변화다. 그간 대구는 새누리당 전신인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소속 시장 후보들이 60~70%대 득표율을 쓸어담은 곳이다.
변화의 징표는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에서도 읽힌다. 현역 의원이 아닌 이명박계 권영진(52) 후보가 출마 선언 100여 일 만에 서상기·조원진 등 박근혜계 의원들을 밀치고 경선에서 이긴 것이다. 대구에 기존 지역 정치인 반감, 관성적 투표 거부의 공기가 팽창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변화의 기운은 김부겸(56)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여당 후보와 비등한 대결 양상까지 밀어올리는 데서 더 선명해진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한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의 득표율로 석패했다. 영남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가 당과 지역주의를 뛰어넘는 인물 교체(김부겸)로 나아갈지, 당 내부의 인물 교체(권영진) 정도에서 지역 정치인들에게 경고를 주는 선택을 할지를 지켜보는 흥미로운 선거”라고 말했다.
5월21일 찾아간 대구 서구에 있는 김 후보의 사무소 외벽엔 ‘대구의 맏아들 김부겸’이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3선 의원을 지낸 뒤 돌아온 대구의 큰아들을 반겨달라는 얘기다. 캠프의 한 인사는 “김 후보는 정치적 경륜, 정서적 친화력, 신뢰·포용력 등 인물 경쟁력을 갖췄다. 대구의 변화 민심이 김부겸이란 인물과 맞닿고 있다”고 했다. 야당 후보인데도 김 후보를 향한 정서적 저항감이 적다는 뜻이다. 다른 인사는 “시민들도 한마디로 ‘사람이 좋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은 좋다. 그런데…’가 됐을 때”라고 했다.
‘그런데 발목 잡는 야당이잖아. 박근혜와 각을 세우면 어쩌지?’ 따위의 불안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협력하는 야당 시장 대박론, 메기론은 그런 고민에서 나왔다.
대구는 19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광역단체 중 꼴찌다. 김 후보는 “박 대통령은 여당에 협조를 구하고, 야당 시장은 야당을 설득하면 대구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야당 시장 대박론’을 강조한다. 메기론은 “야당 시장이 배출되면 나태한 여당 지역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고 일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메기 한 마리를 풀면 미꾸라지들이 먹히지 않도록 활발해진다는 메기론을 빗댄 것이다.
중앙당의 선거 지원 고사그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화해”를 위해 내건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은 논란을 부른 공약이었다. 여야 지지층 모두 표를 의식한 공약이란 시선을 보냈다. 측근의 얘기다.
“깜짝 놀란 게 대구 사찰들을 가보니, 박정희·육영수의 그림·사진이 붙은 곳이 많았다. 박정희 향수가 민간신앙처럼 된 것이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지어 대구 시민들이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자유롭게 얘기하도록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봤다.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도 프로그램을 교류하면 박정희 시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겠느냐. 센터 건립은 화해·상생이란 김 후보의 오랜 정치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김 후보의 그런 정치철학이 당내에선 잘 인정받지 못했지만 대구에선 강점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 후보 쪽은 중앙당의 대대적인 선거 지원을 고사할 생각이다. ‘김부겸 인물론’을 부각시키고 정파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함이다.
대구의 장기화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300만 대구 시대를 여는 혁신’을 강조하는 김 후보는 “내가 당선되면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우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한국 정치가 화해·상생으로 정상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로 북적이는 사무소의 모습은 권영진 후보의 기세가 역시나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사무소는 김 후보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에 있다. 상대 후보의 강세 지역을 정면 공략하는 것이다. 사무소 창문엔 ‘천막 당사 시절부터 그분과 함께했습니다. 2012년 권영진은 그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란 글귀가 나붙었다. 박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도 내걸렸다. 경선에서 박근혜계 후보들을 물리친 그로선, 대구에서 ‘친박 의원들의 조직’과 박 대통령 지지자들을 이탈 없이 모아내야만 한다.
고등학교 3년만 대구에서 지내고 서울 지역구에서 정치 생활을 한 권 후보는 ‘인지도가 낮다’ ‘대구 사람이 아니다’는 시선 앞에 있다. 캠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서울에서 줄기차게 출마하며 도전을 했던 것은 가치가 있으며, 서울 정무부시장으로서 광역 행정 경험도 있다. 대구가 새누리당을 계속 찍었지만 돌아오는 혜택이 없다는 원성이 있다. 개혁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반영하는 후보가 권 후보다.”
권 후보도 “(김 후보를 뽑는) 파괴적인 변화가 아니라, 젊고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리더십, 발전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후보를 대구가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조경제 도시, 3355 일자리 정책(대기업·글로벌 기업 3개 유치, 300개 중기업과 50개 중견기업 육성, 50만 개 일자리 창출)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현재 판세는 권 후보가 근소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월20일 공중파 3사(SBS·KBS·MBC)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권 후보(41.3%)가 김 후보(29.7%)에게 11.6% 앞섰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자체 여론조사에선 김 후보가 6% 안팎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는 게 김 후보 쪽 설명이다. 김 후보 쪽은 “세월호 참사 이후 김 후보에 대한 지지 여론이 집안 문턱을 넘어 주부·여성들한테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인사 개편 이후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책임론’이 크게 희석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박근혜 그림자’가 드리운 선거지역 언론인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한 기자는 “대구 시민들은 ‘김부겸은 대구 사람이다, 정치 경륜도 있다, 쟈는(쟤는)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호감을 갖고 있다. 권 후보보다 인물 경쟁력이 높다. 권 후보가 여당 조직을 다 흡수하지 못하고, 김 후보가 (여당 지지에서 떨어져나와) 흔들리는 40대 주부들을 잡으면 해볼 만한 승부”라고 했다. 다른 기자는 “대구에는 ‘야당은 박근혜 발목 잡는 정당’이란 인식이 여전히 있다. 그래도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밀어줘야 한다는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 김부겸 구도’지만 ‘박근혜 그림자’가 드리운 선거라는 얘기다. 김 후보가 당선 이후 박 대통령과의 협력관계를 얘기하며 지역 정서를 자극하지 않고, 권 후보가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구 시민들은 대구의 상징인 ‘사과’ 모양 밑에 ‘Apple change’라고 적은 스티커를 만들어 배포했다. 대구의 ‘체인지’는 김부겸이라는 적극적 개혁과, 권영진이라는 안정적 변화의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다.
대구=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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