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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상을 ‘유배’시킨 이유는…

등록 2001-10-24 15:00 수정 2020-05-02 19:22

대검 청사 로비에서 테니스 코트 옆으로… 검찰의 수난시대 극명하게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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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1일 법의 날.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 로비에서는 청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가졌다는 상상의 동물 ‘해치’. 양을 닮았지만 이마 한가운데 뾰족한 외뿔이 독특하다. 고대 중국에서 ‘판관 포청천’ 같은 관리도 해결하지 못하는 미제사건이 있을 경우 해치의 외뿔을 이용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해치는 피의자에게 죄가 있으면 외뿔을 대고 죄가 없으면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한 예술대학장에게 의뢰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해치를 등장시킨 이유는 이해할만하다. 99년은 연초부터 검찰의 수난시대였다. 1월 초 대전 이종기 변호사 법조비리사건이 터졌다. 전별금 관행으로 검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은 데 이어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검찰수뇌부 동반사퇴’ 주장이 나왔고, 곧이어 사상 초유의 평검사 연판장 파동까지 겹쳤다.

그러나 평검사들로부터 사실상의 퇴진 요구를 받았던 김 총장이 법무장관으로 영전된 뒤로 검찰은 더 큰 곤욕을 치른다. 한달 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이 터졌고, 이 때문에 김 장관도 물러난다. 그 해 10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인 특검제가 동시에 2개 사건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평검사들 입에서 “우리는 보통검사”라는 자조가 튀어나왔다. 연말에는 옷로비 의혹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사직동팀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김태정씨가 구속수감됐다. 환골탈태해 시비곡직을 제대로 가리자는 뜻으로 들여놓은 해치상이 액물처럼 느껴질법 했다.

2000년 초 대검 관계자들은 검찰청사 안쪽으로 향해 있던 해치상의 외뿔을 현관쪽으로 돌려놓았다. 미신은 아니지만 검찰의 수난을 막아보자는 소박한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하는 사건마다 축소은폐론이 튀어나왔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와 김진태 부장검사사건에서 터져나온 검찰 간부 연루의혹은 검사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추락시켰다. 지금 해치상은 청사에서 밀려나와 테니스 코트 옆으로 옮겨져 있다. 해치상이 있던 자리에는 벗은 여성이 현악기를 다루는 ‘안단테’라는 새 청동상이 들어섰다. 검찰이 해치상을 자신있게 청사 안으로 들여놓을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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