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7일 유경근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기자들 앞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가족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대책위 이름의 호소문이 발표된 뒤 가족들의 ‘직접 행동’ 가능성이 처음으로 언급됐다. 그들의 인내는 바닥나고 있었다. 정부의 구조 작업과 진상 규명을 향한 가족들의 불신은 줄지 않고 있다. 분노는 더해가고, 절망은 깊어간다. 5월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된다.
“우리가 해양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후 일주일 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그런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엔 파도가 5~6m일 때도 잠수사들이 들어갔다. 처음 이틀 동안엔 왜 안 들어갔느냐는 거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어버이날에 만난 그의 왼쪽 가슴은 비어 있었다. “매년 딸이 직접 만들어 달아주던 카네이션”이 올해엔 없었다. 사흘 전 어린이날엔 딸과 소박한 외식을 하지 못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와~ 감탄하며 사진을 찍던” 딸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유경근 대변인은 “올해 어버이날·어린이날은 예년과 많이 다르고 앞으로도 계속 다를 것 같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전 딸 예은양은 아빠를 안심시키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해경이 구조하러 왔어요. 순서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구조돼서 나갈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 표시로 끝난 딸의 문자는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화인으로 남았다. 예은양이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분류되던 날(4월23일) 그는 페이스북에 짧게 썼다. “우리 예은이, 여전히 예쁘네요.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경기도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화랑유원지) 인근에 마련된 대책위 사무실(와스타디움)에서 그는 아직도 실종자 구조가 완료되지 않은 현실을 한탄했다.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였던 그는 대책위가 확대·개편(실종자·생존자 포괄)되면서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날 저녁 유 대변인과 가족들은 KBS 보도국장의 발언(“교통사고 사망자에 비해 많은 게 아니다”)에 분노하며 청와대 앞까지 찾아가 강하게 항의했다.
합의해 구조 방법을 제시하라고?-호소문 첫 번째 요구사항이 ‘실종자의 조속한 구조’다. 사고 한 달을 앞둔 시점의 최우선 요구가 사고 발생 직후의 요구와 동일하다. 그만큼 구조 작업을 믿지 못한다는 뜻인데.=그렇다. 가장 중요했던 사고 초기 구조 작업이 이틀 이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도록 방치됐다. 사고 첫날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구조 책임자들은 함정·항공기 수와 잠수사 수를 언급하면서 차질 없이 구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가족들이 배를 빌려 타고 사고 현장을 갔을 때도 해경 단정이 세월호의 선수를 빙빙 돌 뿐 구조는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울면서 도대체 뭘 하고 있냐고 소리쳤다. 약자는 가족들이다.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달라고 요청했다. 옳은 방법인지도 모른 채 팽목항 주변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종합해 안을 제시했다. 배를 약간 들어올려 수심을 확보해주거나 배를 조류가 약한 곳으로 움직이는 방법도 이야기했다. 해경은 ‘가족들이 요구하고 모두 동의하는 방법을 제시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답했다. 어떻게 구조 방법을 우리한테 제시하라고 하나. 구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철저한 진상 조사’ 요구도 사고 초기 이틀 동안 구조가 지연된 이유를 밝히는 데 맞춰져 있다.=첫날부터 지금까지 해경이 하는 말은 조류가 세서 구조 여건이 나쁘다는 얘기다. 우리도 안다. 하지만 사고 첫날 밤의 바다는 가장 잔잔했다. 우리가 해양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후 일주일 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그런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엔 파도가 5~6m일 때도 잠수사들이 들어갔다. 처음 이틀 동안엔 왜 안 들어갔느냐는 거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수사 방향이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배제한 채 세월호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려 한다는 의구심도 있다.=‘안전한 나라’를 만들려면 선장 등만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사고는 일어나게 돼 있다. 문제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신속한 구조로 피해를 최소화해 ‘국가가 우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을 국민이 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면서 그 사실을 깨우쳐줬다. 그래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해경 대답 받고 나서 행동 시기 결정-검찰 수사가 의혹을 남길 땐 직접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했다.=진상 규명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것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만일을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확보할 수 있는 증거 자료나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공동으로 진상 규명과 이후 대응에 필요한 모든 법률 대리를 맡기로 했다. 그들의 첫 번째 역할은 진도에서 구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일이다.
-‘직접 행동’의 시점은 어떻게 결정하나.=수사 내용과 진행 과정을 모르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시점을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판단 기준은 있다. 최근 해경이 수거한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메모리칩을 가족의 동의 없이 들여다본 정황이 있었다(메모리칩에 저장된 ‘문제적 내용’을 지워 초기 구조 상황의 난맥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경은 휴대전화 주인의 신원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메모리칩을 빼지 않고도 기기 일련번호를 통신사에 확인하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5월7일 호소문에서 휴대전화 수사 내용 공개를 요구했다. 검찰로부터도 수사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우리의 요구에 해경과 검찰이 화답할 차례다. 그 대답 여부에 따라 행동의 시기도 결정될 것이다.
-특검 도입이나 청문회 개최 및 특별법 제정 요구도 있었다. 최근엔 ‘철저한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 ‘국민 안전대책 강구’ 등의 포괄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가족들 사이에 다양한 요구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이견이 있어서는 아니다. 최우선 과제는 남은 실종자들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5월9일부터 2학년 학부모들이 반별로 돌아가면서 진도에 내려가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할 계획이다. 특검이나 청문회, 특별법 제정 등 구체적인 요구도 며칠 사이에 정리될 것이다.
-5월7일 저녁 정부가 가족들 앞에서 지원대책을 설명했다. 만족할 만한 내용이 있었나.=혼선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검토 중, 협의 중이라거나 확정되지 않은 내용도 포함돼 있었고 기존에 있던 정책들을 가져다놓은 것도 있었다. ‘요청하면 검토하겠다’는 설명도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국가의 시혜처럼 여기게 했다. (정부가 내놓은 ‘가족지원 서비스’는 10개 부처가 마련한 19개 지원책을 담고 있다. 장례 및 심리안정 지원이나 지방세 납부 기한 연장, 통신비 감면, 중소기업·소상공인 자금 융자, 휴가·휴직 사용 및 예비군 훈련 면제 등이 대부분이며 실질적·고정적 생계비 지원은 없다. ‘긴급복지 지원’ 명목으로 4인 가구 기준 108만800원을 1회 지원하는 내용이 전부여서 가족들의 비난을 샀다.) 안산을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해놓고도 실질적인 후속 시책은 하나도 나온 게 없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착석 사과’로 비판받은 뒤에야 진도 추가 방문 등을 통해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좀더 신속하게 사과했으면 좋았겠지만 처음보다는 나아졌다고 본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좋겠다. 가족들 중엔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에 변화가 있느냐다.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인양 시점은 논의되고 있나.=전혀 없다. 아직 실종자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인양 시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이다.
안산=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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