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본주의, 참사의 문고리를 잡고 웃다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탐욕’… 구조와는 관련 없는 민간단체로 ‘해양구조협회’ 꾸려놓고

특혜성 보조금 유입, 혼란스런 구조 현장에서 공권력 스스로 무능을 인정하는 아이러니
등록 2014-05-14 15:05 수정 2020-05-03 04:27
사고 이틀째인 지난 4월17일 오전 사고가 일어난 전남 진도 해상에서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사고 이틀째인 지난 4월17일 오전 사고가 일어난 전남 진도 해상에서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재난은 당사자에겐 절망이지만 시장엔 기회다. 기괴한 셈법이다. 절망을 복구하는 과정 자체가 수요를 창출하는 까닭이다. 재해 발생시에 경제성장률은 평시보다 오히려 웃돈다는 연구가 ‘파괴의 경제학’이라고도 불리는 재난경제학 안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어떤 극단적인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재난을 틈타 시장의 외연을 확장한다. 이른바 ‘재난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다. 민간에 국가의 기능을 아웃소싱한 정부는 재난을 막을 능력이 없다. 발생한 재난 상황을 해결할 능력도 갖지 못한다. 국가의 부수적인 분야를 먹고 살았던 시장이 핵심 기능까지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은 재난을 기회로 공공 영역을 더욱더 잠식해 들어간다. “이 정부는 무능하고 대중은 충격에 빠져 있으므로.”

결국 문제는 돈이었을까. 바다 밑에서 여린 손들이 붙들었던 희망을 하나둘 놓아버릴 때, 때 묻은 손들은 뭍에서 흥정의 전표가 될 구조 실적을 단단히 붙들었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20여 일 동안 한국 사회가 쉼없이 분노한 것은, 재난의 절망을 밟고 선 자본의 욕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이라는 핵심적인 책무마저 시장에 내준 뒤였다. 충격과 절망을 엔진 삼아 달리는 재난자본주의의 징후를 세월호 참사 속에서 짚어봤다.

100만달러짜리 계획 그리고 카트리나

2005년 8월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풍 중 하나로 기록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무려 25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직접적인 피해보다 오랫동안 미국인들을 절망스럽게 만든 것은 미국 정부의 무능력이었다. 미 연방긴급사태관리국(FEMA)은 그로부터 1년 전인 2004년, 루이지애나주로부터 허리케인 대비자금을 요청받았지만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FEMA는 민간기업에 100만달러에 가까운 돈을 주고 재난 계획 설계 용역을 맡겼다. 매뉴얼은 완벽했지만, 정작 카트리나가 닥쳤을 때 매뉴얼대로 된 것은 없었다. 후속 조처를 취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그악스러운 것은 자본의 탐욕이었다. 그해 9월 뉴올리언스는 미국 내 ‘그린존’(이라크 내 미군 주둔지역)이 되었다. 이라크전으로 몸집을 불린 민간 경비업체들이 뉴올리언스로 향했다. 주검 처리를 맡은 상조업체는 최대한 천천히 주검을 수습해 비용을 극대화했다. 부시 정부는 공공 분야 노동자의 급여를 위한 긴급자금을 요청하는 뉴올리언스시의 요청을 거부했다.


“구조 현장에선 민·관·군의 공조가 필수적이어서 그동안 모든 민간 단체가 동등하게 참여해왔습니다. 세월호 구조 현장은 공공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운영이에요.” -황대영 한국수중환경협회 회장


돈 때문에 사고를 막지 못했고, 사고가 일어나자 다시 돈을 좇는 이들이 끼어든다. 정부는 무능해선지 부패해선지, 적극적으로 그들의 손아귀에 책임과 권한을 내준다. 재난 현장은 돈벌이의 장이 된다. 캐나다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클라인은 저서 에서, 이처럼 재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의 공습을 ‘재난자본주의’라고 이름지은 바 있다. 10년 전, 태평양 건너에서 벌어진 이 재난극에는 기시감이 있다. 재난의 스케일이 다르고 유발 요인이 다르지만, 비극의 본질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세월호 참사와 많이 다르지 않다. 재난을 취하고 재난을 배설하는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한 푼이라도 건지려는 자본의 탐욕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단 사실은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명백해지고 있다. 세월호는 실을 수 있는 최대 적재 화물량(1070t)의 세 배에 달하는 화물(3608t)을 싣고 있었고, 이미 20년 가까이 사용해 낡은 선박에 승객을 더 싣기 위해 객실을 늘렸다. 수사본부는 지난 5월8일 김한식(71) 청해진해운 대표를 체포해 세월호의 과적 운항 등을 실질적 오너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보고했는지 등을 추궁했다. 구속된 안아무개(59) 청해진해운 해무이사는 세월호의 증축을 맡은 업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도 받고 있다.

물신주의가 가져온 재난을 목격한 것이 우리 사회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충남 태안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2007년)…. 한국 사회에서 인적 재난은 대개 비용을 아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에 부패한 관료가 눈감아주면서 발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재난’,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가져온 재난은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 새로운 충격이 아니었다. 더 큰 충격은 재난의 현장까지 밀고 들어온 자본의 셈법, 그러니까 ‘재난의 자본주의’에 있었다.

“구조나 수색에선 정부보다 민간 실력이 낫다”

누구보다 먼저 세월호 참사 현장의 이상 기류를 감지한 것은 오랫동안 구조 현장을 뛰어다닌 민간 잠수부들이었다. “구조 현장에선 민·관·군의 공조가 필수적이어서 그동안 모든 민간 단체가 동등하게 참여해왔습니다. 세월호 구조 현장은 공공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운영이에요.” 30여 년의 잠수·구조 경력을 가진 황대영 한국수중환경협회 회장의 비판이다. 협회 소속 민간 잠수부들은 지난 4월17일 전남 진도 사고 해역에서 부표·유도선 설치 작업을 하고도 18일엔 입수 허가를 받지 못했다.

날씨가 아니라 사람이 이들을 막았다. 해경은 민간 잠수부들에게 접수처에서 사전 등록을 하고 입수할 것을 지시했다. 접수를 맡은 곳은 해경 산하 법정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였다. 해양구조협회와 해경은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구조 참여를 지연시켰고, 구조 작업은 해양구조협회의 회원사인 ‘언딘마린인더스트리’(언딘)가 독점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 민간 잠수사들의 주장이었다. 한술 더 떠 해경은 “구조나 수색 이런 점에선 오히려 (정부보다) 민간(언딘)이 실력이 낫다”고도 말했다.

“해경이 국가적 참사 앞에서 이권을 앞세운 정황도 놀랍지만, 사실 끔찍한 것은 공권력 스스로가 무능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해경 관계자는 대놓고 언딘이 해경보다 낫다고 인터뷰했다. 앞으로 선박 사고가 나면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하지 말고, 더 능력 좋은 민간 구조업체와 계약해 일을 처리하라고 정부가 이야기한 셈이다. 이런 식이면 아마도 조만간 여객선 요금에는 옵션으로 ‘민간 구조업체 이용금’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의 지적이다.

“회원 모집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 [%%IMAGE2%%]

해양경찰청 산하 법정단체인 해양구조협회가 발족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난구호법 개정안이 2012년 8월 시행되면서 단체가 꾸려졌다. 개정 법안은 “해수면에서의 수색 구조·구난에 관한 기술 등의 연구·교육훈련”과 “행정기관이 위탁하는 업무의 수행” 등을 위해 ‘한국해양구조협회’를 설립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인명 수색·구조를 위해 설립한 협회라고 하지만 회원사들의 면면은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6개 조선사가 이름을 올렸고 당연직 회원으로 한국선급·선박안전기술공단 등 선박 안전을 검사하는 법인, 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 선주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선주협회 등이 포함돼 있다. 해난 사고가 생기면 구난·구조에 협력하기보단 해경이 수사해야 할 단체들이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은 모두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해운산업의 이권이 난마처럼 얽힌 이 ‘민간 단체’에서 언딘의 김윤상 대표이사는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함께 부총재직을 맡아왔다. 김 전 청장이 지난 5월7일 결백을 호소하며 부총재직을 사직했지만 해양구조협회와 해경, 언딘의 유착관계에서 의혹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해경은 왜 이 협회를 만들었을까.


“저희들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구조) 네트워킹을 잘 만들어놓고 활성화를 시키면 예산도 절감되고.” -2011년 10월 임창수 해양경찰청 차장


“저희들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구조) 네트워킹을 잘 만들어놓고 활성화를 시키면 예산도 절감되고.” 2011년 10월 국회 법안심사소위 자리에서 ‘수난구호법 전면 개정안’을 두고 임창수 해양경찰청 차장이 내놓은 설명이다. 해상 치안을 담당하는 해경 간부가 국민의 안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두고 ‘비용’과 ‘예산 절감’을 운운할 때, 세월호 참사의 비극은 예고돼 있었는지 모른다. 끝내 국가의 책임을 놓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였던 김진애 전 의원은 “공공의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며 입법 반대 의견을 냈다. “해양 사고는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일어났을 때 지휘가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저는 공공에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양경찰청에서는 (구조에서) 손 떼는 방식이 될까봐 굉장히 우려스럽고요.” 이어 그는 말했다. “보통 이렇게 연합회 만드는 일이 대개 정부에서 보조금 받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보조금)을 빼고서 한다고 했으나, 이렇게 해놓고 나면 뭔가 보조가 안 들어가려야 안 들어갈 수가 없어요.”

김 전 의원의 예상은 적중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설립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해양구조협회를 공익활동지원사업자로 선정해 5900만원의 보조금을 줬다. 지난 4월에도 국무총리실이 2천만원의 보조금 지급을 승인했다가 논란이 일자 승인을 취소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해경은 반강제적인 유료 회원 유치에 나섰다. 해양구조협회 회원 1만여 명 중 해양경찰관이 2300여 명에 이른다. 지난 1월에는 일선 해양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해양구조협회 회원 모집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 방안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협회에 가입한 이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딘에 대한 정부 투자가 여러 경로로 이뤄진 점도 의혹을 산다. 언딘의 2013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최대주주인 김윤상 대표이사가 지분의 64.5%를 보유한 데 이어 정부 투자기관이 29.92%의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도 적지 않다. 2012년 5760만원 수준이던 정부 보조금은 지난해 2억3409만원으로 올랐다. 중소기업청과 해양기술원에서 연구과제 지원 용도로 제공한 연구비다. 기술보증기금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30억원이 넘는 차입금의 지급보증을 해줬고 성남시는 언딘이 시중은행에서 빌린 5억원의 차입금에 이자를 일부 내줬다.

김경율 공인회계사는 “정부 투자와 보조금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대개 5~10% 수준에 그치는 지급보증이 2013년 매출액(151억원) 대비 30%에 이르는 점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의혹을 받아온 언딘은 지난 5월7일 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의 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 우리 내부적으로 인양을 포기하자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업무가 아니게 된 ‘경비’

기실 ‘재난의 자본주의’는 언딘이나 맹골수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무능을 극단적 형태로 세월호 참사에서 보고 있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국가가 담당하던 국민 안전의 상당 부분을 이미 오래전부터 시장에 이관해왔다”고 한지원 연구실장은 지적했다. ‘경비’ 업종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민간 경비산업은 10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몸집을 불렸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 계열사 에스원은 2000년 매출액이 3천억원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1조3천억원에 이른다. 경비업체 수도 2001년 1900개에서 3600개로 급증했다. 등록된 경비원 수는 1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경비는 이제 경찰의 업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경비는 ‘돈’이 있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됐다는 의미”라고 한 연구실장은 말했다.

나오미 클라인이 참사 이후 뉴올리언스의 상황을 ‘재난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격리 또는 분리 정책)’라고 설명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얼마 전만 해도 재난은 사회적 단합이 일어나는 시기로 여겨졌다. 즉, 하나로 뭉친 지역사회가 구역을 따지지 않고 합심하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러나 재난은 점차 정반대로 변하면서 계층이 나뉘어 있는 끔찍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경쟁과 돈으로 생존을 사는 세상 말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직후 미국토목학회는 미국이 도로·교각·학교·댐 같은 기반시설 관리에서 상당히 뒤처졌다고 지적했지만, 관련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 대신 미국 내 재난 대처 산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5년 미국 애틀랜타의 한 도시는 연간 2700만달러를 주고 컨설팅 업체에 ‘지역정부’의 기능을 맡겼다. 세월호 참사 뒤 분노한 어떤 시민은 “정부를 아웃소싱하라”고 외쳤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정부를 아웃소싱하는 순간, 한국 사회에서 재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걸.

징후를 주시하라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자본주의’의 징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안전이 정부로부터 균등하게 공급되지 못하면 안전이나 치안의 문제를 개인이 스스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특히 아파트 단지나 교외 지역의 타운하우스로 이미 주거 형태 자체가 블록화돼 있어 ‘안전의 계급화’가 나타나기 쉽다. 정부에 대한 분노가 그 기능의 무력화로 이어지기보단 공공 영역의 강화로 나타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

, 나오미 클라인(2008)

72호(2012)

, 찰스 페로(2013)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