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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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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회장님의 연봉

최저임금 노동자의 2315년분 연봉받는 회장님들, 최저임금제가 있다면 최고임금제는 왜 안 될까
등록 2014-04-10 14:36 수정 2020-05-03 04:27
2007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등 재벌 총수들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간담회를 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한겨레 자료

2007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등 재벌 총수들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간담회를 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한겨레 자료

300억원.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회사에서 받아간 연봉 액수다. 워낙 ‘어마무시’해서 와닿지 않는, 별나라 얘기다. 최저임금(시간당 5210원)을 받은 노동자는 살아생전에 만져볼 수 없을 돈이다. 2315년(월 209시간 근무 기준)을 죽어라 일해야 한다. 대한민국 평균임금을 받는 노동자(5인 이상 사업체 기준 월 311만원)라면, 805년이 걸린다. 단, 한 푼도 쓰면 안 된다. 연봉 ‘킹’ 1~3위인 최태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140억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반납한 200억원 포함해 331억원)의 연봉 합계인 772억원은 최저임금 노동자 5957명의 연봉과 맞먹는다.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주요 상장사 등기임원들의 개별 보수가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회장님의 월급봉투’가 살짝 드러났다. 지난해 대부분의 시간을 구치소에서 보낸 어떤 회장님들이 수백억원을 받아간 근거는 무엇일까? 회사가 적자인데도 수십억원을 챙겨간 다른 회장님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별에서 온 그대’이기 때문에? 한 수 위인 분들도 있다. 애초 외계(미등기임원)에 머물렀거나, 보수 공개를 앞두고 잽싸게 외계로 날아갔거나. 이분들의 연봉은, 여전히 쉿! 비밀이다.
이왕 별나라 얘기를 하는 김에 은 조금 낯선 논의를 꺼내보려 한다. 최저임금제가 있다면 최고임금제는 왜 안 될까? 기업 임원들의 임금 상한선을 정해두면, 어마무시한 임금 불평등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먼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미국·프랑스·스위스 등에선 벌써 현실 세계로 내려온 얘기다. _편집자

“최고경영자(CEO)의 보수가 직원의 15~20배를 넘지 않도록 하자.”

좌파 경제학자나 노동조합의 주장이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1986년 펴낸 에서 “최고경영진의 거품 낀 보수 체계를 개선하라”며 제안한 얘기다. 막대한 임원 보수는 기업 성과와 상관관계가 거의 없고, 오히려 조직 내 불화를 조장해 ‘우리’라는 일체감 형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국민 1인당 연간 소득을 2만5천달러 이하로 제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춧돌과 유리천장

언뜻 불온한 상상으로 비친다. 그러나 낯설지가 않다. 국내에선 아직 불붙지 않은 논의지만,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등에선 상상이 이미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에서는 몇 년 전 공기업과 공공금융기관의 CEO 임금 상한선을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CEO 임금을 노동자 최저임금의 12배 이하로 묶어두자는 ‘1:12 법안’이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월스트리트 금융회사 임원들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보너스를 챙겨가자, 2009년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 임원들에게 성과급이나 퇴직금 지급을 제한하는 별도 법(‘경제회복 및 재투자법’)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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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임금상한제, 혹은 최고임금제다. 임원 임금의 적정치를 사회가 정해주자는 뜻이다. 최저임금제가 임금 밑바닥을 떠받쳐주는 ‘주춧돌’이라면, 최고임금제는 임금 피라미드의 꼭짓점을 눌러주는 ‘유리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다. 그런데 그 대가가 정당하지 못하다. 시장이 임금 불평등을 바로잡는 균형추 구실을 못하니, 국가가 개입해서 한쪽은 올려주고 한쪽은 내려주자는 취지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런 논의는 아예 입을 떼기도 어려웠다. 대기업 임원들의 보수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탓이다. 특히 대기업 회장님들의 연봉은 ‘일급비밀’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판도라의 상자’가 빼꼼 열리게 됐다. 주요 상장회사들이 사업보고서에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 기준 등을 기재하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개별 임원의 보수 공개 기준은 5억원으로 정해졌다. 그동안은 임원 보수 총액 한도만 공개하도록 돼 있어, 개별 보수는 어림짐작만 할 수 있었다.

주요 상장사들이 지난 3월31일까지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등기임원들의 연봉 수준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5억원 이상 연봉을 받은 등기임원은 총 292명(51개 그룹)이었다. 가 이 가운데 30대 그룹 계열사 상장사 173곳만 따로 떼어내봤더니, 최고액 연봉자들의 평균연봉(20억4725만원)은 직원 평균연봉(6445만원)의 31.8배였다. 임원 연봉이 높은 상위 10개사의 경우, 최고액 평균연봉(62억7천만원)이 직원 연봉(8290만원)의 75.7배나 됐다.

김승연 회장, 200억원 반납하고도 총액 3위

몇몇 재벌 총수는 ‘황제노역’과 맞물려 공공의 적이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여러 집계에서 ‘다관왕’에 올랐다. 등기임원으로 있는 4개 계열사에서 받은 돈이 301억500만원에 달해 연봉 총액 1위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직원 평균임금의 167배(112억원)를 받아가 임금 격차에서도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회삿돈 수천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법정 구속돼 1년3개월째 구치소에 있는 터라 회사 경영에 보탬이 되지도 않았는데 수백억원을 챙겼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SK그룹 쪽은 “2012년 성과급이 지급돼 액수가 커졌고 급여는 94억원”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5개 계열사에서 331억원을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됐다가 지난 2월에야 풀려났다. 김 회장은 급여 200억원을 회사에 반납했음에도 연봉 총액에서는 3위였다. 이재현 CJ그룹 회장(47억원)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39억원)도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 ‘고액 연봉’을 받아 입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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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급여는 톱시크릿이다. 개인적으로 쓴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는 경우도 잦고, 임원들 성과급이 회장에게 돌아서 흘러 들어간다는 의심이 드는 특별상여금 지급도 많다.” 한 대기업 재무팀에서 일했던 ㅊ씨의 고백이다.


회사가 적자인데 얼굴에 철판을 깐 회장님들도 있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계열사인 GS건설에서 받은 17억2천만원을 포함해 지난해 총 38억9200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GS건설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조314억원, 이자비용만 1022억원이 들어갔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회사가 지난해 당기순손실 427억원을 기록했는데, 42억4100만원을 받았다. 주력사업인 해운업황 부진으로 회사가 6천억~7천억원대 순손실을 입었는데도,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한진해운 17억원 포함 29억원)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상선 8억8천만원 포함 25억원)의 지갑은 두둑하게 채워졌다. 보통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 임금이 동결되거나 깎이는 것과는 딴판이다.

재벌회사가 아닌 KT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29억7900만원을 챙겼다. KT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0% 줄어드는 등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퇴직금 11억5300만원을 빼고도 표현명 사장(8억9천만원)보다 2배 이상 받아간 근거는 회장 개인의 물욕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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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등기임원들이 연봉을 얼마 받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적정한 연봉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사업보고서에는 대부분 연봉 액수만 나온다. 임원 성과 보상 기준이 매출인지, 주가인지 등 뭘 근거로 왜 이렇게 받는지가 빠져 있다. 우리도 외국처럼 보상 근거를 자세하게 공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기업 인사·재무 컨설팅업체인 타워스왓슨의 한국법인 김기령 대표의 지적이다.

미국 SEC의 상당히 구체적인 규정

SK이노베이션의 예를 들어보자. 최태원 회장은 급여 23억9999만원(2013년 연봉)과 성과급 88억원(2012년 말 기준의 경영성과급), 복리후생 지원금 5천만원을 받았다. 같은 회사 등기이사인 구자영 대표이사의 연봉은 급여 7억9천만원과 성과급 5억1700만원, 복리후생 지원금 5120만원이다. 성과급이 타깃 인센티브, 초과이익배분제(PS·프로핏 셰어링)로 구성된다는 간단한 설명만 나올 뿐, 회사 경영 성과에 구 대표이사와 최 회장이 어떻게 다르게 기여했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과급 구성 항목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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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1992년 마련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임원 보수와 관련된 규정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10만달러를 초과하는 상위 임원 5명의 보수를 공개하고, 정해진 도표 안에 보너스와 스톡옵션, 기타 다른 보상액을 구분해 적도록 하고 있다. 골프 클럽 회원권을 사줬거나, 임원이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했다면 이것도 금액으로 환산해 적어야 한다. 임원 보수가 회사 경영 성과와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동종 산업과의 비교를 포함한 회사 성과와 주주 수익률을 비교하는 그래프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일본에선 2010년부터 각 회사 결산보고서에 임원 보수 총액뿐 아니라 현금·스톡옵션 등 지급 형태, 최종 손익과 보수와의 상관성 등을 명시하도록 했다.

“CEO의 적정한 임금 수준은 ROA(총자산수익률)나 주가 등과 연동해 결정돼야 하는데, 한국에선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다. CEO가 임명하는 사내·외 이사들이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해이도 나타난다.” 프랑스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정동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원 임금이 평균 직원 임금의 10~20배 수준에서 형성되는 프랑스·독일·일본과 달리 한국 경영진의 임금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임원 보수가 이처럼 ‘수수께끼’투성이인 것은 재벌이라는 특수한 기업 집단의 존재 탓이다. 대기업 총수들은 임원 연봉을 당근과 채찍처럼 충성심을 시험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계량화된 성과급 책정 기준이 없거나, 있다 해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회장님 급여는 톱시크릿이다. 개인적으로 쓴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는 경우도 잦고, 임원들 성과급이 회장에게 돌아서 흘러 들어간다는 의심이 드는 특별상여금 지급도 많다.” 한 대기업 재무팀에서 일했던 ㅊ씨의 고백이다. 재벌 총수 자신은 물론 임원에 대한 투명한 보상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09년 삼성전자가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보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몇몇 기업은 보상 시스템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늉내기에 불과하다.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판도라의 상자’를 지켜낸 회장님들도 있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는 이번 개별 임원 보수 공개 논란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경영에 참여하는 회사의 등기임원으로 올라 있는 사람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이건희 회장의 사위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도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이번 공개 대상에서 미등기임원은 제외됐기 때문에, 이들이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는 여전히 ‘일급비밀’이다. 이같은 허점을 노려 재빠르게 움직인 재벌 오너들도 있다.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 부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2주 앞두고 등기임원에서 사퇴해 눈총을 샀다. 부부인 두 사람의 지난해 연봉은 97억원에 이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도 지난해 등기임원을 사퇴하는 바람에 이번에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지난 4월2일 민병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임원 보수 공개 대상을 ‘5억원 이상 미등기임원’까지 포함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4월4일 리포트를 내어 “등기임원 여부와 무관하게 CEO, CFO와 보수총액 상위 3명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대상을 확대하고, 이사회 내 보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논의의 장은 넓어지고 있다. 대기업 임원 보수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에서 한 발짝 더 밀고 나가보자. “예전엔 대기업 오너들이 배당금 말고 급여를 많이 받아가면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많이 안 가져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분위기다. 이를 바탕으로 상위 0.1%의 소득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임금 격차는 벌어진다. 그런데 매년 최저임금을 정할 때마다 기업 쪽에선 ‘최저임금이 높다’고들 한다. 임금을 시장에만 맡기는 데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이 있다면, 최고임금도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동당은 지난 4월1일 정책논평을 통해 ‘CEO 임금상한제 도입’을 제안했다. 노동당은 2012년 총선에서 민간기업 임원은 최저임금의 100배(당시 기준 11억4866만원), 공기업 임원은 최저임금의 10배(1억1486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을 만들자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는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지역 공기업 CEO에 대한 임금상한제를 도입하는 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자체가 직간접으로 고용한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의 최소 120% 이상 수준의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것과 연동해서, 지역 내에 있는 공기업 CEO 임금이 생활임금의 10배가 넘지 않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살찐 고양이(CEO)’가 너무 많은 음식(보수)을 먹지 않도록 목에 방울을 달자고 했던 스위스 ‘1:12 법안’의 한국판이다.

10배로 할 것인가 20배로 할 것인가

이같은 제안은 아직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하긴 하다. 논쟁의 여지도 많다. 임원에 대한 성과급을 내부 경쟁을 촉발해 회사 경영을 활성화하는 ‘당근’으로 강조하는 경영학적 관점에선 이해 못할 일이다. “전문경영인이나 임원들에 대한 성과급은 골프 경기의 상금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1등에게 상금을 몰아주는 토너먼트 방식이다. 2·3등과의 격차도 벌려놔서 조직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이건 ‘분배의 정의’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의 설명이다. 곁가지일 수도 있으나, 최고임금의 적정선을 어디에 둘 것이냐도 불분명하다. 10배냐, 12배냐, 20배냐에 대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탓이다. 스위스에서는 최고임금과 최저임금 간 격차가 사회적으로 용인됐던 1980년대를 기준으로 12배라는 숫자가 정해졌다고 한다. 국내에선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대기업 사장의 월급이 가장 적은 월급을 받는 직원의 몇 배 정도면 적절한가’를 묻는 설문조사(성인 2만1050명 대상)를 진행했더니 ‘1:12.14’가 적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선 최고임금제라는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몇 배로 제한하더라도, CEO들은 자기 월급을 올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 규모를 줄이는 대신 급여를 올려주는 꼼수를 부릴 거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연구조정관


아직 논의가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윤진호 교수는 “분배의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최고임금제나 임금상한제는 얼마든지 현실 가능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유의미하다. 회장님들의 억대 연봉은 사실상 무노동의 대가라서, 급여보다는 배당의 성격이 짙다. 이는 기관투자가들이나 일반 주주들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임금 격차가 커질수록, 사회나 조직 내부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 그러면 직원들은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 당연히 기업의 장기적인 경영 성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너무 불평등해도 경제적 효율성은 떨어진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뼈아픈 경험칙이 이를 증명한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이후, 미국에서 최상위 1%의 소득을 전체 평균소득의 35배 이하로 제한하는 조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결국 불평등 완화를 통한 자본주의 구하기가 목적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선 최고임금제라는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몇 배로 제한하더라도, CEO들은 자기 월급을 올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 규모를 줄이는 대신 급여를 올려주는 꼼수를 부릴 거다. 성과급을 대기업 내부에서 일방통행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주주총회의 견제 권한을 강화하고,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사회·경제적 통합을 위해 최고경영진 임금과 평균임금 격차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비영리기관인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는 지난해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상 정책은 물론 임원 보상과 임직원 보상 간의 격차 및 각각의 증가율까지도 비교해 싣도록 하는 내용의 ‘지속 가능성 보고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임금 격차 해소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전제조건이 됐다는 뜻이다.

78.1% “상한선 둬야”

이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4월1~3일 벌인 긴급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2027명)의 78.1%(1583명)가 “국내 기업도 최고경영자나 임원 보수에 상한선을 둘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올봄 직장인들의 마음은 뒤숭숭하다. 때이른 벚꽃은 마음만 달뜨게 해놓고 금세 져버렸다. 그러나 ‘회장님의 월급봉투’ 논란은 쉬이 시들지는 않을 듯하다. 최고임금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질주를 막을 브레이크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꽃망울이 뒤늦게 터지기 시작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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