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6개월 만이었다.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장은 곧이어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고통의 세월을 감내해온 피고인과 가족들의 고통과 설움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안고 사는 피해자들이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한다.” 이준호(65)씨와 어머니 배병희(88)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조작간첩 동지’들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2009년 7월10일 서울고등법원 403호 법정의 풍경이다.
‘간첩’을 변론한 ‘사상 검사’ 오제도아내와 두 딸, 어머니를 모시는 서민 가장으로 대우자동차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이준호씨는 1985년 1월11일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로 연행됐다. 어머니 배병희씨와 함께였다. 39일간 영장 없는 불법 구금 상태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당한 채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너 하나쯤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른다.” 공포의 시간은 수사관들이 원하는 답변을 할 때까지 지속됐다. 결국 전쟁 때 월북한 숙부가 두 차례 고향집을 찾아왔고,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허위 자백을 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어머니를 볼모로 한 고문이었다. “네 어머니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려면 우리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수사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한글을 더듬더듬 겨우 읽을 줄이나 알던 육순의 어머니는 고문으로 울부짖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수사관들이 써온 진술서를 그리듯이 베껴 썼다. 줄줄이 끌려온 누나와 매형도, 숙부와 숙모도 “네 동생, 조카를 살리려면!”이라는 수사관들의 ‘천륜’을 이용한 수사로 서로 인질이 되어 허위 자백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모자 간첩사건’은 ‘제조’됐다.
1심 재판에 가서야 이준호씨는 “고문과 협박, 회유를 받아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1972년 숙부가 고향집을 찾아와 30분간 머물다 간 일이 있지만, 지령을 받은 일도 간첩 노릇을 한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변론을 맡은 오제도 변호사도 “신고하지 않은 잘못은 있겠지만, 간첩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제도가 누구던가? 1946년 정식 시행된 제1회 조선 판검사 시험에 합격하고, ‘건국 전후의 황량한 타공전선에서 멸공사령탑의 총지휘자’ 칭호를 들으며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과 진보당 조봉암 사건 등 굵직한 국가보안법 사건을 도맡았던 ‘사상 검사’다. 오제도 변호사는 “내가 바로 국가보안법 책도 쓰고 만든 사람인데, 이 사건은 말도 안 된다. 이렇게 하려고 보안법을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반공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모진 구타와 잦은 회유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며 ‘간첩’을 변론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번 간첩으로 만들어진 이상 헤어나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법원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준호씨는 옴짝달싹할 수 없이 간첩이 되었고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어머니는 3년6개월을 받았다. 납득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에 오제도 변호사는 1989년 9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1992년 2월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이준호씨는 7년의 만기를 꼬박 채우고 풀려났다. 그동안 못다 한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고 취직 전선에 나섰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아도 일주일이 못 되어 그만둬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직장에 찾아와 이것저것 캐묻는 경찰의 감시 때문이었다. 보안관찰법에 의한 신고 의무는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강요했다. 담당 경찰에게 “내 사건은 조작되었고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재범의 우려’가 있는 보안관찰자가 됐다. 자신으로 인해 딸들의 앞길이 막히는 일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큰딸은 결혼을 약속하며 사귄 남자네 집에서 헤어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실을 전하던 딸의 등을 떠밀어 외국으로 가게 했다. 이 땅에서는 간첩 낙인을 피할 길이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대법원의 전대미문 논리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 고문 조작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국민’ 아닌 ‘비국민’ 혹은 ‘불가촉천민’이었다. 그들에게 ‘국가’란 생사람 잡아서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더러는 목숨을 빼앗는 곳이었다. 진실을 밝히려 하면 오히려 범죄자인 양 핍박해서 입 다물게 만드는 곳이었다. 언론까지 장악한 국가는 진실을 죽이는 것쯤 어렵지 않았다. 그것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하는 피해자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로 기나긴 세월을 버텨야 했다.
이들에게 국가가 던진 한 줄기 빛이 바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었고, 그에 따라 설치된 기구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였다. 위원회를 통해 많은 사건의 진실이 하나둘 밝혀졌다. 진실 규명 결정을 기초로 법원은 재심 재판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벗겨줬다.
억울한 세월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손해배상 소송이 시작됐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려면 많은 장애물을 통과해야 했다. 피해를 당한 일가친척까지 소송에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여전한 두려움 탓이다. “공연히 국가를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가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겨우 가족들 몇 명만 2010년 5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결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국가는 2011년 6월 상고했다. 그로부터 2년6개월 뒤인 2014년 1월23일 마침내 대법원이 판결을 했다. 1·2심과 달리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을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과거사 사건의 소멸시효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국가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소멸시효’는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 상태에 규범력을 인정해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오랜 기간 동안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한 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로서 법률의 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에는 원칙적으로 민법상 시효 규정이 적용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시효로 인해 소멸한다’(민법 제766조, 국가재정법의 제96조).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 경우에 준하는 6개월 내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준호씨는 출소한 지 3년 또는 5년이 지났으므로 권리를 행사할 기간이 이미 끝났는데(소멸시효), 특별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무죄판결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을 연장해주겠다는 뜻이다. 그 6개월 안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면, 형사보상결정된 날로부터 또 6개월을 연장해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준호씨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즈음엔 어느 누구도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논리다. 국가 사죄의 방식으로 읽혔던 과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 재심 재판의 무죄판결, 손해배상 소송 1심과 2심 판결,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순식간에 뒤엎었다. 이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이고, 대한민국의 민낯일까봐 나는 두렵다.
무죄판결 뒤 3년 내 손배 인정하다 돌연준엄하기 이를 데 없는 대법원 판결은 과거사 사건의 본질적 측면, 피해자들의 특별한 사정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과거사 사건의 본질은, 피해의 근본 원인과 권리 행사의 장애 요인이 모두 ‘국가’라는 점이다. 국가가 나서서 장애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간첩으로 유죄 확정 받은 이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지 못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법의 원칙이 통용되는 일반인과 국가폭력 피해자는 엄연히 권리 행사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간첩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자가, 무죄판결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감히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대법원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5년 서울지방법원은 ‘수지김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최초로 기각했다.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조용수 유가족들의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 “국가의 채무 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며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했다. 그 뒤 하급심에서는 대체로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년 내에 손해배상을 제기”한 경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그것이 대세를 이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법원은 이와 반대되는 흐름의 판결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전쟁시 진도 보도연맹 판결에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에서 규정한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12월12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친척과 왕래한 것을 빌미로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가 낸 손해배상 판결에서 “무죄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 형사보상을 청구할 경우 형사보상 결정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6개월 소멸시효’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 판결 이후, 이준호씨나 1983년 조총련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오주석·송석민·안교도씨도 대법원의 입장 변경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각각 7개월과 6개월을 넘겨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됐다. 1972년 춘천경찰서 파출소장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 목사 역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손해배상을 기각당했다. 6개월에서 11일이 지났다는 이유였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권리 위에 잠잔 자’가 아니다. 피해자들은 죽음 같은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며 진실을 외쳤다. 그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되었고, 그래서 국가는 과거사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준호씨의 억울함을 국가가 벗겨주는 데 걸린 시간은 24년6개월이었다. 이준호씨가 소송을 내기까지 걸렸던 7개월은, 국가가 진실을 밝혀내는 데 걸린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를 향해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구차’할 뿐 아니라 몰염치의 극치다.
같은 사건 피해자끼리 판결 엇갈리기도국제인권 규범도 하나같이 반인도적 범죄행위에는 소멸시효를 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5년 12월16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조치와 손해배상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은 “국제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는 1993년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서 조작간첩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왔다. 감옥 안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들의 간절함 기다림도, 석방을 외치다 경찰에 끌려간 어머니들의 눈물도, 오랜 옥살이 끝에 풀려나던 날 ‘조작간첩들’의 기쁨도 지켜봤다. 그 뒤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인을 찾고 증거를 모으러 다니던 그들의 발길에도, “피고인은 무죄!”라는 선고를 받던 감격의 순간들도 함께했다. 이준호씨를 비롯해 앞으로 유사한 판결을 받게 될지 모를 피해자들에게 판결 내용을 설명하자니, 참으로 어렵고 난감하다. 함께했던 시간들엔 고통스런 순간이 더 많았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모욕스럽거나 절망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난데없이 6개월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 손해배상을 기각한 이 사태를 납득할 이유도 논리도 없이, 그저 “돈 주기 싫다!”고 읽힐 뿐인 그 판결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살아온 20~30년의 모진 세월 앞에서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으므로 기각당한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준호씨와 비슷한 시기에 재심을 통해 함께 무죄를 받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본 관련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다. 차이라면 이준호씨는 서울경찰청에, 일본 관련 사건은 보안사에 불법 감금돼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됐다는 것이었다. 재심 무죄확정일부터 국가에 의해 대법원에 상고될 때까지 진행도 엇비슷했다.
문제가 된 ‘형사보상 결정일로부터 소 제기일까지 기간’은 이준호씨가 7개월19일, 일본 관련 사건은 10개월이 걸렸다.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 소를 제기한 것도 같다. 1·2심도 엇비슷했고, 대법원 심리가 시작된 시점은 이준호씨 사건이 오히려 두 달 정도 빨랐다. 그러나 대법원 선고일이 두 사건을 갈라놨다. 일본 관련 사건은 10개월 만인 2012년 7월 선고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준호씨 사건은 2년6개월을 끌어오다가 기각시켰다. 다른 이유란 없다. 오로지 담당 재판부가 재판을 늦게 열었기 때문에 기각당한 셈이다.
대법원이 시효를 기계적·형식적으로 판단하다보니, 심지어 같은 사건의 피해자들끼리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도 생겼다. 조총련 간첩단 사건 피해자 4명은 ‘공범’들로 같은 날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2014년 1월29일 대법원은 4명 모두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이 가운데 3명은 원심을 파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시켰다. 이들은 1983년 같은 날 안기부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고 5~7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똑같은 날짜에 무죄를 선고받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것은 형사보상 결정문 송달 날짜였다. 이사해서 주소가 변경되는 바람에 결정문을 뒤늦게 받은 이는 6개월의 기간 안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연히 납득하기도 어렵고 공평하지도 않다.
가히 쿠데타요, 과거 회귀라는 의미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권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파괴하고 비국민으로 내몰았던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고, 헌법에 나와 있는 기본권을 침해당했던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손길을 거두고 다시 ‘국민’의 경계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들의 권리를 일반인보다도 축소하고 제한해서 얻을 국가의 이익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다!
당대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과거사’ 사건이 된다. 그때까지 피해자와 가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망가진 국가의 품위를 다시 세우는 데 또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많은 눈물이 소요될지 아득할 뿐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오주석씨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고 했다. 문제가 된 판결의 선고일은 하필 5·16이고 12·12다. 군사독재 정권의 탄생을 상징하는 날짜들이다. 우스개로 넘어가기엔 너무 섬뜩한 일치다. 피해자들에게 그 의미와 규정력은 가히 쿠데타요, 과거로의 회귀라는 말과 동일어다. 고문을 자행했던 수사기관은 조작간첩을 만드는 필요조건에 불과했다. 법원이 피해자의 호소에 귀 막지 않았더라면, “검사 앞에서 한 자백은 무조건 효력이 있다”는 형식의 덫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공지의 사실도 국가기밀”(“신문, 라디오에 보도되고 널리 알려진 사항이라 하더라도 북괴집단에 유리한 자료가 될 경우 기밀에 해당”, 대법원 1982년 11월9일 판결)이라는 형용모순적 판례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조작간첩은 완성될 수 없었다. 그런 법원이 자신들이 협력한 과거 사건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국가책임을 면해주는 판결로 피해자들을 다시 고통 속에 몰아넣는 것은 ‘범죄를 최후로 완성’하는 꼴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고통스런 삶을 통해, ‘대한민국’에 온전한 모습을 갖출 기회를 줬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그 기회를 발로 걷어차려 하고 있다. 수많은 ‘이준호들’은 지금 또다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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