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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다은(이하 전) - 국회도서관이 문을 연 아침 9시. 잰걸음으로 곧장 신문 코너가 있는 2층 최신자료실로 올라갔다. 오늘치 신문이 두 개씩 비치되는 신문꽂이에 벌써 빈자리가 숭숭 보인다. 보수신문과 경제신문은 이미 노인들 차지다. 를 빈자리로 가져와 읽는다. 1시간 만에 집중력이 흐려진다. 노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돋보기 너머의 눈이 진지하고 매섭다. 신문 속 세상에서 그들은 여전히 주인공인 듯하다. 낮 12시.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구석에 앉아 혼자 밥을 먹었다. 4천원짜리 밥이 꽤 알차다. 수북한 음식을 깨끗이 비운 노인들이 다시 신문 코너로 돌아갔다. 난 신문을 더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홀로 늦은 점심을 먹는 박완봉(80·가명)씨에게 말을 붙였다. 공무원이던 그는 정년퇴직 뒤 매일 도서관에 나온다고 했다. “시골이면 밭이라도 가꾸지. 서울에선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밖엔 할 게 없어. 난 지하철 타면 노약자석 앞에 안 서. 노인들은 그냥 쭉 가거든. 나까지 보기 안 좋더라고.”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신문 코너에서 두 개의 경제신문을 3시간 동안 내리 읽었다. 80살에도 관심사가 있고 공부도 한다는 데 놀랐다. 삶에 대한 애정만 보면 내가 그보다 얼마나 젊다고 할 수 있을까.
김봉중(이하 김) - 서울 종로구의 ‘스터디 카페’는 도서관에 가깝다. 청년들은 대화도 없이 각자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다. 주위에 어학 학원이 많아서일까. 책상에는 대부분 영어·일본어 등 어학책이 올라와 있다. 나만 건강 서적을 펼쳤다. 오후 2시가 되니 카페가 시끌벅적해졌다. 한켠에서 ‘전문기획자 양성 아카데미’ 강의가 시작됐다. 이 스터디 카페에선 하루에도 여러 번씩 자기계발과 관련된 다양한 강연·강좌가 열린단다. 같은 시간 ‘랩’(Lap)에선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토론하기도 했다. 48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만 마시면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토론하고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보고 있노라니, 청년들이 부러워졌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서울에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곤 청량리역 근처의 학원이 유일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렇게 치열하게 준비해도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정년을 채우는 게 보장되지 않으니 말이다. 경제가 계속 성장한 덕에 대기업에도 쉽게 들어가고, 마음에 안 들면 툭 차고 나와 금세 재취업했던 우리 시절이 정말 옛날이야기가 됐나보다.
2월 18일“내 삶의 연장선 어딘가에 노인이”전 - 서울 서대문구 실버극장인 ‘청춘극장’의 시간은 바깥세상과 다르게 흘렀다. 오전 10시, 1930년대 미국 영화 의 첫 상영이 시작됐는데도 노인들은 상영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도 그냥 대기실에 남았다. 영화표 값 2천원에 서비스로 나온 뻥튀기와 둥굴레차는 아침 식사로도 좋았다. “나는 전씨요”라는 한 노인의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꼬리를 물다가 주변 노인들 사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중 누가 낫나’ 논쟁이 벌어졌다. 생경한 토론을 듣다보니 벌써 낮 12시가 됐다. 노래 강사를 따라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보라·분홍·초록의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할머니 소녀시대’가 구성진 트로트 가락에 맞춰 앞쪽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문득 노인이 된 나를 처음으로 상상해봤다. 왜 나도 언젠가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까. 내 삶의 연장선 어딘가에 노인인 내가 있을 텐데 말이다.
“노인의 몸으로 100km 넘게 지하철을 타고 수km를 걸어다니며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 대가로 알맞은 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퉁퉁 부은 다리를 한참 주물러야 했다.” -전다은
1시간 뒤 영화가 시작됐다. 극중 인물 ‘크링클라인’은 평생 노예처럼 일하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상류층이 드나드는 그랜드호텔에 투숙한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며 행복해한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조금 전 노래교실에서 맘껏 몸을 흔들던 노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들도 억울함 없는 행복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2월 19일 “끼니 거르는 청년 알바들 걱정”전 - 지하철 택배 아르바이트 첫날이다. 출근 시간인 아침 9시에 맞춰 출근 장소인 ‘종로3가역’에 도착했다. 전화로 회사에 출근을 알리니 “대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카카오톡 알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휴대전화를 무릎에 올린 채 차가운 계단에 앉았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회사는 출발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직원에게 카카오톡으로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10분이 지나니 엉덩이가 시려왔다. 9시45분, 드디어 카카오톡이 울렸다. ‘출발지: 대흥1-서강대 마태오관, 도착지: 광화문6-오피시아빌딩, 8천원 선불.’ 대흥역 1번 출구에서 서강대까지 걸어가서 배송할 물건과 배송비 8천원을 받은 뒤 광화문 6번 출구 쪽에 위치한 오피시아빌딩으로 물건을 전달해주라는 뜻이다.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지하철 택배라고 해서 지하철만 타는 건 아니었다. 대흥역에서 서강대까지는 걸어가는 데만 15분 넘게 걸렸다.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느리다”고 한 소리 들었다. 뛰듯이 걸었는데 어떻게 속도를 올려야 하는 걸까. 다시 종로3가역으로 갔다. 차가운 기운과 함께 허기가 올라왔다. 회사에 전화해 “점심을 먹겠다”고 보고했다. 역 근처 식당에서 생선구이 백반을 두 숟가락 먹었을까. “점심 다 먹었어요?” 회사 전화였다. 다시 컴컴한 지하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오늘 하루 총 81개의 지하철역을 지났다. 116km 거리다. 배송비 3만6천원에서 수수료 30%를 떼고 나니 2만5200원이 내 손에 들어왔다. 노인의 몸으로 100km 넘게 지하철을 타고 수km를 걸어다니며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내린 대가로 알맞은 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퉁퉁 부은 다리를 한참 주물러야 했다.
김 - 아직은 어둑한 아침 7시30분, 집을 나섰다. 이른 출발이지만 마음이 설레 집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2003년 직장을 그만둔 뒤 11년 만의 출근길이 아닌가. 전철 안이 생각보다 덜 붐빈다. 10년 사이 아침에 출근하는 일자리가 줄어든 걸까? 골몰하는 사이 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 도착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식품 유효기간 확인, 산뜻한 상품 진열, 친절한 서비스 등 매장 운영의 3대 기본 지침을 교육받았다. 마침 신선식품을 가득 실은 상자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제품이 배달 전표 내역에 맞게 들어왔는지 점검하는 일이 주어졌다. 그런데 배달 전표에 적힌 글씨가 너무 작았다. 제품명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노인인 걸 티내기 싫어 비상 돋보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청년보다 3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등에서 땀이 흘렀다. ‘친절한 서비스’는 더 힘들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어오는 손님에겐 “반갑습니다, ○○입니다”, 나가는 손님에겐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꾸 놓치거나 말이 거꾸로 나왔다. 점심으로는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10분 만에 먹었다. 식사 뒤 바로 물건을 나르려니 속이 불편했다. 매일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청년 아르바이트생의 건강이 걱정됐다. 4시간이 지나니 허리가 뻐근했지만 자리에 앉지 않았다. 오후 3시,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나는 보험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던 터라 6시간 동안 서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2월 20일“노인 택배원의 생존전략 존경”전 - 오전 11시45분, 두 번째 배송 주문이 들어왔다. 회사는 “2시까지 배송 완료”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오늘 점심 먹기는 틀렸다. 물건을 받으러 구의역으로 갔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회사에서 마을버스를 타라고 지시한 곳을 찾아갔다. 버스 정류장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일러준 대로 한참을 걸어간 뒤 겨우 버스를 탔다. 느낌이 불길했다. 정류장을 몇 개나 지나쳐도 회사가 알려준 정류장은 버스 안내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다. 반대쪽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욕이 튀어나왔다. 결국 택시를 타고 정신없이 뛰어 겨우 제시간에 배달을 마쳤다. 그제야 회사는 점심을 허락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마주치는데도 외로웠다. 잠깐 걸려온 친구의 익숙한 목소리가 반가웠다. 2분간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휴대전화에 회사의 전화번호가 떴다. “통화는 짧게 하세요.” 세 번째 목적지는 길음에서 동인천까지였다. 끝에서 끝이다. “4시까지 배송 완료” 지시를 지킬 수 있을까. 지하철 1호선 안에서 꽃바구니를 든 할아버지를 만났다. 4년째 지하철 택배를 하고 있다는 그의 손에는 2G폰이 들려 있었다. 걱정스러웠다. “스마트폰 없으면 배송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그가 점퍼 안 주머니에서 비닐에 싸인 수첩을 꺼내 내밀었다. 특정 지역 간 최단거리 노선, 환승이 빠른 문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노인 지하철 택배원으로 버티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존경심과 서글픔이 한데 밀려왔다. 배달을 마치고 종로3가역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였다. 온몸이 후들거렸다. 차가운 전철역에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었다.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천안으로 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못 가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김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전천후다. 현금과 카드 결제는 물론 각종 할인카드와 T머니, 쿠폰, 마일리지 결제 시스템도 모두 소화해야 한다. 3일짜리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흉내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치킨·빵 따위의 음식을 조리하고, 다양한 커피를 만들 줄 알아야 하며, 국제전화카드 등도 충전해줘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 올라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단순노동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보니 중노동에 복합노동이다. 짬을 내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청년 2명과 대화를 텄다. 잘생긴 그들은 24살 동갑내기다. 한 청년은 실용음악과 휴학생인데 복학할 생각이 없단다. “명문대가 아니라서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청년은 애초에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지금도 영 생각이 없단다. 대신 중국어 특기자로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번역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10년 이상 산 덕에 중국어만은 자신 있단다. 허울만 좋은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학원비까지 직접 벌고 있는 그들이 기특하다. 부모에게 의지해 허송세월하는 청년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의외다. 그러나 알바 시급은 그들의 꿈을 이루기엔 풍족하지 않다. 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이 주어진다. 별도 식사 시간 없이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면 한 달 수입이 100만원(주휴수당 포함)을 조금 넘는다. 노인들이 아파트 경비로 일하며 받는 월급 12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었다.
2월 21일“일하는 습관 뼛속 깊이 밴 노인들”전 - ‘드디어’ 마지막 출근이다. 잠잠한 카카오톡이 되레 반가웠다. 종로3가역에 무료하게 앉아 있던 한 할아버지(75)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대뜸 청년들을 흉봤다. 자신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연탄 배달과 리어카 노점상 등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지금껏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데, 20대는 너무 약해빠졌단다. “부모가 다 해주니까 고생을 못 이기는 거예요. 일하려고만 해봐요, 널린 게 일자리인데.” 예전이었다면 열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기도 해서 반박하지 않았다. 앞만 보며 달려온 대한민국 노인들에겐 일하는 습관이 뼛속 깊이 배어 있다. 지금도 일터로, 도서관으로, 극장으로 매일 정시에 출근할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나약한 것일 수도 있다. 오전 9시20분. 일이 시작됐다. 홍대입구에서 주엽역, 금릉역에서 부평역까지. 회사의 전화는 매번 똑같다. 배송이 끝났는지 물어본 뒤 다음 목적지를 말해주고 끊는다. 장기판 위의 장기알, 포켓몬스터의 포켓몬이 된 기분이다. 신사동으로 마지막 물품을 배송하러 갔다. 요금은 1만9천원. 고객은 2만원을 주며 “거스름돈은 가지세요”라고 했다. 좋아해야 하나, 헷갈렸다. 회사에 “배송이 끝났다”고 했다. 회사는 다음에 갈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면 전철역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서 라디오 방송이 나왔다. 진행자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늘어놓았다. “돈은 절대적 위력이자 평등의 극치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한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택시비와 1천원의 팁을 택시기사에게 줬다. 적어도 ‘2014년 2월21일 저녁 7시 대한민국 서울’에선 돈이란 평등하지 않았다.
김 - 아침 7시, 서울 노량진의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공단기’에 도착했다. 학원 직원에게 ‘공단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무원 시험을 단기간에 합격시켜준다’는 뜻이란다. 이름 한번 좋다. 정규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된다는데, 5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은 앞에서부터 30% 이상 차 있었다. 좋은 자리에서 수업을 들으려고 새벽부터 나온 부지런한 청년들이 대견하다. 강의실은 내 평생 구경한 방 가운데 가장 컸다. 그런데 이 학원에만 500명 수용 규모의 강의실이 4개, 300명 수용 규모의 강의실이 2개 있단다. 학원이 기업이다. 청년들은 매일 아침 치르는 쪽지 시험에 대비해 전날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공무원 시험이 있는 4월이 코앞이라 그런지, 강의실 안에선 숨소리·발소리도 안 들렸다. 9시. 한국사 강의로 1교시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깊이 있게 가르친다. 이렇게 큰 학원에서 이런 좋은 강의를 들으려면 얼마나 들까.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한 청년은 “종합반 학원비 25만원, 고시원 35만원, 밥값 25만원, 용돈 15만원을 합하면 한 달 100만원 정도 쓴다”고 했다. 지방에 있는 청년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의 합격을 빌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됐다. 학원 앞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가 장사진을 이뤘다. 대표 메뉴는 2500원짜리 ‘컵밥’이다. 널찍한 스티로폼 그릇에 밥·찌개·반찬을 함께 담아서 판다. 보기만 해도 거북해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청년들은 비좁은 포장마차에 몸을 비비고 서서 정신없이 먹었다. 콩나물시루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크기 위해 경쟁하는 콩나물 같았다. 평소 대학까지 나와서 하위직인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는 청년더러 ‘고시생’이라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들도 처절하게 공부하는 고시생이 맞았다.
2월 23일“취업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젊은이들”김 - 일요일 늦잠이 달콤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노량진으로 갔다. 요새 청년들은 주말에 무얼 하며 노는지 궁금했다.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당구장에 들렀다. 20여 개의 테이블이 있는 제법 큰 당구장엔 손님이 달랑 두 팀뿐이었다. 옆 PC방 역시 절반이 빈자리다. 그나마 만화방은 사정이 좀 나았다. 70%는 손님이 찼다. 도대체 청년들의 놀이문화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깔려도 문을 열지 않는 호프집이 수두룩하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서점 주인이 일러준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한 달에 적어도 100만원은 나가는데, 오락에 쓸 돈이 어디 있겠어요?” 청년들이 북적이는 곳이 있긴 했다. 공단기 학원이다. 학원은 평일처럼 북적였다. 단과 수업을 하는 대형 강의실, 자습실 가릴 것 없이 만원이다. 학원을 나오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포장마차가 다시 부산해졌다. 지난번에 차마 먹지 못했던 컵밥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가장 깔끔해 보이는 일본식 컵밥 포장마차에 들어가 청년들과 몸을 포개고 금세 한 그릇을 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청년들은 오로지 취업을 위해 휴식·오락·낭만·즐거움을 모두 유예한 채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말로만 듣고 머리로만 상상하던 치열한 취업 환경을 눈으로 확인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앞으로 동네 주민센터나 경찰 지구대를 지나가다 젊은 직원이 보이면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고생했다”고 말해줘야겠다.
글 김봉중(63)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시니어기자·전다은(28) 인턴기자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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