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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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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귀태’ 사이클의 완성

보수 언론이 의제 설정에 앞장서고 정부·여당이 호응
종편이 과잉 보도에 나선 사이 지상파 뉴스는 ‘무보도’와 ‘축소 보도’
등록 2013-12-04 14:22 수정 2020-05-03 04:27

이것은 대목 장사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미사 강론에서 ‘연평도·북방한계선(NLL)’을 건드렸으니, ‘정통성’과 ‘안보’라는 한국 보수의 두 교시를 한번에 찌른 형국이다. 2011년 12월1일 개국한 뒤 줄곧 ‘정쟁 보도’를 상품화하는 데 앞장서온 종합편성채널들에는 절호의 기회다. 때맞춰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가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장이 섰으니 누가 원조 우파인지 증명해야 할 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 전주교구의 시국미사 직후인 지난 11월23일 종편 뉴스들의 인정투쟁은 치열했다.

원조 우파들의 대목 장사

개국 2년을 맞은 종합편성채널의 우편향 보도가 ‘언론 실패’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박창신 신부를 둘러싼 ‘연평도 발언’ 논란 보도는 그 정점을 찍었다. 위부터 TV조선·JTBC·채널A·MBN 뉴스 화면 갈무리.

개국 2년을 맞은 종합편성채널의 우편향 보도가 ‘언론 실패’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박창신 신부를 둘러싼 ‘연평도 발언’ 논란 보도는 그 정점을 찍었다. 위부터 TV조선·JTBC·채널A·MBN 뉴스 화면 갈무리.

“정말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교인들 앞에서 주교라는 사람이 주장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울 정돕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주당이 (중략) 대한민국의 정당이라면 (사제단을) 꾸짖고 나무라고 다시는 이런 생각을 못하도록 이렇게 만들었어야 하는 거죠.” 11월23일 TV조선 주말뉴스에 출연한 한 패널의 논평이다. 채널A는 한발 더 나아갔다. “통합진보당보다 한발 더 나아간 발언이기 때문에 사정 당국에서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두고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들먹이며 노골적인 종북몰이에 나선 것이다.

은퇴한 원로 사제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날 MBN을 제외한 종편 3사는 모두 박창신 신부의 발언과 해설 보도에 헤드라인 뉴스를 포함해 3~5꼭지의 뉴스를 할애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사제단의 목소리는 후방 배치되고 연평도·NLL 발언이 집중 조명됐다. 한국 사회의 종북 낙인을 지적한 박 신부의 발언은 ‘종북세력을 옹호한다’는 색깔론으로 채색됐다. 보수 언론이 의제 설정에 앞장서고 정부·여당이 호응하는 방식이다.

공공미디어연구소의 김동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념 공세는 특히 보수 언론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전공 분야다. 시국미사와 같은 패턴의 보도는 종편 채널이 늘 견지해온 방식이다. 채널A·TV조선 두 방송의 뉴스를 보면 스튜디오에 패널을 불러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탈북자 단체 출신이 많아 이미 냉전의 대립 구도를 방송사의 보도 틀로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복 보도를 통한 의제 설정은 연평균 시청률이 1% 안팎 수준에 지나지 않는 종편의 주 무기다. 대중매체가 반복된 뉴스 보도를 통해 특정 주제를 많이 다루면 실제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공중이 그 이슈를 중요하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이론인 ‘의제 설정 이론’의 뼈대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낙마시킨 친자 의혹 보도는 종편과 신문을 양손에 틀어쥔 보수 언론의 의제 설정력을 증명한 사례다. 올해 들어 종편들이 보도 프로그램에 ‘올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론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데다 제작비도 크게 들지 않는다.

YTN, 보도 과다 편성 금지 요청하기도

방송통신위원회의 ‘2013년 종편 편성 비율 세부 내역’을 보면, 2013년 1~8월 TV조선의 보도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월평균 47.4%다. JTBC만 유일하게 13.2%로 보도 프로그램 편성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 채널A와 MBN도 각각 46.5%, 42.6%로 보도 프로그램을 과다 편성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난 10월 보도 전문 채널인 YTN과 연합뉴스TV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종편 보도 프로그램 과다 편성 금지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내기도 했다.

넘치는 보도량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의 질에 있다. “종편은 스스로 이슈를 발굴하기보단, 정부·여당이 기존에 제기한 이슈들에 대해 사소하거나 가십성에 가까운 정보들을 붙이면서 양을 늘리는 보도 형태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이슈를 정쟁·이념 대립의 관점으로 풀이함으로써 시청자 역시 정치를 관전하거나 평하는 외부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김동원 박사) 종편 뉴스가 많아질수록 공론장의 다원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냉소와 패배주의를 강화하는 효과만 낳는다는 뜻이다.


“공론장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재구조화되고 있다. 정치 전문가를 동원해 전문적인 의견으로 포장하고, 인터넷·SNS를 통해 확산시킨다. 확산된 내용은 다시 신문과 방송에서 ‘여론’으로 보도된다.” -송경재 경희대 교수

종편이 과잉 보도에 나선 사이, 지상파 뉴스는 ‘무보도’와 ‘축소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1월27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국정원 보도, 언론은 어떻게 실패했나’ 토론회에서 김완 기자는 2013년 10월18일부터 11월8일까지 20일 동안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국정원 사건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10월18일 국정원 대선 개입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수사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이날 KBS는 11번째 꼭지에 이르러서야 윤 팀장의 ‘내부 보고 누락’에 방점을 찍어 보도하고 있다. 10월31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원 진상 규명’ 발언에 대해서도 지상파는 아무 해설 없이 헤드라인으로 보도한 반면, JTBC는 여론조사와 야당 박지원 의원 초대 등을 통해 충실히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주석을 달아 방송했다.” 이어 김 기자는 “모니터링한 20일 동안 지상파는 의미 있는 보도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JTBC 뉴스의 독자 행보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종합뉴스로서의 기능, 이슈를 추적하고 취재에 기반한 뉴스를 제공하는 방송사는 JTBC가 유일하다”는 평이 나왔다. 지난 9월부터 손석희 사장이 앵커를 맡은 뒤 JTBC의 은 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단독 기사를 보도하는 등 다른 종편과 차별화된 전략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 시장에서의 틈새전략이라고 해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반응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배신’은 가차 없는 응징으로 이어진다.

‘권·언 동맹’을 깨면 치명상을 입는다

지난 11월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소위원회를 열어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을 다룬 JTBC의 11월5일치 방송이 ‘정부 조처에 부정적인 사람들의 의견만 전했다’는 민원 안건을 심의했다. 해당 방송에서 손 앵커는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대담을 진행했다.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김재연 진보당 대변인도 출연했다. 이에 대해 심의에서 정부·여당 추천 위원 3명은 모두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를 위반했다며 재승인 심사 때 감점 대상이 되는 법정 제재 의견을 내놨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은 여당 쪽 위원들과 논쟁을 벌이다 심의 도중 퇴장했다. 6 대 3의 구조여서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TBC 심의는 공고한 ‘권·언 동맹’을 깰 경우 누구든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종편 출범 이후의 언론 지형을 더 종합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미 보수 언론과 정부·여당 중심의 공론장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종편 등장 이후) 공론장의 메커니즘이 완전히 재구조화되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 맞는 정치 전문가들을 동원해 전문적인 의견으로 포장하고,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시킨다. 확산된 내용은 다시 신문과 방송에서 ‘여론’으로 보도된다. 놀라울 정도의 체제를 이미 구축했다.” 송 교수는 “이미 3년 전부터 그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움직인 이들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국가기관”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의 ‘언론 실패’는 보수 집권 플랜 안에 이미 내장돼 있었다는 뜻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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